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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현 Jul 11. 2024

결국 문제는 당신이 쥐고 있다 : 불교, 중용, 도덕경

스트레스받는 "문제", "결국 문제는 당신에게 있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 같다. 무슨 왕따를 당해도 당하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세상, 괴롭힘, 군대에서 죽어도, 사기를 당해도 피해자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한국, 그런 문제에서만 갑자기 '현자'가 되어버리는 내로남불, 이해타산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들의 국가.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조금 더 정확하게 "당신에게도 문제가 있다"라고 말해보고 싶다. 상처받지 않게, 정확하게.


정확하게 우리 모두가 상처받지 않게 말해보자면, "당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당신이 문제를 쥐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당신이 문제를 쥐고 있다.

문제는 당신이 쥐고 있다. 당신의 기질이나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다. 보고 배운 적이 없다거나 보고 배운 표현 방법이 사회적이지 못하다면 당신의 잘못은 아니다. 굳이 따져봐도 당신의 죄는 당신의 죄가 아니다. 그저 우연히 그런 환경에 태어난 것일 뿐.


우선 '어떤 경우에도 당신이 문제를 쥐고 있다.'는 인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성장형 사고방식"을 장착해야 한다. 모든 것은 학습에 의해서 개선할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해도 당신이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매력의 부족이다. 매력을 학습하고 성장시켜 개선한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영혼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고 점점 멀어진다. 당신의 표현력 부족이 문제다.


물론 소수의 이상하고 이기적인 사람에게만 그런 말을 듣는다면 당신에게 문제가 있을 확률은 적다.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결국 사람이고, 그 사람한테 문제가 있는 건데 인지하지 못하도 당신의 문제로 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 대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고 세상을 봐야 한다. 그러니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쉽게 미워하지 말자. 정상적인 사람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다 이유가 있는 거니까. 대화하고 오해를 풀어볼 용기를 가져라.


어쨌든 인간관계를 떠나서 생기는 다른 모든 문제도 사실 당신이 쥐고 있다.



불교, 중용 : 해결책, 포기하거나 끝까지 가거나

고통과 괴로움은 원하는 이상향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서 일어난다. 그것을 '간극'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이어지지 못한다. 간극이 있다. 내 매력의 부족으로 고통이 생긴다.

어떤 것을 성취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 간극이 있다. 내 실력의 부족으로 고통이 생긴다.


인간관계의 간극, 일과 성과에 대한 간극 모든 문제는 당신에게 있다. 이런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을 불교와 중용의 관점을 빌려 풀어보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노자의 도덕경으로 정리해 보겠다


불교

불교는 기대감에 의해서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이 좌절될 때, 얼마나 인간이 괴로운지도 잘 알고 있다.


불교는 모든 부분에서 '기대감'을 포기하라고 말한다. 그래야 어떤 결과에도 고통받지 않으니까.


세속적인 삶의 성과 - 마음 수양으로 부처가 되려 함.

음식이 맛있을지 없을지 - 금식과 인내, 그저 먹을 수만 있어도 감사할 뿐. 사실 먹지 못해도 상관없다.

죽음 - 어차피 죽으니 발버둥 치지 말 것.

사랑 -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고, 동상이몽인 것을.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도하지 않는다.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기대한다는 것이므로.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의 가르침이나 뜻을 '전도'하려고 하지 않는다. 애초에 자기 자신을 위한 수행이기 때문에.


중용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저술한 책이다. 동양철학은 공자와 노자의 대립되는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공자 쪽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은 중용이라고 생각한다.


짧게 말하자면 공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는 편이라 교육, 가르침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노자는 인간의 본성과 기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교육보다는 그 사람의 본성이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야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모든 것은 그대로 자연스럽게 된다고 말이다.


