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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Feb 18. 2023

별 반 다를 것 없는 직장인의 하루, 그 의미에 관하여

하루를 기록하며 의미를 발견하다

세찬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잠시 그대로 누워 있다가 일어난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밤 새 집 안 곳곳을 차지한 차가운 공기가 살에 맞닿아 몸서리치게 만든다. 얼른 샤워기에 뜨거운 물을 틀고 몸을 데운다. 씻고 나오면 그제야 정신이 들며 하루를 살아낼 준비를 시작한다.


아침은 간단히 바나나와 두유를 갈아 마신다. 최근에 아내가 경품으로 믹서기를 받았는데, 꽤 쓸만했다. 약품통에서 고지혈증 약도 챙겨 먹는다.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간다. 집 앞 길건너에 얼마 전 빵집이 하나 생겼다. 살짝 마스크를 내리고 코에 닿는 고소한 빵 굽는 냄새를 맡는다. 내가 출근하고, 그가 빵집을 여는 시간이 같아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지하철은 한산하다. 5호선에서 두 정거장 지나 2호선으로 갈아탄다. 4호선으로 또다시 환승을 해야 하기에 늘 상 6-2 앞에 선다. 문이 열리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이때부터 내 손은 바삐 움직인다. 온라인 매일글쓰기 방에 올릴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대략 50분, 글감이 떠오르면 그때부터 직진이다. 그 순간 주변엔 검은 장막이 쳐지고 홀로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내 앞에 누가 있는지, 옆자리가 계속 바뀌어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4호선에서 환승해서 마지막 종착지까지 몇 정거장 남지 않았다. 드디어 글을 마무리하고, 발행 버튼을 누른다. 그리곤 카톡방에 글을 공유한다. 남은 시간은 글벗이 쓴 글을 찾아 읽으며 공감과 댓글을 남긴다. 마음 같아선 모든 글을 읽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한정된 시간이 발목을 잡았다.


회사에 도착해서 지하에 있는 사내 헬스장부터 들른다. 몹시 불어난 살을 빼려 작년부터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러닝머신 30분 뛰기. 마스크를 벗고 뛸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행복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음을 피부로 체감 중이다. 운동을 마치고 씻고 나오면 이제부터 하루의 전쟁이 시작된다.

업무 특성상 연락이 수시로 온다. 예산이 필요한 기관의 적절성을 검토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 바쁜 시즌을 맞이해서 제출할 서류도 한가득이다. 전화를 받고, 서류를 작성하다 보면 어느새 오전 시간이 다 갔다. 이때부터 내 눈은 온통 사내 메신저로 향한다. 길벗과의 점심 산책 때문이다. 메신저에 한동안 불이 난다. 어디로 갈지 의견이 오가다 드디어 정했다. 날이 화창했다. 난이도 있는 밤산을 가기로 했다. 점심 방송만 울리길 오매불망 기다렸다. 이미 내 마음, 몸은 모두 산으로 향했다.


걸으며 좋은 건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가득 나눌 수 있다. 갑갑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드넓은 풍경에 온몸을 던진다. 오래간만에 반가운 후배가 함께 했다. 퍽퍽한 직장생활에 마음 맞는 길벗이 있어 버틸 힘이 되었다. 웃고 떠들다 보니 산 밑에 다다랐다. 산에 오르며 아직은 쌀쌀한 날씨임에도 땀이 났다. 겉 옷을 벗어 허리쯤에 메고 계속 나아갔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순간이 좋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산 중턱에 나란히 앉아 먼 곳을 바라보았다. 센스 있는 후배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누군가 뉴질랜드에 온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산하는 발걸음은 다소 무겁다. 이럴 땐 조퇴를 하고 머물고 싶다. 충동을 간신히 참고 다시 회사로 향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잔을 뽑아 자리에 앉았다. 산 기운을 받았으니 좀 더 힘을 내봐야지. 오늘까지 반드시 완성할 서류에 집중했다. 오늘은 수월하게 넘어가나 했더니 복잡한 문제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왔다. 삶은 늘 예측 불가이다. 하나씩 처리하다 보니 벌써 오후 3시가 다 되었다. 자리에서 한번 일어날 여유조차 없었다. 그때 마침 옆부서 동기가 메신저로 한 바퀴 돌자고 연락이 왔다. 머리 식힐 적절한 때였다.


동기와 크게 회사 주변을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듣고, 말할 수 있는 사이는 흔치 않다. 그럴 수 있는 동기가 있기에 고맙고 감사했다. 늘 표현은 못하지만. 그래도 바깥공기를 마시고 나니 한결 개운했다.


자리에 다시 앉았다. 오늘도 야근할 각이다. 3일 연달아했더니 체력이 부쳤다. 예전만 해도 아무렇지 않더구먼. 이제 나도 그럴 나이가 되었나 보다. 그래도 최대한 일찍 마무리하고 아이들 얼굴은 꼭 보고 자야지.


별 반 다를 것 없이 반복되는 하루, 그래도 그 하루가 있기에 나의 삶도 의미를 찾는다.



보글보글 매거진 이번주 글감은 '나의 하루 기록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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