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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영 Aug 16. 2016

[다윗의 울음을 보는 씁쓸함]

사무엘하 18:19-33

[다윗의 울음을 보는 씁쓸함]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_사무엘하 18:19-33중 33절


[묵상]

오늘 본문에는 압살롬 군대를 격퇴한 승전 소식을 전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자신이 소식을 전하겠다고 손을 들고 나온다. 

그러나 요압 입장에서는 왕명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였기 때문에 이 일에 대해 다윗이 어떻게 반응할지 염려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 다윗이 사울왕의 죽음을 거짓으로 전했던 병사도(1:15),

이스보셋을 죽이고 투항한 두 지휘관도 피값을 물렸던 (4:12) 전례를 알고 있기에 이번 일도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다.

그래서 요압은 대제사장의 아들보다는 용병인 구스(에티오피아) 사람을 보내서 다윗 왕을 떠 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아히마아스가 굳이 떼를 써서 가겠다고 하니 마지못해 허락한다.

신이 난 아히마아스는 들길로 달음질하여 구스 사람보다 앞질러 다윗 왕 앞에 당도한다. (23~28절)

다윗 왕 앞에 당도하여 일단 승전 소식을 전하니 왕이 제일 먼저 '압살롬은 잘 있느냐?'고 묻는다. (29절)

이때 아차 싶었던 게다.

승전 소식도 중요했지만 왕의 관심은 압살롬의 안전에 있었던 것이다.


눈치 챈 아히마아스는 곧장 사실을 말하지 않고 거짓으로 둘러댄다.

요압이 자신을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지만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다고. (29절)

승전 소식을 전하는 영광만 취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서는 쏙 빼는 비겁한 처사다.

이는 경계해야 할 상황윤리의 단면이다.


반면 구스 사람은 왕의 표정이 어떠하든 상관하지 않고,

아히마아스에게 한 것과 똑같은 왕의 질문에 대해 마땅히 전해야 할 팩트를 그대로 전한다.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압살롬)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32절)


둘 다 신변에 무슨 이상이 생기진 않은 듯하다.

아히마하스의 아들 아사랴는 할아버지 사독에 이어 솔로몬 왕 때 대제사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신분에 맞지 않게 처신한 아히마아스의 행동은 지켜보는 독자로 하여금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씁쓸한 것은 다윗의 행동 또한 마찬가지다.

전쟁에 2만 명이상의 동족이 죽어 나갔는데도 아들 압살롬의 안위만을 궁금해 했다.

2만 명의 목숨보다 끝내 자신을 죽이기 위해 반기를 들었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며 꺼이꺼이 울었다.

이를 지켜보는 신하들의 마음은 어떠했겠는지. ㅠ.ㅠ

19장에 이어지는 요압의 항의를 이해할 만도 하다. (19:1-8절)


따지자면 왜? 이 골육상잔이 벌어졌는가?

거슬러 올라가면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 자신이 충신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취한 것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11장)

뿐만 아니라 실은 중간에라도 사태가 이렇게까지 비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 않았는가.

그때, 압살롬을 그술땅에서 불러 들였을 때,

2년 동안이나 외면하여 압살롬의 마음에 분노를 키우지 않았어야 했다.


그때 차라리 압살롬을 전폭적으로 품으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고,

압살롬의 죄에 대해서는 합당한 벌을 내려서 회개의 기회를 줬더라면!

아들의 내면에 있는 괴물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진작 아들과 충분히 대화하며 소통하며 양육했더라면.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알았더라면... 이런 사태까진 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오늘 날 육신의 부자(父子) 관계도 마찬가지다. 

소통의 부재가 수많은 비극을 낳는다. 

소소한 갈등을 무릅쓰고라도 사랑으로 대화해야 한다. 


오늘 날 영적인 부자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사랑은 불변하고 충만한데 일방적으로 마음을 닫고 있으면 소통을 할 수 없다. 

관계는 꼬이고 빗나간다. 

마음을 열고 대화해야 한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 말이다. 


[기도]

주님! 상황윤리에 영혼의 양심을 팔지 않게 하소서. 

또한 사랑의 하나님과 마음을 열고 충분히 소통하길 원합니다. 

아내와 자녀들과도 그렇게 할 때 소통의 지혜를 허락하소서. 


[오늘-하루]

*오늘도 상황윤리가 아닌 하나님의 윤리!

*하나님과 이웃, 가족과 지혜롭게 소통하는 하루!!


The king was shaken. He went up to the room over the gateway and wept. As he went, he said: "O my son Absalom! My son, my son Absalom! If only I had died instead of you -- O Absalom, my son, my son!"

王就心裏伤恸,上城门樓去哀哭,一面走一面说:我儿押沙龙阿!我儿,我儿押沙龙阿!我恨不得替你死,押沙阿,我儿!我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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