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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Feb 18. 2023

93세까지 내가 일기를 쓴다면

하루의 기록 남기기

평생 가져가고 싶은 좋은 습관이 하나쯤 있는가?


매일 비슷하게 이어지는 하루지만 단 한 가지씩이라도 마음에 드는 습관을 하나 만들면 그것은 안 좋은 습관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일보다 훨씬 더 원하는 삶에 가까이 갈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습관이나 루틴, 리추얼에 관한 책이나 영상들이 홍수처럼 쏟아져도, 실제로 그걸 보고 '행동'으로 옮기고 오래 지속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기록에 대한 글을 쓰려는데 눈앞에 발견된 책. 바로 구매


매년 초 일기 쓰기나 플래너 쓰기를 목표로 설레는 첫 장을 시작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새 다이어리를 장만한 사람들 중, 현재 2월의 중순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잘 이어오는 사람은 반도 안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하루 이틀 정도의 기록은 가능하지만 매일 일상을 기록하고 성찰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습관이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데다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 금방 새 다이어리에 싫증이 나버려 어느 순간부터는 들여다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나의 좋은 습관_일기


나는 일기를 써온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초등 4학년때의 기록이 시작이었고(참고 글 링크: '세계 기억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방법​) 중,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짤막하게나마 써왔던 일기를 지금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학교 숙제로 억지로 써가야 했던 어린 시절의 일기장이라도 읽다 보면 나만의 솔직함이 그대로 묻어나있었다. 매일 일기를 쓸 때마다 뭘 쓸지 떠오르지 않다가 막상 한 줄만 쓰고 나면 그다음을 술술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점점 습관이 되었고. 숙제가 아니라도 일기를 쓰곤 했다. 특히 힘들거나 감한 감정이 들 때마다 일기장에 파고들어 치열하게 고민을 파해치기도 했다. 혼자 자문자답을 하기도, 끝도 없는 독백을 쓰고 다시 보지 않게 페이지를 서로 풀로 붙여버리기도 했었다.

습관이 되고 나니 일기와 마주하는 시간은 당연하고 즐거운 일과가 되었다.


-고민해결사_일기


심각한 고민 속에 있던 날이더라도 그전에 써둔 일상기록들을 슬쩍 넘겨 보다 보면 어느새 그 고민이 해결되어 있거나 더 이상 그런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렇게까지 힘들었던 걸까 스스로 물었다. 똑같은 내가 썼지만 달라져 있는 나를 일기를 통해서 바라볼 수 있었다. 말없이 들어주는 고민해결사는 하얀 귀를 활짝 열고 고민들을 누구보다 끝까지 잘 들어주었다.


-내 마음속 응원단장_일기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 기록을 다시 보게 될 나를 기대하게 되었다. 어느 날 고민 속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마음의 반쪽은 이미 해결된 이후의 내 상태를 미리 알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일기를 손에 들 때마다 신이 나서 마음껏 스스로에게 칭찬을 쏟아내기도 했다. 일기의 효과를 무한 신뢰하며 매일의 감사한 기록을 이어갔고 쓸 때마다 기운이 났다. 힘이 빠질 때도 일기를 찾아 격려를 구했고, 즐거울 때도 그 순간을 꼭 되새김 질 하려고 일기응원단장을 찾았다.


- 비교 불가한 오래된 친구_일기


개인적인 내면의 기록과 예술가로서의 사회적인 기록을 남겼던 소설가 아나이스 린은 60여 년간 매일 쓴 일기가 150권 분량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걸으면서도 글을 쓰며 기록을 남겼다고 하지만 나는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40년 정도 일기를 써왔다. (앞으로 20년만 더?!!) 일기는 남의 일기와 비교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 만족할 정도만 써도 이해해 주는 오랜 친구다.