중용은 인간의 교육과 학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조금은 노자의 사상이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결국 인간 개인의 기질적이고 본성적인 면을 수용해서 수정한 철학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중용의 이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중용 20장 발췌] - 성실함, 끈기, 인내에 관하여

[본문]

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誠者,不勉而中,不思而得;從容中道,聖人也。

誠之者,擇善而固執之者也。

博學之,審問之,慎思之明辨之,篤行之。

성자 천지도야 성지자 인지도야

성자 불면이중 불사이득 용종중도 성인야

성지자 택선이고집지자야

박학지 심문지 신사지명변지 독행지


<직역>

성이란 것(誠者)은 하늘의 도(天之道)이다(也) 성(誠)이 나오게 하는(之)것(者)은 사람의 도다(人之道也)

성이란 것(誠者)은 열심히 하지 않아(不勉)도(而) 적중하(中)고 생각하지 않아(不思)도(而) 얻어지(得)고 조용히 있어(從容)도 도에 적중(中道)하니 성인(聖人)이다(也)

성(誠)이 나오도록 하는(之) 것(者)은 선을 택(擇善)해(而) 견고히(固) 잡(執)고 나가는(之) 것이다(者也)

널리(博) 그것(之)을 배우(學)고 살펴(審) 그것을 묻는다(問之) 삼가(慎) 그것을 생각해(思之) 밝게(明) 그것을 분별하고(辨之) 돈독히(篤) 그것을 행한다(行之)


<한자해설>

誠(정성 성) : 정성, 진실, 참으로, 참되게 하다, 삼가다, 자세하다

之(갈지) : 가다, 나오다, 이르다, 이용하다, 끼치다, ~의, 그것

從容(종용) : 침착하고 덤비지 않음. 조용함

容(얼굴 용) : 얼굴, 모양, 속내, 담다, 용납하다, 조용하다, 권하다, 누긋하다

慎(삼갈 신) : 삼가다, 따르다, 참으로 이루다

辨(분별할 변) : 분별하다, 구분하다, 밝히다, 변론하다, 따지다  


[본문]

有弗學,學之弗能,弗措也。

有弗問,問之弗知,弗措也。

有弗思,思之弗得,弗措也。

有弗辨,辨之弗明,弗措也。

有弗行,行之弗篤,弗措也。

人一能之,己百之。人十能之,己千之。

果能此道矣,雖愚必明,雖柔必強。

유불학 학지불능 불조야

유불문 문지불지 불조야

유불사 사지불득 불조야

유불변 변지불명 불조야

유불행 행지불독 불조야

인일능지 기백지 인십능지 기천지

과능차도의 수우필명 수유필강


<직역>

배우지 않음(弗學)이 있어도(有) 그것을 배움(學之)에 능숙치 않음(弗能)은 두지 말아(弗措)라(也)

묻지 않음이 있어도(有弗問) 그것을 물음(問之)에 알지 못함(弗知)을 두지 말아라(弗措也)

생각하지 않음이 있어도(有弗思) 그것을 생각함(思之)에 얻지 못함(弗得)을 두지 말아라(弗措也)

분별하지 않음이 있어도(有弗辨) 그것을 분별함(辨之)에 밝지 못함(弗明)을 두지 말아라(弗措也)

행하지 않음이 있어도(有弗行) 그것을 행함(行之)에 돈독하지 않음(弗篤)을 두지 말아라(弗措也)

사람(人)이 한번(一) 능히(能) 가(之)면 자기(己)는 백번(百) 가라(之)

사람(人)이 열 번(十) 능(能)히 가(之)면 자기(己)는 천번(千) 가라(之)

과연(果) 이 도(此道)에 능(能)하면(矣) 비록(雖) 어리석어도(愚) 반드시 밝(必明)고 비록(雖) 유약해도(柔) 반드시 강하다(必強)


<한자해설>

弗(아닐 불) : 아니다(보다 강함), 떨어 버리다, 근심하다

措(둘 조) : 두다, 놓아두다, 그만두다, 처리하다



쉽게 말하면, 인간이라면 선한 마음으로 꾸준해야 한다. 하지 않을 거면 아예 쳐다도 보지 말고, 가타부타 떠들지 말고, 평가하지도 말라. 단, 하기로 선택했다면, 남이랑 비교하지 말고, 변명 늘어놓지 말고, 천 번 만 번을 해서라도 통달해라. 인내와 성실함으로, 우공이산, 바보가 산을 옮긴 것처럼!



도덕경 : 딱 지금! 정성 들이는 것만 생각해라. 

중용과 같이 '정성'이라는 면이 닿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용은 자기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을 도로 보았고, 노자는 도는 각자 다른 것이라고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도가 아니다.'라는 말로 표현해 정의했다.


노자는 개인의 기질, 개인의 상황, 환경, 상태에 더 집중했다. 어느 철학이 사랑에 더 가깝냐고 말한다면 노자의 철학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에 더 가깝다. 공자 쪽의 철학은 사회적, 시스템적이고, 노자는 개인주의적이다.


