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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l 13. 2022

전지적 가족 시점

< 늘봄유정 폭로전 >

7월 2주 보글보글 매거진 글놀이
"OO 폭로전"


"나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폭로할 게 있다면, 그게 뭐야? '참 나... 사람들이 송유정의 이런 모습을 알까 몰라?' 싶은 거 말이야."

이렇게 물었지만 아무도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멋쩍게 웃는 작은 아들과 "큰 비가 온다던데?"라며 베란다 창을 닫으러 황급히 자리를 뜨는 남편. 그들은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걸까요? 아니, 어떤 '폭로'는 안 하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걸까요? 


그래서 저는, 가족들의 시점에서 저를 셀프 폭로하기로 했습니다. 얼마만큼 객관적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자기 객관화 훈련을 한다고 생각하겠습니다.

< 늘봄유정의 실체를 폭로합니다. >

* 저는 늘봄유정의 남편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녀는 늦은 밤에도 아들에게 고기를 구워주고 군대 간 아들과 고3인 아들을 향한 애틋함과 절절함을 글로 풀어내는 사람일 겁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혹시 그 애잔함을 남편에게도 똑같이 가지며 아들에게 하는 만큼의 정성을 남편에게도 쏟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길에 피었다 뽑힌 해바라기를 측은해하고 교육자원봉사를 하며 마음을 나누는 그녀가 남편에게는 그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얼마 전,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귀가를 하는 길에 아내에게 톡을 보냈습니다. 

"낙지볶음에 소주 콜?"

얼마나 정겹습니까? 아내와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이 말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대뜸 "낙지볶음 사 오게?"라고 물었습니다. 바로 통화를 했죠. 제가 원한 건 가끔 집에서 아내가 해주던 냉동 주꾸미 볶음이었습니다. 냉동실에 늘 있었던 것 같아 그거면 충분한, 간단한 안주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집에 들어서자 공기가 싸했습니다. 아내는, 주꾸미 볶음은 해놓았지만 저와 함께 소주를 마시지는 않더군요. 참 내... 하루 종일 일하고 늦게까지 공부하고 온 남편에게 밀키트 주꾸미 볶음 하나 해주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랍니까? 아들이 원했다면 신나서 했을 테지요? 게다가 말은 얼마나 퉁명스럽게 하던지... 제가 큰 잘못이라도 한 줄 알았지 뭡니까? 

본 적도 없는 브런치 작가님들에게는 댓글도 다정하게 달고 '멋지다, 최고다'를 연발하는 사람이 남편인 저에게는 이렇게 무뚝뚝하고 불친절합니다. 이렇게 소홀합니다. 이렇게 무심합니다. 이렇게 매정합니다. 



* 저는 늘봄유정의 작은 아들입니다. 

엄마는 브런치에 음식 관련 글을 많이 쓴 걸로 알고 있습니다. < 가장 보통의 집밥 > 시리즈에서 음식에 담긴 추억을 썼지요. 엄마 음식은 먹을만합니다. 정말 보통의 집밥이죠. 물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표 육포, 엄마표 소시지 떡은 어디에서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 외의 음식은, 특별하달 게 없습니다. 특별한 게 있다면 대부분 엄마가 직접 만든다는 것이죠. 반찬도 사는 일이 거의 없고 김치도 손수 다 만듭니다. 그런데 얼마 전, 너무 충격적인 일이 있어 폭로하려고 합니다. 


그날 아침 메뉴는 사골국에 총각김치였습니다. 더워지기 전에 엄마가 직접 끓였던 사골국이었죠. 아시죠? 하얀 쌀밥을 사골국에 말아 위에 총각김치 하나 얹어 먹는 맛. 그날따라 총각김치가 유난히 맛있었죠. 

"이번 총각김치 진짜 잘 됐네~ 맛있다."

제 딴에는 엄마 기분 좋게 해 주려던 말인데, 엄마의 미소가 약간 음흉한 게 아니겠어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죠. 

"이거, 엄마가 한 거 아니었어?"라는 제 말에 엄마는 이실직고했습니다. 

"맛있지? 역시, 바른 먹거리를 만드는 회사 꺼라 맛도 바른가 보다. ㅋㅋㅋ"

알고 보니 얼마 전 먹었던 쪽파김치도 산거라네요.

"그거, 종갓집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김치라 맛있나 봐. 하하하하"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었습니다. 저는 상에 오르는 게 모두 엄마가 만든 거라며 믿었는데 말입니다. 

그날 이후로 엄마 음식에 대한 제 신뢰에 작은 균열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뭘 먹을 때마다 산 건지 만든 건지 의심해보기까지 한다니까요? 



* 저는 늘봄유정의 큰아들입니다. 

이제 제대까지 189일 남았지 말입니다. 작년 7월 19일에 입대했으니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입대 날, 저를 훈련소에 들여보내며 울지 않으려고 꾹 참던 엄마 얼굴이 선합니다. 훈련소 시절 써주던 인터넷 편지와 자대로 날아오던 손편지. 지난 1년 동안 엄마는 저를 꾸준히 그리워하셨지 말입니다. 여러분도 보셨지요? 저를 군에 보내 놓고 엄마가 브런치에 썼던 애절한 편지 말입니다. 덕분에 저도 구독을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글도 뜸하고 편지도 뜸합니다. 한 달 전 엄마에게 부탁한 소포가 도착했을 때도 상자 안에 내용물만 들어있지 편지는 없더라고요. 혹시 어디에 껴있는 것은 아닌가 한참을 뒤적거리다 민망해졌지 뭡니까. 

제가 밥을 잘 먹는지 똥을 잘 싸는지, 괴롭히는 사람은 없는지 뭐 필요한 건 없는지 끊임없이 궁금해하던 엄마, 어디 갔나요? 사실 이제는, 제 제대 날짜가 얼마 안 남은 걸 아쉬워하는 눈치입니다. 반년밖에 안 남았다는 말이 '아들이 빨리 보고 싶다'로 들리지 않고, '술 처먹고 새벽에 귀가하는 아들내미를 다시 봐야 하는 날이 얼마 안 남았구나...'로 들리는 건 제 기분 탓일까요? 

이번 주말에 휴가를 나가는데, 어째 소식이 없습니다. 아들의 휴가가 잦으면 어머니들이 더 이상 챙겨주지 않는다고 하죠? 우리 엄마는 다를 줄 알았는데 느낌이 싸합니다. 고기반찬 정도는... 해주겠죠? 


* 늘봄유정입니다.

먼저, 저를 믿고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저의 민낯과 양면성을 지척에서 바라보며 황당했을 가족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꾸준하고 일관되게 진정성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겠습니다. 



* 보글보글 매거진의 이전 글, 김장훈 작가님의 < 폭로를 해달랬더니 이거야 원. 긁적긁적 >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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