- 청소 도우미_일기


보통의 엄마의 분주한 삶에 ‘글쓰기’까지 함께 넣어 살고 있는 나의 하루는 꽉 차있어 어지러울 것 같지만 일기를 쓸수록 더 정리가 된다. 하루의 기록으로 남겨진 메모들이 긴 글이 되었고 책의 한 부분이 되었고 다른 일을 할 때 아이디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글로 써서 내려놓으면 마음도 비워지기도 했다. 마음의 청소처럼 죄책감이나 슬픔을 글로 덜어내는 일은 일기가 제격이었다. 막힌 곳을 뚫어주는 역할을 해주어 관계나 삶의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기도 했다.


- 예언가_일기


소설가가 모아두는 스토리의 특별한 소재는 아니더라도 일상적 삶 속의 에피소드는 작지만 그래서 더 잘 기록해 두어야 한다. 어쩔 때는 이런 작은 순간처럼 보이는 일이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기 위해 오늘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직감을 강하게 느끼기도 한다. 마치 내가 남편과 처음 손잡았던 날 써두었던 일기처럼 말이다.

공동매거진 발행할 글을 써야할때면 읽고 싶은 책이 똭!

- 살아있는 변명꾼_일기


오늘 브런치 글을 써야 하는 오전에 글을 쓰러 카페에 갔다.

북카페이다 보니 전시된 책을 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순간 한 책이 나에게 말을 걸 듯, 책 커버가 눈에 확 들어와 버렸다. 결국 글을 쓰지 못하고 책만 읽다 밤에 글을 발행하고 말았다... 는 오늘의 변명 기록은 사실이 그대로 녹아있다. 일기는 진짜 오늘 '하루의 기록'으로 살아있다.


-설레는 일상 창조자_일기


쓰고 나면 더 오래 기억이 난다. 그러려고 일부러 쓴다. 내가 만든 하루에 언제나 주인공으로 사는 나는 그날 내가 바라보고 내가 선택하는 것으로 나 스스로 하루를 창조해 낸다. 일기가 쓰일 밤 시간을 기대하며 움직이는 낮의 선택들은 기대와 설렘이 가득하다.

순전히 하루를 스스로 창조하며 사는 일상 예술가로 사는 것이 일기를 쓰는 것 만으로 가능하다는 소리다.

-그리고 진짜 오늘의 일기


예술의 전당에 93세 현존하는 화가, '앙드레 브라질리에'의 전시를 보러 갔다.

하루 중 어느 때인지 몰라 그저  '브라질리에의 시간'이라고 불리는 핫핑크색 하늘은 놀라울 만큼 아름다웠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말들을 그린 작품들, 그리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인 음악과 아내, 샹탈을 그린 그림들을 원 없이 보고 왔다.


일기를 쓰듯 최근까지 매일 살아있는 그림을 그려온 전설의 화가는 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또한 자식을 하늘로 일찍 보낸 개인적 아픔을 겪었지만 그가 창조한 그림은 아름답고도 환상적이기만 했다. 자신의 그림들을 보며 사람들도 행복하길 바라는 화가는 그림을 그림으로서 자신도 행복했을 것이다.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눈을 감은채 음악의 환희를 그린 화가, 평생 단 한 명, 자신의 아내를 백발이 될때까지 아름답게 그린 화가의 70여년의 기록은 진정 살아있는 예술을 느끼게 했다.


 그가 아내 샹탈에게 가장 자주 했다는 말이 있다.


"잠깐만! 그대로 가만히 있어봐!"


나는 얼마나 자주 순간에 멈추었던가.

내가 사랑하는 주변을 기록하는 일에 진심을 다했었던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기는 잠깐만! 그대로 가만히 나를 남기는 매일의 기록이다.


오래 이어가고 있는 나만의 좋은 습관_일기는 내 하루의 기록이 변화하고 발전해 앙드레 브라질리에처럼 90세 즈음이 될 무렵, 살아있는 예술이 되어 어떤 것으로 새롭게 창조되어있지 않을까? (나는 이런 상상일기가 가장 재미있다.)

사진 촬영 금지라 120점의 유화와 스케치를 마음속에만 기록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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