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매거진] 글놀이 "2022년을 보내며..."
"그럴 돈 있으면 식구들이랑 소고기나 사 묵어!"
답답한데 점이라도 보러 갈까 푸념을 늘어놓을 때마다 절친 순자는 말했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자기한테 물어보라고 했죠. 제가 듣고 싶은 말 정도는 자기도 얼마든 해줄 수 있다며 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큰아들, 이번에는 대학 갈까?"라고 물으면 "갸는 걱정도 말어! 다 잘될 것이다!"라고 말해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순자의 말대로 큰아이는 재수에 성공했지요. 그녀를 안 이후부터 점보는 데 돈을 쓰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 몰래 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는 루틴이죠. 매년 12월,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여성잡지를 선물하셨는데, 거기에 부록으로 딸려있던 <토정비결> 때문에 저 역시 12월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생년월일시를 대입해 내 것으로 점쳐진 운명을 찾아내 읽으면 다음 해를 위한 전투태세를 갖춘 것 같았지요. 요즘도 다르지 않습니다. 카드사 앱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사주 정보로 다음 해의 토정비결을 확인하고 화면 캡처를 해둡니다. 매월 초가 되면 다시 들어가 월별 세부 내용을 확인하지요. 그렇게 한 달 한 달 살다 보면 한 해가 저뭅니다.
2022년 토정비결이 참 좋았습니다. 이전까지는 답답한 해가 많았는데 올해는 달랐습니다.
말을 타고 장안(長安)을 달리니 봄바람에 그 뜻을 얻게 되는 형국.
복사꽃과 오얏꽃이 가득 피어나고 그 꽃이 향기를 전하니 나의 이름이 사방에 알려지게 됨.
높은 곳에 오르니 일신이 저절로 편해지고 운수가 대길한 기운. 높은 곳은 오르기에 힘을 써야 하니 특별한 노력을 요구함. 쉬지 말고 정진하라는 뜻.
운수는 대길하나 심중에 괴로움이 있으니 마음을 편히 하고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
대길운에 소원성취이니 시간을 아껴 쓸 것.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딱 들어맞습니다.
디베이트 코치로서 용인을 달리며 살았습니다. 오전에는 봉사와 강의, 스터디, 회의로 바빴습니다. 오후에는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부수입을 벌었고 연말에는 교육청 포럼에서 패널로 발표하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유튜브 생중계로 아내의 모습을 확인한 남편이 참 흐뭇해했죠. 큰돈을 벌어다 주는 아내는 아니지만 열심히 뭘 하기는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심어준 것 같습니다.
가족들의 운수도 좋았습니다. 남편은 3년 공부 끝에 자격증을 취득했고 둘째는 꿈에 그리던 학교에 합격했으며 첫째는 무사하게 군 복무를 마무리하는 중입니다. 군 복무 중 지게차 운전면허를 취득했고 '대한민국 육군 300 워리어' 대회에 나가 해당 부문 3위를 차지했습니다.
토정비결이 예견한 대로 "이름이 사방에" 알려지는 일들이 많았고 "운수는 대길"했습니다. 참 잘 맞았습니다. 그 밖에 새로운 가족이 들어온다는 것, 친척 중에 갑자기 돌아가시는 분이 있다는 것,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된다는 것, 귀인이 나타나 일을 준다는 것, 몸에 이상신호가 생긴다는 것도 맞았습니다.
사실 토정비결을 비롯해 점을 본다는 건 '혈액형 별 성격유형'처럼 '이현령 비현령(耳懸鈴 鼻懸鈴)'의 성격이 강합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며 내 상황에 끼워 맞추기 식으로 해석하게 마련이지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바넘 효과'라고 합니다. 일반적이고 모호해서 누구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을 특별한 나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학적 근거, 논리적인 상관관계는 없습니다. 그저 신기하게도 맞을 뿐입니다.
2022년 토정비결에서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쉬지 말고 정진할 것'이라든가 '심중에 괴로움이 있음', '시간을 아껴 쓸 것'이라는 표현은 꼭 저를 대상으로 하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당연한 말씀입니다. 어느 가정에나 새 식구가 들어오는 일은 있기 마련이고 연로하셔서 돌아가시는 분도 계시지요. 그럼에도 그 예언들을 곱씹는 이유는 1년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됐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을 예견한 문장에서는 희망과 기대를 품게 됩니다.
나쁜 일을 예견한 지점에서는 경각심을 갖고 신경 쓰게 됩니다.
좋은 일을 맞췄을 때는 신기해하면서 한껏 기뻐하고,
나쁜 일을 맞췄을 때는 그나마 약하게 지나간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좋은 일, 나쁜 일, 행복한 일, 힘들었던 일 모두 한 데 버무려보니 꽤 괜찮았던 한 해가 또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잘 버틴 한 해가 차분히 쌓였습니다.
자... 이제 내년 토정비결을 한번 보러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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