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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영 Nov 02. 2016

[파렴치한 연기의 끝]

디도서 1:10-16

[파렴치한 연기의 끝]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_디도서 1:10-16중 16절


[묵상]

예나 지금이나 거짓 선지자들이 횡행한다.

이들의 수법이 얼마나 간교하고 교묘한지,

사람들은 눈 뜨고 코베임을 당한다.


가장 지능적이고 악랄한 부류는 겉으로는 교회의 형식을 취하고 하나님을 믿는 체 하지만,

실상은 그럴듯한 종교적 의식을 통해 특정한 사람(교주)이 호사를 누리고 영광을 취하는 경우다.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져야 할 영광을 편취하니 사기꾼이요.

마땅히 필요한 곳에 재분배되어야 할 재화를 자신이 꿀꺽하니 강도다.

그러고도 가장 고상한 척을 하니 위선자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러한 자들을 총칭하여 '독사의 자식들', 혹은 '회칠한 무덤'이라고 일갈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러한 자들의 단편이 묘사되어 있다.

-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인다.(10절)

-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않은 것을 가르쳐 가정을 온통 무너뜨린다.(11절)

-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를 하고 진리를 배반한다.(14절)

- 마음이 악하고 진실하지 못하다.(15절)

-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가증한 자, 복종하지 않는 자,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16절) 

그 중에서 16절의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이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시인하여 교회에 다니고 그럴듯하게 종교 생활을 할 수 있으나 실제 삶은 별개로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맞지 않다.

하나님을 시인했다는 것은 전심으로 복음을 받아 들였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삶으로 드리는 예배에 동참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이 마음 따로, 실제 행위 따로인 삶을 사는 것은 원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행위로 부인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반대로 실상 하나님을 시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는 체 한다는 것은 다만 어떤 꿍꿍이속이 있어서 하나님을 믿는 체 가장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교묘히 연기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잘하면 이 땅에서 마지막까지 내막을 들키지 않고 연기를 해낼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인간적인 칭송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파렴치한 연기는 이 땅에서까지만 통한다. 


그날, 

육신의 몸으로 산 날을 결산하는 때,

악랄한 연기로 기름진 배를 가릴 천 한 조각도 걸치지 않은 맨 몸으로, 

바깥의 춥고 어두운 데로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그때,

슬피 울며 이를 간들...


[기도]

주님! 제 삶이 파렴치한 연기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마음과 생각을 살피길 원합니다.

타인에게 불건전한 영향을 주지 않도록 제 말과 행위를 추스르길 원합니다.

제 생각과 행위의 기준이 되는 말씀, 말씀이신 하나님을 더욱 의뢰합니다. 


[오늘-하루]

*오늘도 숨김없이 삶으로 드려지는 예배의 하루!

*진리이신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는 하루!!


**************

They claim to know God, but by their actions they deny him. They are detestable, disobedient and unfit for doing anything good.

他们说是认识神,行事却和他相背;本是可憎恶的,是悖逆的,在各样善事上是可废弃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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