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
출퇴근 시간대 광주시의 도로는 주차장이다. 도로에 들어서면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뒤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감옥이다. 매일 반복되는 이 고통에서 광주시민들은 ‘출퇴근 지옥’을 호소하고 있다.
◯ 광남 주민 : “태전지구에서 45번국도나 3번국도를 타려면 10분거리가 1시간이 넘게 걸려요. 매일 아침·저녁으로 전쟁입니다.”
◯ 초월·곤지암 주민 : “초월이나 곤지암에서 경충대로(구3번국도)에서 매일 1~2시간을 버립니다. 오후 5시 이후 경충대로를 지나간다는 건 차 안에서 긴 시간을 보낼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 오포 주민 : “신현동에서 태재로(57번지방도)까지 마을길을 나오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태재로로 성남을 가려면 또 1~2시간이 걸립니다. 걸어가는게 더 빨라요.”
출퇴근 시간대에 광주시의 교통체증을 경험한 시민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도로가 막히는건가?”와 “어떻게 하면 교통체증을 해결할 수 있을까?”를 질문하게 된다. 광주시민들의 민원 1순위는 교통문제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과거 광주시 도로의 변화를 살펴보고,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한다.
광주시의 도로를 ▲동서축으로 경충대로와 3번국도, ▲남북축으로 43번국도와 45번국도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특히 서울로 연결되는 성남 방향인 조선시대 ‘봉화로’와 하남 방향인 일제강점기 ‘신작로’의 형성 원인과 과정을 통해 광주 도로의 오늘과 내일을 함께 이야기해 보겠다.
□ 광주시 도로의 역사 1 : 조선시대 봉화로 (경충대로_구3번국도)
광주시 도로구조의 틀은 조선시대 10대 대로 중 하나인 ‘봉화로’에서 찾을 수 있다. 봉화로는 한양에서 경상도 봉화의 태백산사고에 이르는 도로로 경충대로(광주-장호원) 구간과 거의 일치한다. 한성에서 뚝섬, 송파진, 남한산성, 검북참(남한산성면 검복리), 경안역(경안동), 쌍령원(초월읍 대쌍령리), 곤지암(곤지암읍)을 거쳐 이천, 충주, 봉화로 연결된다.
봉화로는 1963년까지 광주지역이었던 송파진(현재 롯데월드)을 지나 오늘날 송파대로를 따라 남한산성으로 이어진다. 남한산성 동문을 지나 검복리 양지말, 불당리 아랫말, 오전리 오야수마을, 새오고개를 넘어 목현동 새오개마을로 연결된다. 목현동에서 338번 지방도를 따라 송정동과 경안동으로 들어가서 43번 국도와 만나게 된다.
광주는 고려 940년(태조 23)에 ‘광주’라는 지명이 확정되며, 983년(성종 2) ‘광주목’으로 여러 지방을 관할하게 된다. 당시 광주의 행정구역은 현재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와 서울시 송파·강남·서초·강동, 의왕시, 안산시, 군포시, 수원시, 화성시, 남양주시의 일부를 포함한다. (대동여지도, 1861) 1577년(선조 10) ‘광주부’로 승격되고, 1623년(인조 1) 한양의 동쪽을 방어하는 ‘유수부’로 준수도적 기능을 갖게 된다. 1626년(인조 4) 광주 치소(관청)가 하남시 교산동(부근)에서 남한산성으로 올라가면서 봉화로 특히 남한산성 구간의 중요성은 커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울에서 경안동 구간은 우회로가 등장하면서 위상이 바뀌었지만, 경안동에서 이천 구간은 큰 변화 없이 경충대로로 거의 계승된다. 변화가 있다면 병자호란 당시 쌍령전투가 있었던 대쌍령(쌍령동과 초월읍 대쌍령리 경계)와 소쌍령(초월읍 대쌍령리와 쌍동리 인근)의 고개가 경충대로(구3번국도)로 직선화되었다.
하천(경안천, 곤지암천 등)을 따라 도로 형성
조선시대 한성의 인구는 약 10~13만명 정도였다. 농경사회에서 인구는 경지의 면적과 비례했고, 광주는 경지면적으로 경기도에서 3번째(6,075,884결), 인구규모는 2번째(55,218명)로 수원에 이어 인구가 많았다. 특히 한강 연안과 탄천·경안천 유역으로 경지, 중요한 교통망이었던 수운(한강을 따라 물의 길)을 따라 장시(시장), 그리고 인구가 집중되었다.
조선의 교통은 육운(도로) 만큼 수운(수로)이 중요했다. 특히 한강을 따라 연결된 수운은 교통의 요지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다. 광주가 도자기의 생산지가 될 수 있었던 요인도 한성과의 수운을 통한 접근성이라고 볼 수 있다. 한강으로 연결되는 하천은 자연스럽게 물 흐름의 경사도를 따라 도로가 형성되었다. 경안천과 그 지류를 따라 곤지암천, 번천 등 물길은 봉화로와 신작로의 도로 노선과 유사하다.
