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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현 Jul 09. 2024

각자 다른 "기질"적인 스트레스와 해소법

기질의 분류 3가지:감각적 기질, 성적 기질 그리고 4가지 역할적 기질


인간. 인간의 개성, 기질과 성격으로부터 발현되는 자극에 대한 개인의 편향.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심리학에 기반한 생각이고, 아마 비슷할 거다.


기질은 바꿀 수 없는 것에 가깝다. 주로 유전적이고 생물학적인 특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반면 성격은 바꿀 수 있다. 이는 환경적 요인, 경험, 의식적인 노력 등을 통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공부법이라면서 어느 감각에 민감한지 알아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인간은 기질적으로 보다 민감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게 청각일 수도, 시각일 수도, 촉각일 수도, 미각일 수도, 후각일 수도 있다. 5가지의 감각이 개인마다 우열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단언할 수 있다. 나는 청각에 예민하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청각이다. 사냥꾼의 감을 타고났다. 그다음으로는 후각.


나는 스트레스를 '청각'적인 것으로만 받는다. 아무리 충격적인 현장이라고 해도, 아무리 역겨운 냄새라고 해도, 내 뇌는 무의식적으로 그 정보를 붙잡지 않는다. 그런데 청각적인 신호는 무의식적으로 뇌가 붙잡고 늘어진다. 물론 나는 스트레스를 직면하며 해결하는 타입이라. 선택적으로 집중해서 무뎌질 수 있게 만들었다. 몰입을 역이용하는 방식으로 청각적 신호를 차단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나는 청각적인 신호에 기질적으로 예민하다.


모두가 각자 기질적으로 각자 다른 예민함을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학습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현상이나 상황의 '전조'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PTSD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갖은 상황에 놓인 군인이나 소방관, 경찰이나, 피해자라고 해도 각자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하게 각인될 것이다.



세가지 기질의 분류
첫번째, 감각적 기질 - 각자 다른 예민함에 기반한
두번째, 성적 기질 - 호르몬과 뇌구조에 기반한
세번째, 역할적 기질 4가지 종류

나는 임의적으로 인간의 역할적 기질을 4가지 종류로 분류했다. 첫째, 철학자적 기질, 둘째, 정복자적 기질, 셋째, 평범한 사람의 기질, 넷째 예술가적 기질이다.


세번째 기질만이 의식주를 충족할 경우 본능적으로 만족하는 기질이며,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해당한다. 나머지 첫째, 둘째, 넷째는 생존에 불리한 돌연변이적인 기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문명적 차원,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차원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기질이라는 생각이다.


이 특이 기질들은 의식주가 해결되는 것으로 생존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각자 다른 기질에 따라 생존에 필요한 추가적인 요구가 생긴다. 그로 인한 추가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각자 기질에 따라 새롭게 받은 추가적인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현상을 보고 누군가 관찰을 통해 '자아 실현'이라는 말을 붙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철학자, 정복자, 예술가. 세 가지 특이한 기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다른 글에서 다루겠다.


이 글에서는 첫번째와 두번째 기질에 대해서 다루고, 역할적 기질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뤄보겠다.



기질적인 스트레스 '해소법'

기질에 따라 다른 감각에 예민하고, 그 감각에 따라 스트레스를 다양한 방식으로 받는다. 스트레스의 요인이 개성이 생기는 이유와 동일하게 너무 다양한 만큼, 해소법도 너무 다양하다.


기질적인 무의식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는 각자의 한계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개인으로서의 한계"


내가 말하는 개인으로서의 한계는 각자 다른 지능, 지식, 활용 가능한 자원, 환경, 관계 등이 있다. 스트레스 해소 또한! 삶의 일부이며, 삶은 운명과 선택의 이중나선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것은 정답이 없다.


