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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영 Oct 24. 2016

[악인의 형통함을 바라보는 자세]

시편 73:1-16

[악인의 형통함을 바라보는 자세]

참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하게 대하시며, 마음이 깨끗한 자들에게는 더욱 그리 하십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 믿음을 다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_시편 73:1-16중 1,2절(쉬운 성경)


[묵상]

시편 제 3권(73~89편)중의 73편~83편은 아삽의 시로, 

그는 다윗과 동시대이 인물이며 성전에서 찬송하는 악사들의 수석이었다. 

그의 시의 특징은 하나님 중심 사상과 세속주의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이 최고의 복임을 말하고 있다. 


만일 하나님 신앙과 세상의 복이 매칭된다면 세상은 아주 손쉽게 거대한 성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우상으로 변질시켜 놓을 것이다. 


다행히 신앙과 세상적 축복은 전혀 매치되지 않는다. 

이건희 회장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신앙을 갖고 있지 않고, 

중국에서 가장 열심히 예수님을 믿는 자가 마윈이 아니듯이 말이다. 


아삽이 고백하듯이 악인은 오히려 떵떵거리며 살고,

의인의 삶은 일견 평생 찌질 할 수 있다. 

*악인의 형통의 특징: 세상적 - 4,5,12절, 정욕적 - 6,7,8,9절


반대로 악인이 다 형통한 것도 아니고, 의인이 다 궁상맞게 사는 것도 아니다. 

인생은 실로 변화무쌍하여 다양한 내. 외부적인 요소들이 변주를 이루며 시간의 결과물을 조합해 낸다.

정점이 계속될 것만 같던 악인들이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차가운 철장 속에 갇히기도 한다.

평생 볕 들 날이 없을 것만 같던 우직한 의인들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한다.  

이처럼 신앙과 세상적 축복이 일치하지 않기에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얘기가 다르다.

누구라도 선악간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 한번의 심판이 영혼의 영원한 삶의 거처를 가른다.

악인은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져져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나

의인은 형용할 수 없는 최선을 경험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요긴한 포인트는 최후의 심판 문제가 아니다.  

최후의 심판은 자칫 현실의 삶과 유리하여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은 눈앞의 내일도 고려하지 않고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좋다. 현실이 중요하다면 현재는 꼭 의인으로 살아야 할 필요와는 관계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실은 의인/악인들은 그가 누리는 외적 삶의 현실에 관계없이 이미 내적인 보상을 받고 있다. 

의인의 삶은 그의 현실의 열악함에 관계없이 내적인 기쁨과 평안의 보상을 받아 누리고 있다. 

악인의 삶은 그의 외적인 화려함에 관계없이 내적인 고통과 불안의 결과에 고통 받고 있다. 


그런데 의인으로 살면서도 외적인 고난뿐 아니라 내적인 결핍에도 시달리고 있다면?

이는 전화위복의 동인마저 잃은 채 사는 삶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잘못된 일이다. 


의인은 악인의 형통함을 인해

넘어지거나 미끄러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나의 외부 현실에 관계없이 마음의 평안과 기쁨, 풍성한 부요를 누려야 한다.

그것이 의인이 외적 환경을 극복하고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다.   


[기도]

주님! 믿음의 내밀한 부요함을 더욱 누리길 원합니다. 

그것이 제 경쟁력이 되어 문제를 돌파하는 힘이 되게 하소서. 

그렇게 매일의 삶의 결과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하루]

*오늘도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의 부요함을 누리는 하루!

*그렇게 마음에 누리는 기쁨이 부딪는 문제를 뛰어넘는 하루!!


___________

Surely God is good to Israel, to those who are pure in heart. But as for me, my feet had almost slipped; I had nearly lost my foothold.

神实在恩待以色列那些清心的人!至於我,我的脚几乎失闪;我的脚险些滑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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