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오늘! 독후감! 올리는 날! 오늘!!! 독후감!!! 올리는 날!!!”
돌이켜보면 ‘데드라인’이었다. 커뮤니케이션, 좁게는 홍보라고 불리는 ‘링’에서 싸워온 나는 항상 마감일을 원동력으로 삼았다. 직업마다 업무의 사이클이 다르고 흔히 일주일이나 한 달을 기준으로 일이 반복된다고 하는데, 나에겐 하루가 한 사이클이었다.
갓 발표된 따끈따끈한 뉴스도 내일이면 짜게 식는다. 말을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이 집 찐이네” 소리가 듣고 싶었다. 스타트업에 있을 때는 작더라도 새로운 소식을 기업 안팎으로 매일 만들어내고 전했었다. “릴리즈 됐습니다” 이 말을 쓰는 사람도, 이 말에 제일 안도한 사람도 나였을 거다.
하다못해 지금도 마감을 지키기 위해 앉아 있다. 첫 트레바리 독후감을 어서 제출하라며, 독촉 문자를 받은 날 타자를 치는 중이다. (진짜 저기 위 문장처럼 느낌표 열두 개를 한 번에 받았다..) 하루살이 마감인간이 따로 없다.
짚고 넘어가자면, 난 불성실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하루키 말처럼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은’ 사람에 가깝다. 뭐든지 잘 하려는 마음이 가득해 끝까지 안 놓아주고 백스페이스질하다가 아슬아슬하게 데드라인에 맞춰 제출하는 그런 사람. 어디를 고쳤는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혼자 큼큼거리면서 뿌듯해하는 그런 사람. 학생 때도 그랬고, 직장인인 지금도 그렇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나 같이 소심한 야망쟁이들에게 딱 알맞은 농도의 위로를 준다. <노르웨이의 숲>, <IQ84> 등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자전적 에세이다. 어떻게 처음 소설을 쓰게 됐는지, 소설을 쓰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읽어 보니 소설가뿐 아니라 창작을 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다잡게 한다.
창작자라면 다들 각자 분야에서 ‘봉준호’가 되고 싶지 않나. 하루키는 독창성(Originality)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그리고 틀림없이 그 사람 자신의 것”. 이를 갖추기 위해선 어느 정도 시간의 경과가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작품이 연대기적인 실제 사례로 남겨질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는 것밖에 없다며.
작품 계열이 드러나고 장르로서 이름을 남기려면, 납득할 만한 작품을 하나라도 더 쌓아 올려 몸집을 불려야 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을 증명한 봉 감독도 대학 학보사 시절에는 ‘연돌이와 세순이’를 그린 노잼이었다. 노잼이 꿀잼이 되려면 일단 “지속적으로 써야 한다”.
직업의 세계를 다룬 인터뷰 시리즈 <잡스(JOBS)>에서는 에디터를 ‘좋은 것에서 좋은 것을 뽑아내는 사람’이라고 짚은 바 있다. 다시 봐도 좋은 말이다. 나에게 맞춰 말을 바꿔보면, 홍보인은 ‘좋아하는 것을 깊게 알아가고, 널리 알리고, 오래 지켜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깊게, 널리, 오래’라는 부사가 쓰이려면 글이 필요하다. 장문이 죽어가는 시대라고들 하지만, 숏클립에도 스토리텔링의 필요성은 남아 있다.
보도자료, 인터뷰, 카피, 리뷰, 스토리보드까지, 뭘 써도 잘 쓰는 사람. 올라가는 플랫폼이 뭐든 이야기의 흐름을 유려하게 주도하는 사람. 시간이 오래 걸려도 올라운더가 되고 싶다는 게 나의 야심이다. 그래서 브런치도 열었다. 좋은 것을 알리고 싶은 욕심과 함께, 최대한 다양한 글을 연습해 보자는 다짐에서. 혹시 나와 같은 이유로 브런치를 가꾸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건전한 야심을 키워나가 보자.
P.S.
봉준호 감독님, 존경합니다.
미드로 재탄생한 <설국열차>, 오는 25일 넷플릭스서 전격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