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현 Feb 05. 2024

분석가가 되다

나에게 패배란 질병과 같은 치료할 수 있는 것이므로

나는 97년생인데 나때만 해도 동네에서 뛰놀기도 하고, 컴퓨터로 게임하는 비율이 초등학생 때는 5:5정도 되었다. 그리고 점점 나이를 먹을 수록 컴퓨터의 비중이 늘었다.


"게임" 아주 옛날의 시대에 살았던 어린이도, 그리고 지금 현대에 태어난 어린이들도, 플랫폼과 형식만 다르지 "놀이"를 한다. 놀이, 즉 게임은 사람의 지능 발달에 아주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것 같다.


게임을 하던 시절을 떠올려보자. 누구나 한 번 쯤 승리와 패배를 맛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희열과 절망도 맛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누구는 게임을 접거나 피하고, 하기 싫어한다. 또 누구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이길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가끔 소수는 불법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게임의 규칙을 어긴다.


나는 게임에서 지는 내가 너무 싫었다. 게임을 좋아했기 때문이고, 게임에서 도망쳐봐야 친구도 없이 책만 봐야했기 때문이다. 어리면 어릴 수록 게임 말고는 재밌는 게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는 아이가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무의식적으로 게임을 분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매판 왜 졌는지, 뭐가 문제였는지, 원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전의 나에게 패배는 그저 받아들여야하는 거대한 자연재해 같은 폭력이었다. 그 앞에 나는 무기력했었다. 그러나 분석을 시작한 순간부터 패배는 질병과 같이 고칠 수 있는 것으로 사고 방식이 바뀌었다.


나는 어릴적에 주로 FPS 게임을 했는데, 1인칭으로 전장을 누비며 총을 쏘는 게임이었다. 우선 게임마다, 정해진 규칙과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맵의 지도를 찾아서 실제 게임 속 맵과 비교해보며 차이점을 찾아내고 수정하면서, 맵을 익히고 머릿 속에 세겨놓았다. 그리고 새로 나오는 맵에 대한 지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기기 위해서.


FPS 같은 경우에 적군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했다. "브리핑"이라고 말하는 기술이다. 서로 실시간으로 적군의 위치과 자기의 위치와 상태를 아군과 교신한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거의 직관적으로 확률적으로 움직인다. 이기기 위해서.


아군이 훨씬 유리한 위치에는 샷빨(=사격의 정확도)이 조금 낮은 팀원을 배치한다. 그리고 아군이 불리하지만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위치에는 샷빨이 좋은 팀원을 배치한다. 샷빨의 척도는 킬뎃%를 보고 측정했다. 킬뎃%가 50%이상이어야 1인분을 하는 것이다. 클랜원을 뽑을때 55%이상만 뽑았다. 전체적인 클랜원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물갈이가 진행됬던 것이다. 이런 클랜을 빡사(=빡센 상대 사냥 클랜)이라고 한다.


FPS에서는 팀원의 수준, 각 팀원의 주총(라이플, 스나이퍼), 포지션에 따른 숙련도, 맵의 불리한 위치와 유리한 위치, 장비 등은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카테고리였다. 이기기 위해서.


이제 MMORPG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FPS에서 갉고 닦은 분석력으로 이번에도 이기기 위해서 분석을 했다. 사용할 수 있는 자원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일단 상대 세력과 전쟁을 해야하는 전장에 대한 정보를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고, 우리 진영과 상대 진영에 대한 격차를 파악해야 했다. 직업의 종류와 각 직업마다 스킬의 특징, 장비의 수준, 레벨의 격차 등


첫번째 전쟁에서 나는 승패의 유무를 떠나서 정보를 파악하기 바빴다. 이기기 위해서. 여기서 자꾸 이기기 위해서 라고 말하는데, 나는 모든 게임이, 인생도 마찬가지로, 단판으로 끊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게임과 인생의 닮은 점이다.


우리는 삶에서도 우리가 왜 이기는지, 왜 지는지, 뭐가 문제인지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왜 이기는지, 이기기 위해서 무엇을, 어느 타이밍에 해야하는지 알아야 한다.


MMORPG, FPS 등 어느 장르의 게임이든 최고 티어의 상대들과 겨룰 때, 엎치락 뒤치락 하며, 역전할 수 있는 치명적인 수를 보다 많이 준비하는 쪽이 이긴다. 물론 같은 상위권 플레이어끼리도 기본기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버리면 기본적인 전술로도 손쉽게 결판이 나버린다.


상위 티어로 갈 수록 클랜, 길드, 유저의 수가 줄어들어서 상대의 패턴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수가 적기 때문에 작업량은 많지 않았다.


나는 게임에서의 이런 경험을 마침내 인생에도 적용시키기로 했다. 가장 먼저 적용시킨 것은 솔직하게 말하기 민망하지만 나와 상위권 친구들의 성적 차이 그리고 우리 부모님이었다. 성적의 차이는 분석이라는 말이 민망하게 너무나 당연했다. 나는 공부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고, 그 친구들은 의도적으로 했다.


진짜 말하기 죄스럽고 민망한 것은 부모님에 대한 내용이다. 나는97년생이므로 IMF 태생이다. 우리 부모님은 국가 부도 사태를 겪으면서도 노동하시고 나를 키워주셨다. 그런데 한국의 경기가 안정되면서도 계속해서 우리의 집이 근근하게 먹고 살고 있었다. 그저 근근하게 먹고 살만큼만 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자본주의라는 게임에서 우리 부모님들이 연속으로 패배하는 이유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승자들의 책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나에게 패배란 질병과 같은 치료할 수 있는 것이므로.


여기까지가 어떻게 보면 내가 태어나서 고등학생이 될때까지 깨달은 통찰이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없다. 게임이 날 분석가로 만들었다. 이기기 위해서 분석을 시작한 사람. 아니 애초에 분석은 이기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이므로. 나는 알고 한 게 없다. 그저 이기고 싶었다.

이전 02화 목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