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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15. 2022

못 말리는 그녀

보글보글 글놀이 < 어머니 > 

엄마. 

어머니.

이 이름 앞에서 어떤 감정이 앞서시나요? 슬픔? 아련함? 짠함? 미움? 감사? 증오? 애달픔? 행복?.....

어머니를 생각하면 오만가지 감정과 생각이 일어납니다. 좋았다가 싫어지고, 감사하다가 짜증 나고, 짠하다가 답답하고... 우리 엄마에게서만 보이는 유난한 것들이 제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하지요. 저희 엄마는요...


* 완벽주의자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 손을 거쳐야 안심을 하고 미리미리 준비해야 마음을 놓는 사람이에요. 명절을 앞두면 냉장고에는 몇 개의 메모지가 붙죠. < 상차림 메뉴 >, < 장 볼 것 >, < 큰딸 싸 보낼 것 >, < 작은 딸 싸 보낼 것 >이라고 쓰여 있는 메모지 옆에는 냉장실과 냉동실에 어떤 식재료가 들어있는지 빼곡히 쓰여있는 종이가 붙어있어요. 완료, 완수한 것 위에는 작대기가 그어져 있지요. "하두 깜빡깜빡해서 써놓은 거야~"라고 하지만 엄마의 오랜 습관이에요. 줘야 할 것을 못줬거나 해야 할 일을 못하면 한참을 자책하는 게 싫은 거죠. 


청소, 정리는 또 어떻고요?

젊은 시절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장롱 위 먼지까지 매일매일 닦아냈지요. 집안 곳곳에는 누런색 테이프가 놓여있어서 언제든 입으로 쓱 뜯어 옷이나 각종 패브릭에 묻은 먼지, 머리카락을 떼어내지요. 요즘은 돌돌이 테이프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가격 대비 성능은 누런색 테이프를 못 따라간다며 입으로 쓱, 정확히 뜯어냅니다. 

뭐 하나 흐트러져있는 법도 없어요. 서랍, 찬장, 신발장 어디를 열어도 칼각입니다. 이번 명절에 친정에서 싱크대를 열어본 제가 이렇게 칭찬해드렸지요.

"와... 우리 재옥이. 살림 기가 막히게 하네~~ 딸 안 닮으셨어~"

엄마는 "쟤는? 요즘 바빠서 통 살림에 신경 못썼는데~"라며 쑥스러움과 우쭐함을 반반 섞은 표정을 지으셨죠. 


요리도 마찬가집니다. 

맛도 맛이지만 생각해 놓은 접시, 구상해놓은 데코와 궁합, 요리 순서 등을 맞추기 위해 늘 분주합니다. 귀찮고 번거로운 것을 꼼꼼하고 고집스럽게 하는 재주가 있죠. "굳이 그렇게까지?"라고 물으면 "이왕이면~"이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빨래도 그래요...

분류부터 복잡합니다. 손빨래용과 세탁기용으로 1차 분류를 하고 세탁기용 빨래는 다시 흰색 겉옷 어두운 색 겉옷, 속옷, 양말, 수건으로 또 분류합니다. 그러니 세탁기는 종일 분주하게 돌아가지요. 신발도 한 번 신은 신발은 깨끗이 닦아 신발장에 넣습니다. 6년 전 함께 산 로퍼가 있는데, 제 것은 이미 수년 전 닳아서 버렸지만 어머니 신발은 여전히 새것처럼 상자에 담겨 있더군요. 며칠 전에도 신었다는데 말이죠. 


* 잔소리 끝판왕

본인에게만 엄격하면 좋을 텐데 주변 사람들에게도 요구를 하니 그게 문제입니다.  

딸네 집에 가면 냉장고부터 온 집안을 스캔하고 잔소리가 시작됩니다. 

"아이고~ 우리 딸 어떻게 하면 좋냐? 이건 언제 사둔 건데 아직도 안 먹었니? 무슨 빨래가 이렇게 많아? 구석에 먼지 봐라. 뭘 이렇게 늘어놨어? 너 베란다 창틀 청소 안 한 지 얼마나 됐니? 이 먼지 좀 봐라." 

