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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영 Aug 18. 2016

[크리스천의 상황윤리]

사무엘하 19:11-23

[크리스천의 상황윤리]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_사무엘하 19:11-23중 13절


[묵상]

상황윤리(狀況倫理, situation ethics)란 말은 플레처(Joseph Fletcher) 교수가 '새 도덕'(the New Morality)을 설명하면서 제시한 윤리사상으로서, 그는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공간에는 경직된 율법적 태도로 '옳다 그르다, 선이다 악이다'를 판단하기 어려운 '회색지대'(the gray area)가 있다고 했다. 따라서, 어떤 행위의 정당성은 법이나 보편적 관습에 의해서보다는 발생된 상황과의 관계에서 판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살인은 해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전쟁 중에 국가를 위해 적군을 죽이는 것.

살인강도와의 싸움 과정에서 살인을 하는 것 등등.

상황윤리는 말 그대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이슈를 불러온다.


플레처 또한 상황윤리는 무원칙의 원리가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원리에 의해 선택하고 결정하는 원리라고 말하며 상황윤리의 부정적인 면을 보안했지만 그 사랑이라는 것 또한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이로 인해 상황윤리가 자신의 부도덕에 대한 핑계거리로 전락하기 일쑤인 것이 문제다.

오늘 본문에도 상황윤리에 빠진 세 사람이 등장한다.

첫째, 내전에서는 승리했지만 예루살렘에 복귀하여 통일 이스라엘 왕으로서 위치를 회복해야 하는 '다윗'이다.

둘째, 다윗이 피난 갈 때 따라 가며 저주를 퍼부었지만 상황이 바뀐 지금은 목숨을 부지해야 할 처지에 놓인 '시므이'다.

셋째, 피난길의 다윗을 속이고 주인 므비보셋의 재산을 갈취했던 사실을 어떻게든 무마해야 하는 '시바'다.

먼저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편,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을 통해 자신의 복권을 유다 장로들에게 설득하도록 한다. (11,12절)

여기까지야 당연히 할 법한 얘기인데 이해 안되는 결정을 한 것은,

먼 옛날 피난 시절부터 다윗을 지켰고 압살롬의 반란군 진압에도 혁혁한 공을 세운 요압을 대신하여 압살롬 측의 군총사령관인 아마사를 군총지휘관으로 발령을 낸 것이다.


얼핏 대통합을 위한 통 큰 포용일 수 있으나 이는 요압의 마음에 결정적인 분노를 심어 결국 요압이 아마사를 살해하는 지경에 이르렀고(20:4-13) 요압 자신도 후에 다윗을 배반하기에 이른다. (열왕기상 1:7)   


둘째 시므이의 예는 극단적인 상황윤리자의 폐해를 보여준다. 

다윗이 힘없이 피난길에 오르자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소리지르며 쫓아가 저주를 퍼부었던 자였다. (16:7)

이 덕에 아마도 압살롬 편으로부터 신임을 얻고 모종의 이익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게 되니 그대로 있으면 목숨도 부지하지 못할 처지가 되었다. 


이에 다시 상황을 전환할 치밀한 전략을 세우는데, 

자신의 지파 소속이자 원래 다윗편인 사람들 천명을 데리고 다윗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달려와 엎드려 잘못을 빈다. (16-20절)

시므이의 전략은 적중하였고, 다윗은 시므이를 마음속으로 용서하였다기 보다 전략적인 목적으로 사면해 준다.

*후에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시므이에 대해 처벌할 것을 부탁하고 실제로 솔로몬은 기회를 잡아 그를 죽인다. (왕상 2:8,9절, 2:36-46절)


셋째 시바는 교활하고 악한 종의 대표 격 인물이다.

다윗이 요나단과의 옛정을 생각하여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재산을 회복시켜 주며 이에 대한 관리를 맡겼었다. (2:9-11절)

그런데 탐욕 때문에 주인 므비보셋을 모함하고 재산을 다 가로챈 상황이었다.

이제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복귀하여 므비보셋을 만나면 다 들통 날 상황이었다.


이에 시바는 이번에도 발 빠르게 다윗에게 물량공세를 한다.

나룻배를 동원하여 왕의 가족이 요단강을 건너는데 편의를 제공하는 등의 일로 다윗의 마음을 산다.

이로 인해 나중에 므비보셋을 통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다윗은 이미 시바로부터 받아먹은 호의로 인해 넘겼던 토지를 전부 몰수하지 못하고 므비보셋과 반반씩 나누게 한다. (19:29절)


상황에 따라 판단하고 선택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그것이 원칙 없이 잔머리 굴리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상황은 말 그대로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상황에서는 옳은 판단이 저때의 상황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니 이 상황 저 상황에서도 통하는 원칙이 필요한데, 

플레처의 대안대로 사랑이 답일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정의하는 사랑이란 것도 극히 이기적이고 자의적이서 절대적인 기준을 삼을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답이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 그런 것처럼 절대불변하다.

그 사랑을 가슴에 품고 상황 판단에 반영할 때에야 안전하다.

그 사랑이 왜곡 없이 반영되어야만 내 삶을 통해 참 사랑의 진액이 흘러나올 수 있다.


모든 상황에 하나님이 앞서시도록 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상황윤리다.  


[기도]

주님! 본문의 인물들의 상황 판단과 불완전한 행동들을 통해 배웁니다.

모든 상황에 완전한 해법은 오직 하나님께 있으니 그의 사랑에 힘입어 판단하게 하소서.

오늘 제가 해야 할 판단에도 간섭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고의 것이 되게 하소서.  


[오늘-하루]

*오늘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상황 판단을 하는 하루!

*모든 상황에 하나님의 사랑만이 정답이 되는 하루!!


And say to Amasa, `Are you not my own flesh and blood? May God deal with me, be it ever so severely, if from now on you are not the commander of my army in place of Joab.'"

也要对亚玛撒说:你不是我的骨肉麽?我若不立你替约押常作元帅,愿神重重地降罚与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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