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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현 Jul 08. 2024

생존 : 운명과 선택의 이중나선

(결정론 vs 자유의지)? → 결정론 + 자유의지 = 이중나선 이론


한때 친구와 결정론과 자유의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모든 것이 운명이라는 운명론자다. 나는 모든 것은 자유의지라는 인간을 과대평가한 사람이었다.


몇년간 간간히 이 주제는 우리 사이에서 화두가 되었다. 그러다 몇년 전 몇개월 동안 이 화두에 몰두했다. 나는 결국 부정할 수 없는 운명적인 면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반대로 부정할 수 없는 자유의지의 측면들이 존재했다.


나는 모든 것이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과 모든 것이 인간의 선택이라는 자유의지에 대해서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는 양과 음처럼 섞여야 한다고 판단하고 섞었다.


섞고 보니까. 인간의 삶이란 운명과 선택의 죽어야만 끝이 나는 "이중나선"이었다.



운명적으로 정해지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시대, 국가, 지역 사회, 가정 환경, 기질, 인연(인구풀) 그런데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극소수의 미친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집념으로 시대를 바꾼다. 국적을 바꾸기도, 지역 사회를 이사를 통해 바꾸기도, 가정 환경을 대화와 독립과 결혼 등을 통해 개선하고 바꾸기도, 기질을 바꾸지 못해 성격을 바꾸기도 한다. 주변 인간관계를 위해 인구풀을 바꾸기도 한다.



타인의 선택이 당신에게 운명처럼 다가갈 수 있다. 

타인의 선택이 당신에게 운명처럼 다가갈 수 있다. 물론 당신의 선택도 타인에게 운명처럼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마약과 도박, 성매매 등 처벌 받는 범죄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게 바뀌기도 한다. 과거에는 성관계를 담은 동영상이 대부분 성착취물이 었는데, 이제는 스스로 '온리팬즈' 같은 플랫폼을 이용해 자신의 육체를 성상품으로 기획해서 판매한다. 이건 불법이 아니고 될 수 없다.


성인 영상을 담아 판매한다는 점은 같은데, 그 속에서 인간 관계적인 역학이 서로 윈윈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런 누구도 착취되지 않은 서비스를 소비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한다는 점은 역시 한국은 후진국이라는 증거일 뿐이다.


어쨋든 위에서 말하고 싶은 핵심 요지는 이것이다. 시대는 변화한다. 그리고 그건 누군가의 선택일 수 있다. 그런 선택은 운명처럼 시대와 대중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변화에 적응할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


인간은 진화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운명 속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단 두가지다. 변화에 적응하거나 도태되거나 둘 중 하나다.



소모되는 자 :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들

예술.. 예술가들은 언제나 소외되고, 소모되는 자들이다.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그들은 현실과의 괴리, 보다 정확하게는 자본과 대중에게서 큰 거리감과 괴리감을 느낀다.


예술가 또한 인간이라 생활을 해결하고 먹고 사는데,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예술을 통해서 추구하는 것은 돈을 버는 것과는 본질적으로는 인간에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결이 같지만 평행하거나 빗겨나가는 모양새인 것이 예술 활동이다.


돈은 대부분 문제를 해결하며 받지만, 예술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채로 돈을 받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예술은 경기가 나빠지면 가장 먼저 배움에 돈을 지불하지 않게 되는 분야다. 이 경우 모든 예체능이 마찬가지겠다.



운명이라는 파도, 거대한 흐름

운명이라는 파도, 거대한 흐름은 분명히 존재한다. 거기서 익사할 것인지,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할지, 거친 바람에 돛을 펼쳐 거친 항해를 할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나는 거대한 파도 위에서 수영하는 선택을 했다. 그 수영은 문학이다. 분명히 보인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익사할 것이라고, 배는 이미 저 멀리 떠났다.


수영을 하면서 나는 올해부터 내년까지 구명조끼를 만들려고 한다. 그래도 언젠가 지나갈 배가 볼때,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나는 성격적으로 기질적으로도 '학문'이나 '연구', '사업'에, "파괴적이고, 싸우고, 빼앗는 활동"에 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지만, "창의적인 활동" 게다가 모든 인간이 후천적으로 학습해야하고 힘든 훈련을 통해 얻게 되는 '문해력과 독해력'이 필요한 분야의 예술을 한다는 건. 정말 내가 봐도 미친 짓이라는 게. 그런데 그 정도로 미친 짓이기 때문에, 괴롭고 우울증에 빠져버려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 글쓰기란 지독한 사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인간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인간이므로, 요즘 점점 이 책을 써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금전에 궁핍한 생활을 보내다 보니. 어떻게 글로 돈을 벌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곰곰이 나를 살펴보니 나도 결국 '생존'이라는 목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성을 도구로서 '글'이라는 수단을 선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생존'은 동물로서, 인간으로서의 인류 공통의 목표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의 '이성'이 꽤나 품질 좋은 것 같고, '글'이라는 수단은.. 정말로 양날의 검처럼 어떻게 휘두르는가에 따라서 천지 차이의 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글 자체로 돈을 버는 걸 포기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 또 좋은 도구가 된다는 점이 최고다.


점점 더 글을 그 자체의 수단으로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점점 취미의 영역으로 밀려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목적이 "글로 성공"이었다면, 이제는 목적이 "생존"이라는 점이 점점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체감되는 나이 28세.


때문에 점점 더 스트레스 제거에 관심이 가는, 돈벌이에 관심이 가는 인간, 그것이 나다.


사실 20대 초에 세운 계획도 그렇다. 20대는 상태를 개선하기로 정하면서 그 순간 30대는 상황과 환경을 개선하기로 했다. 그런 목적을 갖고 살아온 20대다. 때문에 큰 관성이 생긴다. 30대는 상황과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관성.



과거에 선택과 운명의 이중나선을 정리하며 상징적인 단어들로 써낸 글이다.


비율을 따져보자면, 운명은 거대하고 98%, 우리의 선택은 2%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작은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대로 바꿀 수 있다. 다만! 정당한 대가를 치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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