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재 May 13. 2020

‘사랑’을 무기로 싸우는 레지스탕스

드라마 <종이의 집(La Casa de Papel)> 시즌 1 & 2



‘일찍 자리를 뜬다 vs. 가능한 늦게 떠난다’

만약 은행 강도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나 포함 대부분이
재빨리 털고 뜨는 편을 택하겠지만, 상황을 바꿔보자. 만약 은행이 아니라 ‘돈을 찍어내는’ 조폐국을 턴다면?

<종이의 집>은 넷플릭스에서
‘비영어권 드라마 1위’기록한 스페인식 범죄 스릴러 드라마다. 스페인식이라고 굳이 짚은 데는 이유가 있다. 스페인 음식만큼이나 달고, 맵고, 짜서 그렇다. 현재 시즌 4까지 공개됐는데, 그중 시즌 1과 시즌 2는 프로페서(알바로 모르테)로 불리는 천재와 8명의 공범이 조폐국을 강탈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목표 금액은 24억 유로, 한화로 약 3조 1,809억원.

일확천금을 꿈꾸는 이들은 패배자 인생에서 벗어나고자
프로페서의 ‘큰 그림’ 아래 뭉친다. 살바도르 달리가 그려진 가면을 쓰고, 새빨간 점프 슈트를 입고, 진짜 이름 대신 도시 이름을 가명으로 쓴다. 도쿄, 베를린, 나이로비, 모스크바처럼. 5개월간 치밀하게 범죄를 준비해온 끝에 첫화부터 조폐국 점거에 성공하지만, 점거는 ‘시작’에 불과하다. 무사히 탈출하기 앞서, 1유로라도 더 찍어내기 위해 최대한 오래 버텨야 한다.


그런데 이 강도들, 범행에 가담한 사정이 너무나 기구하다.
 대표적인 예가 드라마의 내레이터 도쿄(우르술라 코르베로)다. 다혈질에다 자유분방한 도쿄는 틈날 때마다(?) 팀에 일촉즉발 위기를 일으킨다. 강도단에 속했지만 반동인물로 오해받을 정도다. 드라마를 보던 나의 지인은 도쿄에게 “눈치 챙겨”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시청을 하차했다. 나 또한 도쿄가 답답했지만, 그의 ‘눈치 없음’은 외로움에서 나온 걸 알기에 미워할 수 없었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 평생 단 한 번 열 수 있는 ‘상상의 문’. 어린 도쿄는 일하러 간 엄마를 홀로 기다리면서도 끝내 그 문을 열지 않았다. 분명 더 외로운 순간이 찾아올 테니. 도쿄뿐 아니라 <종이의 집> 속 강도들 모두 인간적이다. 감정에 치우쳐 실수하고, 쉽게 쉽게 갈 수 있는 걸
매번 사랑 때문에 망쳐버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을 그르치는 이유도 사랑이지만, 일을 수습하는 힘도 사랑이라는 것.


이들은
사랑을 무기로 불합리한 체제에 도전한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강도 범죄는 결코 미화될 수 없지만 <종이의 집>에선 다르다. 강도단은 저항군이고, 조폐국을 터는 일은 레지스탕스다. 프로페서는 중앙은행이 ‘유동성 투입이라는 명목을 내세우면서 자신들과 똑같은 범죄를 숱하게 저질러왔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발행된 돈은 모두 부자들에게 흘러 들어갔다며. 레지스탕스로서 정당성을 잃지 않기 위해 ‘절대 인질을 죽이면 안 된다’는 원칙도 더한다.

화폐를 새로 발행하지 않더라도 지급 준비율을 낮추는 방식 등을 통해 시중 통화량은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조절될 수 있고, ‘1원’의 가치 또한 바뀔 수 있다. 결국 모든 건 ‘신뢰’의 문제다. 여담이지만 암호화폐가 등장한 배경도 이와 맞닿는다. 비트코인은 중앙정부와 은행을 믿을 수 없으니 너 스스로 은행이 돼라(Be your own bank)”는 슬로건 아래 태어났다. 우리 주위에서 쓰인 사례를 보면 그 의미가 많이 옅어진 것 같긴 하지만. 덧붙여 스페인의 실제 역사는 영화의 개연성을 높인다. 9년 전 스페인 국민들은 긴축 정책과 부패 정치에 분노해 마드리드의 중심인 솔 광장에 모였다.


OST로 쓰인
‘벨라 차오(Bella Ciao, 안녕 내 사랑)’는 중요한 장면마다 울려 퍼지며 주제를 부각시킨다. 벨라 차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 반파시즘 저항군이 나치 독일에 저항하며 부르던 민중가요다. 가사는 어느 날 ‘침략자들’을 보았고, 이들과 싸우다 죽을 준비가 됐다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을 고한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 그런가, 하이스트 장르의 전형적인 ‘쿨내’ 대신 땀내나는 ‘열기’가 음악에서도 느껴진다. 주인공들이 쓰는 스페인어도 드라마의 쫀득쫀득함과 섹시함을 한층 더한다. 내년 시즌 5가 나오기 전까지 정주행하면서, 놓았던 스페인어 책을 다시 잡으리라 다짐하게 된다.



Hola, qué tal? Me llamo Seúl.
(안녕,  지내?  이름은 서울.)




<종이의 집(La Casa de Papel)>
공개 |  시즌 1(2017), 2(2017), 3(2019), 4(2020)

제작 |  알렉스 피나

출연 |  우르슬라 코르베로, 알바로 모르테, 페드로 알론소 外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작가의 이전글 2020년 개봉 앞둔 디스토피아 기대작 5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