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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Mar 18. 2020

디스토피아 SF 영화와
‘입막힌 자들의 도시’

믿음의 벨트로 연대합시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아닌 ‘입막힌 자들의 도시’에 사는 듯하다.
코로나19 여파가 전 세계적으로 드세다. 어느새 마스크는 일상 속 에티켓을 넘어 생존템이 됐다. 현대판 허생전도 아니고 ‘마스크값이 금값’인 상황까지 이르자, 정부는 최근 1인당 마스크 구매량을 일주일에 2개로, 출생연도 끝자리에 따라 요일별로 구매를 제한하는 ‘마스크 5부제’까지 발표했다. 나는 수요일 아니면 주말에만 마스크를 살 수 있다. 살면서 처음 겪는 난리통이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건 경제 타격이다. 오프라인 경험을 파는 문화예술계는 그야말로 치명타를 맞았다. 지난달 영화관 박스오피스 관객수는 16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고, 신작 개봉은 줄줄이 연기됐다. 경제 타격뿐만 아니다. 잔인한 봄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디스토피아적인 전망 속에서 코로나19 감염 진단 키트는 혐오, 불평등, 사재기, 종교 등 여러 관점에서 우리 사회 민낯까지 진단했다. 혐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서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번졌고, 비정규직 콜센터 직원들은 1m 간격의 좁은 닭장 같은 근무환경에서 집단 감염에 노출됐다. 이토록 우울한 장기전에서도 간혹 들려오는 ‘마스크 기부’ 같은 미담은 우리에게 희망과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왼쪽부터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 <우주전쟁>(2005), <아이, 로봇>(2004)


마치 진단 키트처럼,
디스토피아 SF 영화는 우리가 지금 현실에서 겪는 문제 혹은 우리가 갖고 있는 근원적인 불안을 담는 알레고리로 기능한다. SF 영화(Science fiction film, Sci-fi film)는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구성된 허구의 이야기를 다룬다. 디스토피아(Dystopia)는 ‘역(逆)유토피아(utopia)’라는 뜻으로, 이상향인 유토피아와 반대로 가장 부정적인 모습의 암흑세계를 그린다. 두 단어가 합쳐진 디스토피아 SF 영화는 극단적으로 암울한 현대 사회의 미래상을 보여준다. 핵전쟁, 외계 침공, 인공지능(AI)의 반란, 재난, 좀비 등 무궁무진한 원인이 재앙을 촉발한다. 지구가 파국을 맞이하고 인류 문명이 멸망한 이후 세계를 묘사한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 Apocalypse) 영화도 디스토피아 SF 영화에 포함된다.

왼쪽부터 <설국열차>(2013), <브이 포 벤데타>(2005)


『21세기 SF영화의 논점들』에서는 디스토피아 SF 영화의 전개 양상을
‘개인의 생존 투쟁’과 ‘국가 혹은 집단의 통제’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한다. 시스템과 규범이 붕괴된 사회 속에서 누군가의 생명은 개개인의 윤리감각에 위태롭게 맡겨지기 마련이다. 누구나 다른 이를 쉽게 해할 수 있고, 나 또한 그 타겟이 될 수 있다. 만약 시스템과 규범이 아직 무너지기 전이라면, 통제 권력은 그 위치를 공고히 하고자 예외상태(state of exception)를 발동한다. ‘사회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설국열차>처럼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 공간을 분리하고, <브이 포 벤데타>처럼 사람들의 일상을 무차별적으로 엿본다. 갈등이 일어나는 근본 원인이 운 좋게 해결되어도, 구획화와 감시 매커니즘으로 예외상태는 상례화되기 쉽다. 통제받는 상황이 일상이 되는 거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열차 속에서도 휴머니즘이 빛났던 <부산행>(2016)


역사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추하듯, 우리의 무의식을 담은 SF 영화는 더 나은 삶의 형태를 고민할 기회를 준다. 인간이 원치 않게 겪게 된 비극이 더 큰 비극으로 번지지 않고,
‘무방비에서 벗어나 연대할 수 있도록. ‘그래, 무릇 사람이라면 이래야지’라는 감동의 형태, 혹은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까진 망가지지 말자’라는 반작용식 교훈으로. 우리의 일상이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아, SF 영화가 주는 소중한 기회를 극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마스크 없이 말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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