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진단을 받기 일주일 전,
친구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한국에 없었다.
장례식장을 가지 못했다.
제일 친한 친구의 슬픔을 즉시 달래주지 못했다.
일주일 뒤, 친구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뒤늦게나마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고향으로 갔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찻길 내내 나는 참 이기적인 이유로 울었다.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어서.
누구보다도 내 멘탈 관리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해 둔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참 서럽게도 울었다.
목적지에 다다를 때쯤부터
친구에게는 절대 들키지 않으려고 겨우겨우 감정을 잘 달래려고 노력해 보았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친구를 위한 꽃송이를 사면서
조금씩 활기를 찾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다정한 친구 사이가 아니라 머쓱하게 꽃을 선물했다.
꽃을 받고서 해사하게 웃는 친구를 보니 나도 기분이 덩달아 좋아졌다.
대뜸 일주일 전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꺼내 친구의 슬픔을 재차 끌어내긴 싫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농담만 하고 있는데
친구가 나의 힘든 일에 관해서 물었다.
장례식장에 소문 다 났었다고 놀리며.
그날,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아이에게
내 아픔을 얘기하는 실례를 저질렀다.
우리는 우리답게 각자가 마주한 슬픔은 별 것 아닌 척, 괜찮은 척 서로를 안심시켰다.
아무리 괜찮은 척 농담을 해도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기이한 광경 덕분에 마음이 따스해졌다.
그래서 나는 하루 만에 우울증이 치료된 줄 알았다.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피곤했는지 자꾸만 졸음이 쏟아졌다.
소파에서 TV를 보다 잠들고,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다 잠들었다.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모르는 엄마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들은 참으로 애틋했지만
에너지 방전 속도가 겨울의 아이폰 배터리 마냥 급속도로 빠르게 떨어져갔다.
엄마 아빠에게 둘러싸인채 소파에 누워있는데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충분히 잠도 잤기 때문에 피곤한 것도 아니었다.
오랜만에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잠들면 안 될 것 같은데 자꾸만 잠이 오는게 싫었다.
문득
'자다가 못 일어나는거 아냐? 그건 엄마 아빠에게 너무 미안한데...'
라는 생각이 들어 무서우면서도 잠을 이길 수가 없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너무 놀랐지만
불안감에 저항할 힘도 없이 나는 계속 잠에 들고 말았다.
아주 오래 전 나도 '죽고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남자친구와 첫 이별을 했을 때
타지 생활을 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 등등
그 때 나는 병원을 찾아가지 않았지만 그런게 우울증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다.
우울증 진단을 받아보니 그때 그건 우울감이었던 것 같다.
그때 깨달았다.
우울감과 우울증은 다르다는 것을.
내가 우울증에 걸린 게 아녔을까 추측하던 때엔, '죽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난 그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때 나는 예전에 함부로 추측했던 나의 우울증 시기는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울감은 술로 해결하든 친구를 만나 웃음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우울증은 내 몸의 어떠한 행동도 허락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제야 인정했다.
나는 우울증이 맞는 것 같다.
'죽고싶다'가 아니라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드는 것이 아무래도 나 우울증 맞는 것 같다.
본가에 더 있다간
부모님에게 내 우울증을 들켜버릴 것만 같아서 급하게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