높은 자리를 내주겠다는 말에 자라는 진흙 속에 있어야 행복하다는 말을 한 게 노자다.


노자는 개인의 기질적인 욕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회에 맞춰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상태'를 위험하고 어리석고 도에서 벗어난 상태로 바라본다. 딱 지금 사회에 어울리는 철학이다.


중용이나 공자 쪽의 철학은 결국 어떤 결과를 위한 철학이다. 그런데 도덕경은 결과를 떠나 개인의 행복에 대한 철학이다. 그래서 노자는 그 시절 농부들에게 괜히 글 가르지치 말라고도 말했다. 하루 온종일 농사지어야 하는데 무슨 글이냐? 오히려 분수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게 돼서 괴롭게 될 뿐이다.


다시 한번 말하겠지만 노자는 개인의 기질적인 욕망을 지지한다. 사회에 가스라이팅 당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 나도 왠지 sns나 미디어에 노출된 무언가를 추구해야 할 것 같은 상태를 극혐 한다. 자신의 길을 가는 것! 그러나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속도로 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정성'을 말한다.


한국인이라면 의무교육을 받는다. 탄생 연도에 따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의 단계가 다르겠지만, 그래도 한국인이라면 수학을 배우고, 시험을 치렀을 테니. 그 경험을 예로 '정성'을 설명해 보겠다.


[예시]

우리는 태어났다. 학교에 가서 수학을 배운다. 그리고 시험을 치른다. 만약 우리 모두가 수학을 공부하는 것이 기질이라면, 노자는 말한다.


시험을 보고 나서 점수를 받을 때 남과 비교하지 말고 당신의 속도라 가라. 매일매일 정성 들여 공부해라. 미래는 생각하지말자. 당신이 10분에 수학문제 2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라면, 풀지도 못하는 3번째 문제 때문에 고통받지 말고, 주제와 분수에 맞게 10분에 2가지 문제를 풀어내는 것에만 집중해서 정성을 받쳐라.


그렇게 하루 이틀, 10분에 2문제 정성을 들이는 시간을 가지다 보면, 2문제를 풀고도 1분, 2분씩 시간이 남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당신은 3번째 문제를 들여다보고 정성 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 성장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므로, 괜히 마음 써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게 개인의 기질, 능력을 인정하면서 개인의 행복을 위한 방법이라고 노자는 말한다.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속도로 지금에 집중해서 정성을 들인다. 그렇게 성장은 자연스럽게 이뤄지되, 당신은 매 순간이 즐겁다. 기질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누군가, 사회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니까.



문제는 당신에게 있다. 보다 정확하게 당신이 쥐고 있다. ★★★다 정확하게 "당신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다.


당신의 손에는 당신이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쥐어져 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하기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쥐고 있다.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그 문제에 맞춰봐라. 사회를 비롯해서 당신 개인에게 맞출 필요도, 그럴 생각도 없는 것을 두고 평생 이게 잘못이네 뭐네 말만 하다가 괴롭게 죽어갈 것인가? 사회가 변할 생각이 없다면 당신이 변해라.


바꿀 수 있는 것을 쥐고 있다.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바꾸려고 노력해 보자.



정리하자면, 현대 사회는 불교와 도덕경의 조합으로 살아갈 순 없다. 먹을 게 없다고 굶으면 현대 사회는 굶어 죽게 된다.


세속적인 현대 사회에서는 중용으로 살아가는 것이 적합하다. 그런데 괴롭거나 고통받기도 싫다면, 중용+도덕경의 조합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기 싫은 것과,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의 균형을 맞춰서


하기 싫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하는 것도, 전부 '나'를 이루고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


당신은 당신이다. 당신은 신도 아니고, 왕도 아니고, 왕자도, 공주도 아니다. 비대한 자아를 갖지 말아라. 다만 당신이 당신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도 말아라.


인생이란 단순할 수 없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을 받아들일수록 인생은 점점 단순해진다.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것은 잔인하다고, 그런데 더 생각해 보면 단순한 게 잔인한 게 아니라. 세상은 원래 단순한 것이고, 그런 세상이 잔인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떻게 말해봐야, 영화 "신의 한 수"의 대사처럼, 이 세상이란 건 고수에게는 놀이터고, 하수에게는 생지옥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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