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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영 Sep 25. 2018

나는 10년 전 그날, 내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묵상글쓰기 6회차

지독한 무신론자였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됐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신기한 구석이 많다. 

물론 대학교 때 수련회에 가서 발칵 무너진 스토리가 있지만, 

그 짧은 충격으로 모든 걸 이해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래서 뭔가 근원적인 계기가 무얼까하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또렷한 장면이 있다. 


어머님의 성경책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러니까 7살 때였다. (한 살 일찍 학교에 들어갔다)

그날 아마 몸이 아파 조퇴를 하였던 듯하다. 

산모퉁이를 돌아 실개천 다리를 건너 조그만 산등성이를 넘으면 바로 우리 집이었다. 

산등성이 고갯마루로 가는 길은 마지막 부분이 약간 굽어져 정상을 바로 볼 수 없었다. 

그 고개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병환 중에 있던 어머니가 하얀색 저고리를 입고 내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오른손에는 까만 표지와 페이지 부분에 빨간색이 칠해진 성경책이 들려 있었다. 

너무 반가워서.. 엄마. 하고 부르며 뛰어가 품에 안겼다. 

따뜻하고 또 따뜻했다. 


기억은 거기까지다. 

나는 이 장면을 4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장면은 큰 세월을 넘어 대학 시절 수련회에서의 사건에 맥락이 단박에 연결된다. 

그런데 사실 가끔 의문이 든다. 

과연 7살, 가을 어느 날에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어머니는 그때 암 말기 환자였다. 

그리고 실제로 얼마 안 있어 그해 겨울,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가족들에게 물어봐도 내 기억에 의문을 제기한다.

'글쎄.. 한때 좀 좋아지시긴 했어도 혼자 그 먼 거리에 있는 교회에 가실 만큼 호전되진 않았어'라는 게 중론이다. 

몇 년 전 아버지에게도 돌아가시기 전에 여쭤봤지만, 내 기억에 확신을 주진 못하셨다. 

그럼 도대체 그 선명한 그림과 지금도 남아 있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은 어찌 된 일인가.


상상 팽창(imagination inflation)이란 심리학 용어가 있다. 

상상하는 행위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쉽게 믿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나는 당시 어머니가 기적처럼 자리를 털고 가고 싶어 하시던 교회에 가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었다.) 

내 기억 속의 생생한 일이 내 소망을 투영한 가상의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사실이 어떻든 나는 그 기억을 실제로 있었던 소중한 기억으로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상상 팽창은 현실에 의외로 흔히 일어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 유리하게 기억을 왜곡한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항만 기억하고, 나머지 기억의 빈 공간을 팩트 여부에 관계없이 자기 기준에 맞는 것들로 채운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지극히 사적인 일일뿐, 사회적인 피해나 문제를 일으키진 않으니 별 상상을 하든, 그걸 있었던 일로 믿든 문제 될 건 없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간혹 낮 두꺼운 정치인이 뻔한 거짓말을 뻔뻔하게 한다. 
국민은 그 거짓말에 대해 혀를 내두르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고 못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그 정치인에게 그 일은 없어야 되는 일이고, 그래서 없던 일로 생각을 굳히다 보면 없던 일이 된다. 
오래된 미투에 대한 기억이 각자 원하는 바대로 조작될 수도 있다. 
가해자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하니 없다고 믿고, 그러니 정말 없던 일처럼 믿게 되고, 억울하다고 하소연다. 
피해자는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으니 있다고 기억을 되살리다 보면 실제 있었던 것보다 더 부풀려 기억을 왜곡하기도 한다.


기억의 왜곡을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록'하는 것이다. 

기억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일이라면 비교적 사실이 명확할 때 그 사실을 기록해 두면 된다. 

그리고 필요할 때 그 사실을 검색해서 다시 볼 수 있다면, 큰 사고나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 지나간 대부분의 사실들을 잊고 있지만, 

필요하다면 95년대 후반 이후의 중요 사실에 대해 비교적 정확히 복구할 수 있다. 

하루의 중요 사실에 대해 기록했고, 그 일들을 검색 가능하도록 디지털화해 놨기 때문이다. 

(나는 필요하다면, 2007년 11월 30일, 중국의 00 병원에 늑막염으로 입원해 있던 7일차에 박**사장님이 면회 왔고, 그가 내게 용기를 주려고 했던 말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다. ) 


기억에 왜곡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으로 상상 팽창(imagination inflation), 암시(suggestion), 간섭(interference),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 안다는 느낌(the feeling of knowing), 유창성 착각(fluency illusion), 기억 동조(memory conformity), 거짓 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 섬광 기억(flashbulb memory) 등이 있다.(150~1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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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헨리 뢰디거/마크 맥대니얼/피터 브라운'의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의 내용을 읽고,  상 글쓰기 방식으로 쓴 글입니다.  
위 글은 책의 내용을 근거로 묵상 글쓰기를 한 것이므로 책의 내용과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또 반드시 이 책의 구입을 추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5장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  137p~1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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