취미, 취향, 직업 등을 탐색하는 것처럼, 이 또한 인간이라면 반드시 탐색해야 할 과업이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나는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것으로 '운동'을 선택했다. 솔직한 말로, 나는 지금까지도 보디빌딩을 한 적이 없다. 보다 정확하게 여자, 이성에게 잘 보이려고 운동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나에 대한 혐오로 운동을 했다. 이것밖에 안 되는 병신이냐고, 그냥 뒤지라고, 이래도 안 뒤져? 라면서 학대한 건데, 운동이 끝나고 녹초가 되면 기분이 좋았다. 매일, 매번 쓰러질 때까지 운동을 했더니 자연스럽게 점진적 과부하가 된 거다. 이런 식으로 운동을 중학교 1학년부터 해왔다.


나는 혼술을 했다. 나는 책을 읽는다. 운동도 그렇고 혼술도, 독서도 그렇고. 나는 모든 사람이 다 술을 마신다는 건 혼술이 기본이고, 책을 읽는 게 기본이고, 운동도 스스로에게 불만이 있으니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혼술을 한다고 했을 때, 거의 뭐 중독자라는 반응에 놀랐고, 혼술을 끊었다. 처음에는 완전히 술을 끊으려고 했지만 담배 끊는 것보다 술 끊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술 끊는 게 독종이다. 내가 혼술을 좋아하는 건 단 한 가지 이유였다. 조용한 곳에서 쉽게 몸과 정신을 이완할 방법이었으니까.


책을 읽는다는 반응에는 "대단하다"는 말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지식, 지혜. 부자가 되기 위해서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당연히 읽어야 하는 건데. 이게 대단한 거라고?'. 독서 모임에서 사장님들, 의사, 변호사들. 왜 이렇게 아는 게 많냐는 말을 들었다. 아 그런가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작가지망생'이라는 말을 했고, "아~ 그래서 아는 게 많구나."라고 자기들 스스로 납득했다. 작가지망생이 아니라 인풋이 많으니까 그런 거지.


운동도 왜 이렇게 몸이 냐? 뭐 이런 반응. 운동에 대한 이야기 동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이 없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더 대화를 해보면, 불만을 자기 몸을 학대하는 방식으로 해소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죽이고 싶어서 운동을 선택한 건데. 뭐. 지금 생각해 보면 건강하지 않은 자기혐오였던 것 같다. 나약한 새끼 뒤져! 이런 느낌이었다.


또 글을 썼다. 나는 보기보다 효율을 중시하는데, 한번 생각한 거, 한번 배운 거를 까먹는 걸 싫어한다. 한 번이라도 자기가 스스로 백지에 정리를 해낸다면, 기억은 장기기억으로 넘어간다. 나의 경우 그렇다. 물론 한 가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까지 백지 4~5장 정도 필요하다.


일기를 썼다. 개인의 역사는 중요하니까. 나에게 적용할 수 없는 역사가 많다. 어느 역사를 보면 '해라!', 어느 역사를 보면 '하지 말아라!'. 결국 인간은 참고할 수야 있겠지만, 개인의 역사가 제일 중요하다. 일기를 쓰고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역사를 소유하고,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테스토스테론 '공격성' - 해로운 남성성의 상징이 되어버린..

부정할 수 없다. 테스토스테론이 '공격성'의 상징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해로운 점'만 부각된 건 참으로 아쉽다.


테스토스테론으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공격성'을 사회에서 도덕과 윤리, 질서, 박애 등에 대한 학습을 통해 길들여내면 공격성이라는 에너지는 '창의성', '도전 정신' 등 이로운 것으로 승화된다.


남성으로 태어난 운명, 테스토스테론으로 인한 '공격성', 이 운명 앞에서 남자는 두 가지 갈림길 앞에 선다. 파괴적이고 무질서한 폭력과 창의적이고 질서 잡힌 폭력으로.


폭력은 수단일 뿐, 수단은 그것 자체로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없다.

위의 문장을 뒷받침할 예는 많다.

'다이너마이트' - 광부들의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만들어냈다.

'공원력과 군사력' - 상호확증파괴, 보복

'칼, 날붙이' - 요리사가 쓰면 요리하는 칼, 미친놈이 쓰면 사람 찌르는 칼.


