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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Mar 29. 2020

역병이 불러올
‘제2의 디지털 르네상스’

사회적 거리두기와 밈(meme)이 만났을 때


암스테르담 국립 박물관 페이스북 페이지의 ‘Stay At Home’ 챌린지, 렘브란트 명화 <야경>을 카피한 모습 (@rijksmuseum)



역병이 돌아도 사람들은 밈(meme)을 만들고, 사람을 사귄다. 밈은 ‘짤’의 영어식 표현으로, 인터넷 유행 콘텐츠를 말한다. 사람들은 클럽을 못 가니 룸메이트들과 방 안에서 신들린 병뚜껑 디제잉을 선보였고, 미술관을 못 가니 후추통으로 명화를 따라했다. 때로는 거북이와 빙고 게임을 하고, 창밖에 지나가는 차를 손으로 먹어 보고. 가족들과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가깝고도 낯선 사람들’임을 깨닫는다. 심지어 사회적 거리를 두는 와중에도 ‘각자 집’ 루프탑에서 만난 사람과 첫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한 기생충 가족, 조커, 어벤저스 군단 (@bosslogic)


“누가 자가격리가 쉽단 소리를 내었는가”


줄줄이 약속을 미루고 SNS 세상에 머물면서 ‘미친 씽크빅’에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런 창의성이 어떻게 발현됐는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약속을 미룬 슬픔이 그리 쉽게 가시진 않았다. 모두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만 하지, 이렇게까지 힘들 거라고는 알려주지 않았다. 영화 포스터 속 주인공들도 다 얌전히 집으로 향했고, 심지어 기업조차 앞다투며 잘   만   하   는   것   같   은   데 왜이렇게어려운지.


그러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읽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인간의 본성과 상반되기 때문에 매우 어렵다 것이 글의 제목이자 주제. 사회적 고립은 선사시대 때부터 오랫동안 각인된 ‘위험의 DNA’라는 거다. 혼자라는 사실은 굶주린 호랑이의 먹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긴박한 위협이 닥쳤을 때, 인간은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이라는 생리적 각성 상태를 겪는다.


비슷하지만 다른 맥락으로, 세계적인 영장류학자이자 진화심리학자인 마이클 토마셀로는 <초사회적 동물>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르는 표현이 엄밀히 말해 부정확하다고 지적했다. ‘초사회적 동물(ultra-social animal)’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라며. 사회성을 보이는 여타 동물들과 달리, 인류는 관계성과 도덕이라는 렌즈로 바깥세계를 인지하고 사회적으로 상호 작용해온 독특한 진화 궤적이 있다. 토마셀로는 협동, 규칙과 관습의 관점에서 유인원과의 비교실험을 통해, 인간의 사회성이 내재화된 본성임을 설명한다.


트위터리안들의 자가격리형 일상 (@YulesMusic, MatthewFoldi, gnuman1979, ParasiteGifs)


“우린 울트라 소셜하니까요


줄줄이 술약속을 미루는 것도 슬프지만, 나의 ‘금수 같은’ 정신머리를 스스로 탓하면서 더 슬퍼졌을지도 모른다. 이시국에 그깟 게 슬프냐며. 여타 ‘금수와 달라서’ 당연한 슬픔이었다. 당연한 슬픔 속에서, 비대면 온라인 소셜미디어는 우리가 안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사회성을 내보일 수 있는 유일한 창구로 기능한다.


역설적이지만 14세기 르네상스를 일으킨 원동력은 다름 아닌 흑사병이었다. 알베르 카뮈가 <페스트>에서 말했듯,  시절 사람들은 신을 믿었기에 역병을 믿지 않았다(they disbelieved in pestilences). 눈앞에 놓인 재앙을 보지 못한 , 사제의 조언 대로 신에게 빌었다. ‘ 악몽에서 깨어나게 해달라고.’ 그러나 페스트가 유럽 인구의 3분의 1가량을 휩쓰면서 사제들 또한 죽어나갔고, 사람들은 그제야 페스트를 현실로 받아들였다. 교회와 신에 대한 믿음 거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에서 인간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인문주의적 사고를 되살리는 ‘르네상스’가 등장한다.


 옛날 르네상스 시대로 다시 돌아가 보면, 페스트 때문에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아니었다. 갈릴레이는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말해 종교재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르네상스 3 거장인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빈치가 탄생했다. 회화와 건축, 원근법과 해부학이 본격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르네상스는 문학과 예술뿐 아니라 과학 혁명의 토대를 이뤄, 중세를 근세와 이어주는 시기가 됐다.


사람들은 늘 그래왔듯 자신의 일상을 사진으로, 비디오로 남기고 있다. 지루함과 외로움 속에서 새로운 자가격리형 엔터테인먼트가 등장했고 소비되는 모양새다. 페스트가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에서 르네상스를 일으켰다면, 코로나19는 ‘그럼에도 우리는 울트라 사회적 존재’라는 반발성 깨달음에서 디지털 르네상스를 일으킬지도 모르겠다. 아득하게 멀어보이는 우리의 옛 일상을 언제쯤 되찾을 수 있을까- 디스토피아적인 전망 속에서도 우리가 코로나 블루를 퇴치하는 법. 서로가 만든 짤에 낄낄거리는 와중에 새롭게 피어나는 희망.


그게 내가 본 코로나 사태의 유일한 순기능이다.




각자 집 루프탑에서 처음 만나 드론으로 번호를 교환해, 마침내 첫 데이트에 성공한 ‘쿼런틴 커플’ (@nytimes)


물리적 거리두기가 사회적 단절을 의미하진 않습니다(Just because we have to social distance does’t mean we have to be socially distant).- 제레미 코헨, 자가격리형 데이트에 성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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