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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Jun 25. 2020

다시 봐도 ‘넌 계획이 다 있구나’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되짚기


* 오늘 왓챠플레이 유튜브에서 공개된 통역사 샤론 최의 산드라오 인터뷰를 보고, 몇 달 전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소식이 떠올랐다. 그동안 많이 이야기돼 새로울 건 없지만, 그때의 감정을 되짚고 싶어 메모장에서 잠자던 글을 꺼내 본다. 글을 올리는 지금 시점에 맞춰 표현만 조금 다듬었다. 원래 있던 판에 맞추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판을 짜서 선보이는 것. 다시 봐도 멋지고, 용기가 된다.





‘최고, 최다, 최초’. 영화 <기생충>은 지난 2월 ‘아카데미상 4관왕’이라는 쾌거로 한국 영화사를 새롭게 썼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영화계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말을, 봉준호 감독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수상 결과로 증명했다. 좁게는 영화를, 넓게는 콘텐츠를 사랑하는 한국인이라면 ‘기생충 뽕에 취했던 날들이었다. 마치 본인이 아카데미상을 탄 듯 기뻐하면서. 그런데 <기생충>의 성공은 어느 한 괴짜 천재의 행적으로 어쩌다 우연히 얻어걸린 게 아니다.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돼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맞아떨어진 필연이었다. <기생충> 아카데미상 수상에 담긴 콘텐츠 성공 법칙 3가지를 되짚어본다.



# 꾸준함이 만든 독창적인 장르, ‘봉준호’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괴물>, <마더>, <설국열차>, 그리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옥자>까지.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따라 그의 영화를 빠짐없이 챙겨 본 사람도 “그래서 영화 장르는 뭔데?”라는 아주 기초적인 물음에는 선뜻 답하기 쉽지 않다. 스릴러인가 싶을 때 갑자기 분위기가 공포영화가 되고, 결말까지 뜯어보니 사회 풍자성이 짙은 블랙 코미디 같다. 이처럼 다양한 요소가 녹아있기에, 봉준호 영화는 하나의 장르로 압축되지 않는다. ‘봉준호’가 곧 장르다.


무릇 창작자에게 독창성(Originality)’은 신기루 같은 단어다. 모두가 간절히 원하지만 쉽게 가질 수 없는. 그런데 화려한 조명이 감싸는 ‘독창성’ 뒤에 숨겨진 단어가 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외롭고 묵묵하게 노력해 온 단어. 바로 ‘꾸준함다. 한 사람이 하나의 장르로서 이름을 남기려면 우선 납득할 만한 작품을 쌓아 올려 몸집을 불려야 한다. 매번 대박을 치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성과와 관계없이 뭔가를 꾸준히 계속하는 건 가능하긴 하다. 물론 너무나 어렵지만. 봉준호는 영화 제작을 놓지 않았고 자신의 것을 놓지 않았기에, 섬세한 미장센과 복선, 음악이 담긴 ‘봉테일’이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기생충>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봉준호 신드롬’을 일으켰다.



# 보편적 공감, K컬쳐로 넘은 ‘1인치 자막의 벽’


가난은 어디에나 있다. 사는 곳에 따라 ‘냄새’의 결은 다르겠지만. <기생충>은 선을 넘을 듯 말 듯, 선을 넘는 기택(송강호)의 가족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양극단을 보여준다. 불평등과 빈부 격차는 인류 역사에 걸쳐, 문화권 차이를 넘어, 유비쿼터스하게 존재해왔다. 이런 사회 계층 간 갈등을 <설국열차>가 달리는 기차 칸에서 수평적으로 표현했다면, <기생충>은 수직적으로 보여준다. 하수구 물이 터져 오르는 어두컴컴한 반지하와 채광이 좋고 번듯한 고급주택을 대비해서 말이다.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누구나 그 간극에 공감할 수 있다.


사람들의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내면서도, <기생충>은 한국영화임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낸다. 자칫 뻔하게 흘러갈 수 있는 주제가 외국인에게는 신선하게, 한국인에게는 친근하게 다가온 이유다.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은 ‘짜파구리’, ‘독도는 우리 땅’을 개사한 ‘제시카 송’을 보면 이보다 한국적일 수 없다. 영화 곳곳에 녹여진 한국 문화는 인터넷 유행 콘텐츠인 ‘밈(meme)’이 되어 퍼져 나갔다. 기획력에 불어넣은 작은 차이가 이렇게 모든 것을 바꾸기도 한다.



# ‘2020년판 미켈란젤로’에도 ‘메디치’가 필요


실패한 영화는 제각각의 이유가 있지만, 성공한 영화는 대개 비슷한 조건을 만족한다. 하나는 ‘자금력이다. 아카데미 수상은 작품과 홍보의 종합예술이라고 불린다. 작품성 떨어지는 작품이 상을 받는 건 불가능하지만, 동시에 좋은 작품도 홍보 캠페인이 약하면 밀린다. 오스카는 열명 남짓 소수 인원이 아니라,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 8000여 명의 투표로 후보작과 수상작을 선정하기 때문.


국적을 넘어선 치열한 ‘쩐의 전쟁’ 속에서, 투자배급사인 CJ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캠페인에 적극 나섰다. 추정된 마케팅 비용만 무려 100억 원이다.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 어려운 콘텐츠 업계에서 10년 간의 지속적인 투자와 제작 지원, 그리고 퍼블리시티가 없었다면 새로운 역사가 쓰이긴 어려웠을 거다. IT뿐 아니라 영화와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사랑하는 나는 돈이 없으니, 글로, 콘텐츠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길.




<기생충(Parasite)>

개봉 |  2019년 5월 30일

감독 |  봉준호

출연 |  송강호(기택), 이선균(동익), 조여정(연교),

최우식(기우), 박소담(기정), 이정은(문광), 장혜진(충숙) 外

등급 |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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