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제목은 Le sixieme sommeil
프랑스어로 6번째 수면이라는 뜻.
책을 읽어보면 이 제목은 수면6단계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말로 번역한 제목<잠>이 더 매력적인 것 같다.
'잠'이라는 글자에 잠이 유난히도 많아 나를 화나게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했던 그가 문득 생각났다.
책 한 구절
다른 사람이 잠든 모습을 지켜보는 건 황홀한 경험이야.
최소한의 방어마저 사라지는 순간이니까.
엄마는 번잡한 세상에서 멀리 벗어나 떠돌고 있어.
그렇다. 누군가의 잠자는 모습을 보는 것은 보는 사람을 참 평온해지게 만든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잠자는 동안은 방심하게 되니 순한 양 같아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자크는 엄마의 보호를 받는 아들이지만
엄마의 자는 모습을 보며 그 순간만큼은 엄마의 보호자가 된다.
자크의 신생아 시절 회상 부분을 보며
우리 아빠가 두 살 때 할아버지가 업어주시다 마루에 자신을 두고 마당에서 일하는 모습을 누워서 보고 있었던 기억을 생생하게 얘기해주실 때
나는 말도 안 된다며 엄청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책에서 주인공이 얘기하니
역시나 터무니 없긴 했지만
내가 아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기억을 비웃었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어쩌면 꽤 많은 이들이 갓난아기 시절을 기억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생아 시절을 기억할 만큼 똑똑한 자크는 엄마의 수면 상태를 계기로 '의사'가 되는 꿈을 꾸게 된다.
모든 사람의 꿈엔 계기가 있다.
잠을 잘 때의 꿈에도, 미래를 향한 꿈에도
그 모두엔 계기가 있다.
잠을 잘 때의 꿈_
나는 딸꾹질이 빨리 멈추는 방법을 안다.
딸꾹질하면 코를 막고 10초간 숨을 꾹 참는 것이다.
그러면 멈춘다는 것을 알려준 내가 정말 좋아하고 따랐던 큰아버지가 알려주신 방법이다.
큰아버지가 트럭을 타고 바다로 드라이브를 시켜주시며 바다에 가서 하모니카를 불어주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고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큰아버지의 죽음은 11살의 나에겐 굉장한 충격이었다.
추상적이기만 했던 '죽음'이 현재에 남은 사람에게 주는 뚜렷한 고통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너무 많이 보고 싶어서였을까 삼우제를 치르고 난, 그날 밤
내 꿈에 큰아버지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꿈속에서도 나는 큰아버지의 죽음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큰아버지는 온전한 모습이 아닌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내가 탄 차의 백미러에, 사이드 미러에 비치는 모습으로...
어린 나는, 꿈 속에서 마주한 내가 제일 좋아하던 큰아버지를 너무 무서워했다.
꿈에서 너무 무서워했던 탓인지,
그때보다 덜 그리워해서인지 그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찾아오시지 않는다.
잠자는 꿈엔,
깨어있을 때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이 꼭 나타난다.
그리움이 계기가 되어 꿈을 꾼다.
미래를 향한 꿈_
실제로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고3 수능 영어문제를 푸는 조기교육을 받았다.
덕분에 영어 수업 시간에 어려운 문제를 반 대표로 나가 막힘없이 풀며
영어외계인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영어를 잘했다.
나는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당연히 고등학생 1학년 때까지 영어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로 방송부원이 되었고 내 꿈은 PD로 바뀌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꿈을 꾸며
꿈을 이루기 위해 쏟아부은 내 모든 시간 속에서 행복을 느꼈었다.
우연한 계기가 꿈을 바꾸었고, 그 꿈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줬다.
이 책은 잠과 꿈을 통해 사람이 변하고
인생이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