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과연 외국어 학습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것인가?
미래에 대해 어설픈 예언을 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인공지능 통역기술의 발달로 인해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 대로 라면 앞으로 외고도 필요 없고, 대학의 수많은 외국어 관련 학과도 사라질 것이다. 어학원은 한때 존재했던 구시대의 유물이 될 것이고, 현재의 외국어 전공자 들은 모두 한때의 잘못된 선택을 탓할 것이다. 그들의 논리라면 인류는 새롭게 쌓은 바벨탑 아래 하나의 언어로 통일될 날이 곧 올 것이다. 그 바벨탑은 다름 아닌 인공지능이다.
앞서 막말하는 것 같아 '어설픈'이란 말을 지웠는데 이들의 논리는 솔직히 어설프고 진지하지 못하다. 앞으로 5년 내에 운전대에서 손을 떼게 될 것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지언정 언어가 하나로 통일되어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온 다고 말하는 것은 오버다.
사실 여행지에 가서 화장실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 보거나 이거 얼마예요 라고 물어 볼 때 쓸려면 굳이 어려운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만 들고 가면 전 세계 어디라도 통역 앱으로 다 해결된다. 또한 초벌 번역할 때에도 번역 시스템의 도움을 얻으면 엄청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고급 비즈니스 미팅과 서로 깊은 교감을 이루는 소통은 현재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오롯히 인간 대 인간의 몫이다. (보안 차원에서도 그렇다.) 또 텍스트 이면의 수많은 함의를 품은 소설 등의 문학작품 번역은 아직 인공지능 통번역 시스템으론 요원하다고 생각한다. 고급 통번역의 영역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 넘는 특이점의 지점이 온다면 그때까지 함락되지 않고 남아있는 마지막 분야이지 않을까.
그러므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어설프게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배우려면 더 깊이 잘 배워야 할 문제이지 안 배울 문제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앞으로 고급 언어 구사자들의 주가가 더 오를 것이다.
그 이유는, 언어 통번역은 어떤 특정 순간의 단순 단어 치환의 문제가 아니라 그 순간을 전후한 화자의 삶에 대한 맥락(context) 이해의 문제다. 인공지능 통번역의 결정적인 문제는 앞, 뒤 맥락을 빼고 특정한 단문만 번역해 내는 것이다. 완전한 통번역을 해낼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다.
예를 들면 이와 같다. 2016년 5월 21일 모 일간지 기사에 <"옛날에 백조 한 마리가 살았다" 구글 번역기 돌려보니…>란 기사가 났다. <관련 포스팅 보기 : https://goo.gl/LWK6jB> 내용이 재밌어서 바로 구글 번역기에 돌려보니 실제로 'The 100,000,000,000,000,001 lived long ago.'란 결과가 나왔다. 기겁했다.
인공지능 번역시스템이 이와 같은 오류를 범한 원인은 아마도 이 번역 대상 문장이 동화 속의 한 구절이라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리라. (이글을 쓰는 현재 일자로 다시 동일한 문장을 넣어 보니 'Once upon a time a swan lived.'로 제대로 번역한다. 이슈가 되자 오류를 수정한 듯하다.)
맥락 이해는 통번역의 질을 가르는 문제다. 예를 들면 비즈니스 미팅과 같은 중요한 대화는 단지 그날 그 장소의 1~2시간의 대화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 건 성사를 위해 수많은 시간에 걸친 상대에 대한 이해와 의도 파악등의 맥락 위에 존재한다. 이런 맥락 위에서 대화상의 아주 세밀한 뉘앙스가 미팅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 그런 상황에 갑자기 'The 100,000,.....'이라고 튀어 나올 수 있는 통번역 기계를 투입한 다는 것은 비즈니스를 안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2년 전 한 그룹사의 기업사 제작과 관련하여 100명 가까운 내. 외부 인사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한사람씩 인터뷰한 후 음성파일을 속기사에게 보내 속기록을 작성케 했다. 속기된 텍스트 파일을 받아 보면 완성도가 겨우 약 70% 정도에 그쳤다. 처음에는 아니 왜, 같은 한국 사람이 한국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 경우도 맥락 이해의 문제였다. 나는 인터뷰 하는 사람에 대한 사전조사에 따라 그를 먼저 이해하고 현장의 인터뷰도 그의 비언적인 표현을 포함하여 입체적으로 청취하였기에 스토리의 이해도가 높았다. 그러나 속기사는 인터뷰이(interviewee)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고, 그가 사용하는 전문적인 용어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었고, 그가 말할 때의 미묘한 표정 변화도 보지 못한 채 오직 목소리에만 의지해 텍스트 변환 작업을 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완성도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을 진행하면서 얻은 진리는, '아는 만큼 알아듣는다.'였다.
이와 같이 단순히 알아듣는 문제도 사람이든 인공지능이든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지난한 일이다. 그런데 단순히 알아듣는 문제가 아닌 알아듣고 내 생각을 다시 뱉어야 하는 대화는 또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인공지능이 내 말을 통역한다는 의미는 단어를 해당 언어로 치환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전체 맥락 속에서 내가 하는 말의 함의를 정확히 파악해서 상대에게 전달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강원국 작가는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을 읽기 위해 취임 초기 그가 말한 녹음 테이프를 종일 들었다고 한다. 또 그의 시각으로 정의내린 어록도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대통령에 빙의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이쯤 되면 화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비교적 정확히 캐치할 수 있다.
인공지능 통번역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이정도가 되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나와 일거수일투족 같이 하며 나의 행동과 말을 축적하고 분석해서 나에대한 빅데이터 풀을 액티브 상태로 운용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내 생각과 삶 속에 들어와 앉아 있어야 한다. 나보다 더 똑똑한 아바타를 데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렇게 되면 내 주권을 내 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통번역 인공지능은 나도 상대방도 아닌 제3의 언저리에서 의사소통의 부족 부분을 일정 정도 채워 주는 역할에 만족할 것이다.
여전히 내가 직접 상대방의 언어를 포함한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 안에서 상대에 대한 세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화를 하는 기술은 매우 유효하다.
그러므로 인공지능 통번역은 최대한 이용해야 할 문제이지 신뢰하고 의지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여행용 언어가 아니라면 상대방의 언어를 더 잘 배워야 할 문제이지 대충 배우거나 안 배워도 될 문제가 아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 사람과 그 사람을 둘러싼 맥락 즉, 역사와 문화를 같이 배우는 것이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기술이다.
인류의 삶이 이어지는 한 끊임없이 필요한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