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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영 Jan 14. 2017

[시작은 유치하지만...]

요한복음 4:43~54

[시작은 유치하지만...]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_(개역개정) 요한복음 4:47~50,53


[묵상]

대부분의 해설을 보면 오늘 본문의 왕의 신하에 대한 해석이 긍정적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그의 믿음이 석연치 않고, 시답지 않다.


자신의 아들이 병이 나서 죽게 되었다.

큰일이다. 돈도 있다. 권력도 있다.

부모 된 자로 무슨 일이든 못할까!


용한 분이 나타나셨단다.

그를 찾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절박한 자는 어디든 달려간다.

다짜고짜 와서 고쳐달란다.

30KM 떨어진 거리면 급한 마음에 서둘렀다 할지라도 4~5시간은 걸리는 거리인데,

예수님이 얼마나 바쁜 분이시든 그의 스케줄이 어떻든 알 바 아니다.


왕의 신하의 눈에 예수님은 그저 병 고치는 용한 분이다.

다른 것은 관심 없다.

자신을 그저 병 고치는 자로 인식하는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도 자탄하신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 믿지 아니하리라.' (48절)


신하가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49절)라고 떼를 쓰니, 

예수께서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50절)라고 말한다. 


다행히 왕의 신하는 더 이상 종용하기를 그만둔다.

더 이상 해 봤자 별소용이 없음을 안다.

왕의 의중을 재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그의 직업이기에 눈치 하난 빠르다.

권력을 이용해 잡아 채 가고 싶지만 보는 눈이 많아 수월찮다.

일단 그가 '네 아들이 살아 있다(살 것이다)' 하시니 뭐~ 아직까지 죽진 않은 것 같고, 잘 하면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단 이 정도 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다.


내려가는 길에 종들을 만났고, 기쁜 소식을 들었고,

아들의 열이 내리고 회복한 시각을 확인하니, (52절)

예수님이 '네 아들이 살아있다'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각이다.


컥.. 신하의 뒷골이 시큰하다.

그의 말이 빈 말이 아니었다.

그에 대한 소문이 헛것이 아니었다.

그제야 그를 포함한 온 집안이 예수님을 진짜로 믿는다. (53절) 


이것이 예수님이 유대에서 갈리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인데(54절)

이 표적을 통해 예수님이 후대에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남묘호렌게쿄에서도 병자들이 벌떡벌떡 일어난단다.

무당도 때때로 의술(?)을 펼친다.

환자 개인의 의지로도 때때로 기적이 일어난다.


물론 말씀 한 마디로 원거리 치료를 행하신 예수님의 기적은 차원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분에겐 이 까짓 것 쯤이야 누워서 TV보기다.

그 분이 마음먹으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본문의 메시지는 말씀으로 치료한 표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체와 그 말씀의 능력을 믿는데 있다. 


신하의 심리를 추적해 보면,

처음 믿음은 아들의 병을 낫게 해 줄 것이란 희망에 대한 믿음이었고. (50절)

그리고 이번엔 병 낫게 해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다고 볼 수 있다. 

조건부 믿음이지 순수한 믿음이라 보기 어렵다. 


어쨌거나 믿음의 길로 들어서게 되니 다행이다.

이렇든 저렇든, 이 방법으로든 저 방법으로든 믿음의 길을 시작하게 되니 나쁠 건 없다.

병 나을 목적으로,

돈 벌 목적으로,

정신 수양코자,

허무함을 채우기 위해,

그렇게 시작해도 좋다.


그렇게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 분의 뜻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처음의 믿음의 유치함을 조정하고 성숙시켜 나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사와 표적이라는 현상을 인해 믿음을 갖기 시작했지만 이제 그 표적의 주인공에 집중하게 된다.

주인공의 말씀의 능력을 자신 안에 부화해 내는 수준에 까지 이른다.


사복음서의 예수님의 표적은 믿음의 초입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준 사건들이다.  

창조주 입장에서 풍랑을 잔잔케 하든, 죽은 사람을 살리든 하등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이를 소개함은 그것이 대단하다면 그런 이유를 통해서라도 그에게 관심을 갖으란 얘기다. 


왕의 신하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아마도 후에 믿음의 명문가를 이뤘을 것처럼. 

『내가 여러분에게 젖을 먹이고 단단한 음식을 먹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그것을 소화시킬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전 3:2, 현대인)


[기도]

주님! 제 시작 또한 조건부였고 유치했지만 그렇게 시작한 믿음이 크신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고 단단해 지게 됨을 감사합니다.

젖먹이 신앙을 넘어 단단한 음식을 먹고 소화시킬 수 있도록 튼튼한 신체를 허락하소서. 


[오늘-하루]

*오늘도 표적 때문이 아닌 말씀이신 하나님을 믿는 하루!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는 하루!!


***************

When this man heard that Jesus had arrived in Galilee from Judea, he went to him and begged him to come and heal his son, who was close to death. "Unless you people see miraculous signs and wonders," Jesus told him, "you will never believe." The royal official said, "Sir, come down before my child dies." Jesus replied, "You may go. Your son will live." The man took Jesus at his word and departed. ~Then the father realized that this was the exact time at which Jesus had said to him, "Your son will live." So he and all his household believed.

他听见耶稣从犹太到了加利利,就来见他,求他下去医治他的儿子,因为他的儿子快要死了。 耶稣对他说:“你们若看不见神迹奇事,总是不肯信。” 大臣说:“先生,求你趁我的孩子还没有死就下去吧!” 耶稣告诉他:“回去吧,你的儿子好了。”那人信耶稣对他说的话,就回去了。 ~ 这父亲就知道,那正是耶稣告诉他“你的儿子好了”的时候,他自己和全家就信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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