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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Dec 30. 2022

동그란 미소를 띠며 안녕 (feat.정지찬 <잘 가>)

보글보글 글놀이 주제 “2022년을 보내며”


*루프스테이션이라는 도구로 한 악기씩 연주해 녹음한 소리를 쌓아가며 만들어가는 남편의 <잘 가>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제 글을 읽어주신다면 더욱 좋습니다.

<잘가> 작사. 작곡 정지찬  앨범 <One Man> 수록곡 / MBC ‘라라라’ 2006.


동그란 미소를 띄며 안녕


대학시절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으로 올해 2022년을 시작했었다. 삶이 끝난 슬픔을 안고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무거웠었다.


하지만 원을 그릴 때 끝은 시작으로 다시 이어진다.

친구와 함께 보냈던 대학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동그란 원이 겹겹이 쌓인 듯, 긴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 눈앞에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생생히 보이는 경험을 했다.


일 년 동안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 내 마음이 가는 곳, 열린 곳으로 걸어갔던 나의 길은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나도 모르게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의 <인생 수업>, <사후생>이외 몇몇 죽음 관련 책들을 찾아 읽었고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의 서울대 정현채 교수님의 온라인 강의를 들었었다. 아름다웠던 책 <죽은 자의 집청소>의 김완 작가님을 만났고, 죽음 세미나를 참여해 나의 유언장을 작성해보기도 했다. 일 년간 함께해온 책방 <너의 작업실>의 온라인 글방에서 나의 장례식에 초대할 글로 내 소개를 하기도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 그 어느 해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졌던 한 해였다.



그리고 햇수로 벌써 6년 동안 매주 이어오는 하브루타 독서모임에서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을 읽어오는 중에 <싯다르타>에 와서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그는 동시에 붉은 입술에 이글이글 타는 듯한 눈을 가진 자기의 젊은 얼굴과 그녀의 젊은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현존과 동시에 대한 의식이, 영원에 대한 의식이 철두철미하게 그를 파고들었다. 그는 이 순간에 깊게, 어느 때보다도 깊게 모든 생의 불멸성과 순간의 영원성을 절감했다.

<싯다르타> 문예출판사, 145


헤세의 글 마지막 즈음, 싯다르타가 깨달은 것 중 한 가지는 ‘언젠가는’ 이란 것이 미망이라는 것이다. 죄인은 부처가 되는 도중에 있는 것이 아니며 죄인 속에 지금 오늘 이미 미래의 부처가 있는 것, 세계는 불완전하지 않고 완전한 곳으로 향하는 것도 아닌 이미 순간마다 완전하다는 이야기였다.

모든 탄생에는 이미 죽음이 들어가 있고 모든 죽어가는 존재 속에는 이미 영생이 깃들어있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건네는 대목에서 나는 삶이 이렇게 반복되는 원을 그려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억지로 애쓰며 선을 이으려 하기보다 나와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저 사랑하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내가 할 일일 뿐인 것이었다.


그동안 연말마다 나는 다이어리를 펴고 정산을 해왔었다. 물론 멘털 인벤토리(마음 정산)는 삶에서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애쓰고 애썼던 일들을 돌아보고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평가하고 분석하는데 시간을 들였다면,

올해 2022년을 마무리하는 지금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고통과 기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싶다.


잘 가~ 하고 잘 이별하려 한다.

또 새로운 만남(그 만남이 고통이 될지 기쁨이 될지 알 수 없는)을 양팔 벌려 받아들이는 용기를 내려한다.

목적에만 사로잡혀 애쓰고 구하는 상태보다

더 자유롭게 열려있는 상태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마지막으로, 또 처음으로 인사해 본다.


안녕~잘 가요~

안녕~ 반가워요~

잘 가

작사. 작곡 정지찬 /
정지찬 <One Man> 수록곡

​사랑이란 원을 그려가는 것
보이지 않는 그 선을 이어
처음은 다시 끝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우린 이별을 알게 돼

잘 가
어느새 우린 참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아
잘 가
우리가 만든 커다란 원의 처음으로 돌아온 것뿐

이별이란 처음이 끝을 만나는 것
아쉬운 난 또 선을 이어
그럴수록 우리 사랑의 원은 일그러져만 가지
우리의 추억도

​잘 가
어느새 우린 참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아
잘 가 ...

​​​​


*매거진의 이전 글,

이별이 곧 만남으로 이어질 아르웬 작가님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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