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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Sep 16. 2022

단어 하나로 만든 노래_가수는 누구?

엄마를 부르는 소리

엄마.


나이 들어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소리, 엄마.

다 큰 남자 어른이 불러도 오히려 따뜻하고 정겨운 소리, 엄마~


내 아이의 입에서 불리는 엄마는

이거 멋지죠? 자기를 봐달라는 소리, 엄마아?

잘 안될 때 도움을 청하는 소리, 음마아~~

볼 때마다 좋아서 크게 부르고 달려와 내 배에 푹 하고 묻히는 소리, 엄맙!


‘엄마’라고 소리 내어 말해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엄마~’ 소리가 있다.


여러 가지 엄마를 부르는 소리 중에 나는 아직 울음 섞인 목소리로 부르는 엄마를 불러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 엄마의 목소리로 가슴이 미어지게 부르는 ‘엄마~’ 소리를 들은 적은 있다.


오래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는 자주 엄마를 부르고 우셨다. 허공을 바라보다 눈이 자주 빨개지셨고 '엄마~' 하고 낮은 목소리를 내셨다. 그리움의 소리는 낮고 느리고 떨렸다.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만 담은 노래는 없을까?

어쩌면 세상의 모든 감정이 담긴 엄청난 노래가 될 텐데..




이번 추석, 부산 친정에 갔을 때 오랜만에 외할머니 산소를 다녀왔다.

외삼촌의 농장과 가까이에 산소가 있어 오랜만에 외삼촌도 뵙고 할머니를 뵈러 찾아갔다.


엄마는 역시 ‘엄마~’ 하고 부르면서 눈물 섞인 목소리로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이 왔다고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엄마의 엄마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아들은 언제 갔는지 위쪽 산소까지 쏜살같이 혼자 달려 올라가 있었고, 딸은 외할머니의 목소리를 유심히 들으며 내 옆에 서있었다.



딸아이는 아기 때 와보고는 처음 와본 증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산소 앞에서 평소보다 진지하게 서있었다. 한참 산 위까지 올라갔던 둘째의 탐색이 끝난 후, 우리는 잘 다듬어져 있던 풀 위로 술도 부어드렸다.


묘지 위로 술을 떨어뜨리는 딸아이의 동작은 조심스러웠다. 한 방울 한 방울 작은 종이컵에서 떨어지는 술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남편은 할머니만 불러서 할아버지 서운하시겠다며 아들과 할아버지를 챙기겠다고 농담을 해서 모두 잠시 웃었다.


그리고 또 잠시 침묵.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라 성묘객들이 이미 다녀간 흔적만 있던 주위는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가끔씩 까마귀 울음소리가 깍 까악 들렸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조용히 그 앞에 서있었다.


코로나 이전까지 추석마다 대전의 선산에 갔었던 터라 성묘가 아이에게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전과 서울로 흩어져 있던 시댁가족들이 다 모여 격식을 갖추어하던 그동안의 성묘에서는 어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아이는 몰랐던 것 같다.


많은 친척 어른들 등에 앞이 가려져 있었다. 어느 쪽으로 절을 하는지도 모른 채 하라는 절만 하느라 어떤 마음의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성묘를 간다는 건 어른들이 서로 대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심심해도 참고 나뭇잎과 돌멩이로 조용히 놀아야 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짧게 인사드리고 내려와 차에 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갑자기 딸이 나를 불렀다. 마음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빨개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 눈도 그런지 보려는 듯 나를 빤히 보았다. 그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슬프다고 말하고는 울기 시작했다. 조금 울다가 멈출 줄 알았는데 울다가 슬픔이 더 차올라 결국에는 큰 소리로 울었다. 울면서도 자기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멈춰지지 않는다고 아이는 한참을 더 크게 울었다.


조수석에 앉은 외할머니는 손녀가 갑자기 우니 놀라셨다. 뒤로 돌아보는 할머니 눈도 같이 빨개져 놓고는 울지 말라고 달랬다.

뒷좌석에서 아이 둘을 양옆에 두고 앉아있던 나는 우는 딸을 안아주고 등을 쓸어주었다. 운전하는 남편은 괜찮다고 울어도 된다고 아이가 충분히 울게 했다. 누나가 우는 동안 동생도 조용히 있었다.


사실 나는 그리운 외할머니를 오랜만에 찾아와 반가운 마음이었다. 자주 못 와본 것이 죄송한 마음으로만 돌아오던 길이었기에 아이의 슬픔에 당황스러웠다.


집에 가는 길 차 안에서 엉엉 10분을 넘게 울던 딸이 중간에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할머니가 엄마~라고 부르니까… ”

라고 말하다가 또 할머니의 ‘엄마’ 소리가 생각났는지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외할머니가 부르던 ‘엄마~’ 소리를 가슴으로 들었던 것 같다. 뭔가 슬픈 이야기를 나에게서 듣거나 내가 울어서가 아니라, 외할머니의 부르는 소리가 그대로 아이의 가슴으로 전해졌던 것 같다.

‘엄마~’하고 부르며 산소를 바라보던 할머니의 그리움 담은 사랑과 안타까움의 소리.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사는 아이는 그 울림을 그대로 느낀다. 그래서 머리로는 멈출 수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딸은 나보다 먼저 들었었나 보다.

외할머니가 떠나시고 내가 부를 엄마 소리를..

그리고 4학년 아이의 마음으로는 너무 슬플

미래에 내가 가고 자기가 부를 엄마 소리를..




엄마… 엄마.. 그 소리는 과연 무엇이길래

우리를 살리고 웃게 하고 울게 하며

마음에 이토록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일까?


하고 싶고 듣고 싶은 소리인데

잘못하면 눈물이 쏟아져 버리는 소리.

엄마.


남편에게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내가 가사를 써야겠다.

가사는 ‘엄마’ 한 단어로만 채워진 곡.


가슴으로 바로 닿을 수 있는 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가슴으로 듣는 사람들은

가사가 많을 필요가 없다.


자신의 엄마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면

이 노래는 누구라도 부를 수 있다.

다만 가슴으로 부를 수 있는 가수를 찾고 있다.


엄마를 절절이 부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듣는 사람의 눈물을 쏟게 만드는

명가수가 되는 노래.


부르는 사람의 사연마다 다르게 감동을 줄

단순하고도 깊은 노래.


아무런 번역이 필요 없이 전 인류가 함께 부르고

하나의 마음이 될 노래.


'엄마'라는 노래를 만들게 되면

엄마가 내 목소리를 들으실 수 있는 동안 크게 불러드리고 싶다.

혹시나 함께 부를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아직은 슬픔보다 기쁨으로 부르는 내 엄마를 더 크게 불러보고 싶다.

엄마~ 엄마~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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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주
“엄마”

*매거진의 이전 글, 늘봄유정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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