그 소리가 싫어서 어머니가 오신다고 하면 3일 전부터 대청소를 합니다. 제가 낯선 곳을 치우기 시작하면 남편이 묻죠. 

"장모님 오신대?"


어머니를 잘 아는 아버지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엄마는 신경 쓸게 너무 많아서 쉽게 죽지도 못할 거야. 관 뚜껑 덮으려고 하면 일어나서 '여보! 냉장고 첫 번째 칸에 있는 나물 쉬기 전에 빨리 먹어?'라고 말하고, 또 덮으려고 하면 '며칠날 어디에 내야 하는 공과금 잊지 말고 꼭 내요!'하고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할 거야. 정말 못 말려~"


* 최강 오지라퍼

정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일단 마음에 들어온 사람에게 정을 쏟아야 할 만큼 쏟지 않으면 찝찝해 못 견뎌합니다. 상대가 1을 주면 2를 주어야 마음 편해하고 말이죠. 할인마트에서 믹스커피 200개들이 한 박스를 샀는데 점원이 덤을 많이 챙겨줬다며 쑥개떡을 만들어다 준 적도 있지요. 점원이 자기 꺼 준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챙기냐고 제가 타박하면 "여러 번 그렇게 챙겨줬어~ 또, 그래야 다음에도 계속 챙겨주지~"라고 변명을 하시죠.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또 반죽을 치대고 있는 겁니다. 


오후 네시만 되면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길을 나서는 어머니는, 대형마트 두 곳과 대형 슈퍼 두 곳을 돌며 가격 비교 분석 시간을 갖습니다. '감자가 100g에 A마트 얼마, C 슈퍼 얼마', '세일 기간은 A가 며칠부터 며칠까지 B가 언제까지' 이렇게 세일 품목, 기간, 100g 당 가격 등을 머릿속에 담아 분석기를 돌린 뒤 장을 봅니다. 본인 것만 사느냐. 아니죠... 큰딸, 작은 딸 것까지 챙기느라 몇 번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친정에 가면 두루마리 휴지부터 식초, 간장 등을 잔뜩 받아올 수밖에 없지요. 가까이 사는 제 동생은, 띵동 벨 소리에 나가보면 문 앞에 각종 과일부터 채소까지 수시로 놓여있다고 하네요. 과일이나 채소를 조금이라도 비싸게 주고 샀다는 소식을 들으면 폭풍 잔소리를 들어야 하고요. 힘든데 제발 그만 좀 하시라고 하면 늘 같은 대답이 돌아옵니다.

"치매 예방차원에서 하는 거야. 머릿속으로 숫자 계속 떠올리면 머리 운동 되잖아. 왔다 갔다 하면서 걷기 운동하고. 신경 쓰지 마~ 엄마는 그게 재미야. 하루 종일 얼마나 심심하다고."

정말 못 말리는 재옥씨...


얼마 전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명절 때 친정에 갔는데, 그렇게 깔끔하던 친정 엄마의 부엌살림이 더러워진 것을 보고 속상하다는 내용이었지요. 싱크대에는 찐득한 때가 끼어있고 냄비에는 말라 붙은 음식찌꺼기가 그대로였답니다. 손을 걷어붙이고 닦고 있는 딸 옆에서 친정 엄마는 민망해하셨고 글쓴이는 마음속으로 울었다고 합니다. 


저의 못 말리는 재옥씨가 계속 못 말리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깔끔하고 완벽한 성격 탓에 잔소리는 넘치지만, 정은 많은 재옥씨니까요.

좋았다가 싫어지고, 감사하다가 짜증 나고, 짠하다가 답답해지는 것은 순전히 저의 일관되지 못한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쭉 못 말리는 그녀였으면... 그랬으면... 


* 대문 사진은, 잡지에 실렸던 어머니 사진입니다. 



* 매거진의 이전 글, 김장훈 작가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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