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관한 고찰

좋은 여행자가 되지 않기로 한 이유

by E Luna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렸을 때는 무조건 여행을 많이 다녀야 되는 줄 알고 시간만 되면 국외로 나가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라 느껴졌다.


극강의 계획형이자 예민보스인 나는 일단 집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짐보따리가 넘쳐난다.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하지만 그게 잘 안 되는 맥시멀리스트이자, 가방에 온갖 것을 이고 지고 다니는 프로봇짐러, 동동구리무마저 나올 법한 보부상이다.


집을 나서고 여행이 시작되고 난 후 사소한 계획이 틀어지면 그때부터 심히 스트레스를 받고 텐션과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자꾸만 호텔로 기어들어가서 쉬고만 싶다. ^^


최근에 4박 5일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옛날에는 패키지여행이 너무 편하고 좋았다. 배정된 가이드가 동행해 주지, 계획된 일정에 맞게 차량으로 이동시켜 주지, 최대한 변수 없이 착착 진행되지 등등 불편할 게 없었다. 하지만 이게 또 장기간 함께 해야 하는 단체나 팀에 따라 여행의 질이 좌우되기도 하고, 원치 않는 쇼핑을 해야 할 때도 있고, 관광 스폿에서의 체류 시간이 짧아 제대로 둘러볼 시간이 없기도 하거니와 단체 생활을 하면서의 피로감이 상당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쉬이 지쳐갔다.


그러면서부터 자유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만만치 않더라. 새로운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건 다반사이고 인터넷에 의존하고 검색하고 목적지를 찾고 또 찾고 날씨라도 좋지 않은 날엔 더더욱이 예민해진다.


더군다나 여행스타일이 극과 극으로 다른 둘이 만났다면 할 말 다했다. 가령, 한 명은 인터넷 검색과 구글맵에 의존한 디지털 과의존형, 다른 한 명은 일단 본인의 감을 믿고 주변의 지형지물과 간판을 보며 무작정 걷고 보는 아날로그 과신뢰형이다. 어찌 됐든 패키지여행이든 자유여행이든 결국 둘 다 나한텐 피로였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여행이 힘든 이유가 ‘여행’이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여행이 힘든 사람이 아니라 가변적인 요인에 유연하게 대응하는데 서툴고, 낯선 곳의 생경함에 압도되는 나 자신이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좋은 여행자’가 되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에게 무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여행에서도, 그리고 삶에서도. 그게 나를 가장 오래 데리고 가는 방법이라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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