폭력에 대해서만 말을 해서 그렇지, 수단으로 쓰이는 모든 것들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약도 그렇고 양면성을 가진 것 또한 예시는 많다.



에스트로겐 '공격성' - 남자들의 공격성에 가려진 독약, 여성들의 공격성

여성들은 수동적인 공격성을 띤다. 애초에 남성이고 여성이고 공격성은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라 없을 수가 없다. 다만 어떤 형식으로 드러나느냐의 문제다.


남성은 강한 근육이 있다. 보통 뇌의 활성도에서도 여성보다 언어영역의 활성도가 낮다. 몸이 먼저 앞선다. DNA에서 오는 기질적인 선택이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DNA에서 오는 기질적인 선택으로 공격성이 드러날 뿐이다. 독약처럼 조용하게 말이다.


여성의 공격성은 뇌에서 언어영역이 활성화된다. 또 여성은 사회적인 평판을 공격한다. 동물은 참 그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때문에 남자는 남자를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점차 성숙해지면 질수록, 남자는 남자의 육체에 기능장애를 남기려고 한다.


여자는 여자를 죽이려고 한다. 마찬가지다. 하지만 점차 성숙해지면 질수록, 여자는 여자를 고립시키려고 한다.


폭력만을 억압하는 현대 사회와 현대 정치에서는 남녀 모두가 상대를 고립시키는 방법, 평판을 깎아내리는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정치적인 싸움에서도 다른 양상을 보인다. 기질적인 이유다.



남녀의 다른 정치 개입의 이유 & 정치적 모임을 갖는 이유 & 정치 대립의 이유

정치에 개입하는 이유

여자의 경우 - 불평, 불만의 해소, 소외감과 두려움이 주류다.

남자의 경우 - 집단의 발전과 이익, 개인의 목적과 비전, 상호 이용, 윈윈이 주류다.


정치적 모임을 갖는 이유

여자의 경우 - 대화와 소통, 뒷담화 험담이 주류다.

남자의 경우 - 협력하는 자리. 미래를 도모하는 것이 주류다.


정치적 대립의 양상

여자의 경우 - (전부 수동적) 시기질투의 대상이 망하기를 바람. 깎아내리기, 크랩멘탈리티.

남자의 경우 - 목표지향적인 과정 중 장애물이 되는 것들을 제거함. (←여기까지 능동적) 크랩멘탈리티(←여기는 수동적)



기질적으로 어떤 선택지가 주어지는지 살피고, 그 속에서만 선택하려고 하면 '현대문명의 사회인'이라고 할 수 없다.


내가 제일 부러운 건, 상냥한 말투다. 공무원, 공기업에서도 내가 원하는 상냥한 말투의 남자는 1명밖에 보지 못했다.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을 곁에서 경험한 것만으로도 저 말투는 반드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잘 안된다. 그래도 계속해서 바꾸려고 생각하는 게 좋겠지, 물론 지금의 말투나 크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노력해야겠지.


그 남직원이 쓰는 말투는 분명히 남자의 기질적인 선택지를 벗어난 말투였다. 솔직히 나는 게이인 줄 알았다. 살짝 오싹하기도 했는데, 생활하다 보면 그건 아니라는 점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성을 수단으로 사용한다. 이성이 제1의 수단이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사람을 경험해야 한다. 내 인생에 저렇게 상냥한 말투를 쓴 남자는 그 사람 1명뿐이다. 유튜브에 나오는 게이들의 말투와는 전혀 다르다. 정갈하고 상냥한 말투였다.


많은 것을 경험해서 보다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을 때, 우리는 반드시 시도하고, 노력해봐야 할 것이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오티움'이라는 개념이 있다. 스트레스받는 환경, 작업과 정반대 되는 것으로 뇌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이론이다.


정적인 사람이 정적인 활동만 하면, 오티움적으로 진정한 휴식, 스트레스 해소를 할 수 없다. 활동적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정반대 되는 것들을 모두 경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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