경안동을 중심으로 광주 도로의 동서축을 담당하는 봉화로(현 경충대로)는 경안동에서 곤지암천을 따라가다가 곤지암역에서 신촌천을 따라 이천으로 연결된다. 남북축을 담당하는 45번국도는 경안동에서 오포 방향의 경안천을 따라 용인의 중심지인 감량장동까지 이어진다. 또한 2개 이상의 하천이 만난 곳은 더 크게 발전한다. 경안천과 직리천이 만나는 곳은 장지IC(경충대로-43번국도), 태전JC(3번국도-45번국도), 고산IC(43번국도-45번국도), 곤지암천과 신촌천, 노곡천이 만나는 곳은 곤지암IC(중부고속도로-경충대로)가 있다.
특히 수운과 육운이 만나는 결절점은 장시(시장)가 발전했다. 송파장, 경안장, 곤지암장 등이 들어서고 물류 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처럼 하천을 따르면 경사와 기복이 없이 평탄하여 도로가 연결되고, 하천이 만나는 곳은 장시, 취락지로 성장하게 된다.
□ 광주시 도로의 역사 2 : 일제강점기 신작로 (현재 43번국도)
일제강점기에 ‘신작로’가 만들어지면서 조선시대 ‘봉화로’는 쇠퇴한다. 광주의 정치·행정의 중심지인 ‘남한산성’이 아닌 하남시 방향으로 변경된다. 한성에서 광진(광나루), 초이리(하남시 초이동), 덕풍역(하남시 덕풍동), 산곡리(하남시 산곡동), 광지원리, 경안역으로 이어진다. 20세기 서울로부터 천호대교, 하남시 덕풍동, 광주시 광지원, 경안동으로 이어지는 ‘신작로’는 4차선으로 확장되고 43번국도가 된다.
신작로는 1976년 천호대교 완공과 1980년대 강동구 개발(1963년에 광주에서 서울로 분리)이 완료되면서 천호대로를 축으로 하남시와 연결된다. 은고개(하남시 풍산동–남한산성면 엄미리)를 넘어, 경안천의 지류인 번천을 따라 광지원과 상번천리를 지나 송치고개(송현마을-송정동 밀목), 통미마을, 파발막, 주막골로 이어진다. 경안동에서 이천으로 이어지는 노선은 봉화로와 거의 같다.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의 개편과 1917년 광주시의 치소(관청)가 남한산성(남한산성면 산성리)에서 경안리(경안동)으로 이전하면서 남한산성의 지리적 중요성이 낮아지고, 봉화로의 남한산성 구간도 위상이 낮아졌다. 새오개고개 도로는 경안동과 이어지는 도로는 산길이 되고, 광지원-상번천리를 통하는 길은 신작로로 정비된다.
서울에서 성남을 통과하는 ‘봉화로(342번 지방도)’에서 하남을 지나는 ‘신작로(43번국도)’로 간선도로 축이 변경되면서, 오늘날 남한산성면·남종면·퇴촌면의 교통이동량이나 생활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성남의 성장으로 도로의 축은 다시 변경된다.
□ 광주시 도로의 역사 3 : 1970년대 이후 성남의 성장과 구3번국도 (현재 경충대로)
성남의 성장과 함께 서울로의 도로 축이 하남 방향에서 성남 방향으로 강화된다. 하지만 광주와 성남 사이에는 산지로 인한 도로 연결이 쉽지 않았다. 단지 행정구역 아닌 지형적 분리로 인한 도로 연결에 어려움은 현재까지 도로개설에 높은 비용을 발생시키는 이유이다.
1950년대까지 작은 도로였던 갈마치고개(광주 삼동-성남 갈현동)에 1978년 갈마터널(1992년 확장)이 건설되고, 1979년 도로포장이 완료되면서 구3번국도는 산업도로의 위상을 가지게 된다. 갈마치고개를 넘으면, 바깥가지울(삼동), 중말(중대동), 새능(장지동)까지 내려와 43번국도와 교차(장지IC)한다. 장지IC에서 역말(역동)을 지나 경안제1교를 건너 쌍령동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도로 경충대로가 열리면서 광주 도시성장의 중요한 축이 된다.
성남과의 연결은 더욱 강화된다. 1991년 이배재터널(광주 목현동-성남 중원구, 338번지방도), 태재고개(광주 신현동-성남 분당구, 57번지방도), 이황고개(성남 도촌동-광주 직동, 3번국도) 등이 개설되면서 광주와 성남간의 연결은 강화된다.
성남의 성장은 서울의 인구 증가와 관계가 높다. 한국전쟁 이후 서울의 인구가 크게 증가한다. 1900년대 약 20만명에서 1950년대 100만명, 1990년대 1,000만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한다. 서울은 인구증가와 도시성장을 대응하기 위해 행정구역 확장을 하고, 현재 서울시 송파·강남·서초 일부(영동개발)가 광주에서 분리된다.
1970년대 서울의 인구증가와 도시빈민(무허가주택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광주대단지’ 조성사업이 추진되고 1971년 경기도 직할 성남출장소가 설치되면서 광주에서 분리된다. 1973년 성남시 승격 시 19만명의 인구는 2010년대 100만명에 육박했고, 현재 91만명(2024.01.) 수준으로 성장한다. 도시성장의 증폭제는 분당신도시(1989년 계획 97,500가구, 39만명)로 2010년 분당구는 462,696명(157,438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면, 판교 신도시 등 수도권의 중심업무지구(CBD)로 자족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2018년 기준 광주시 통행지역분포(유출 기준)는 성남이 단연 1위(37.8%)이다. 서울(33.5%), 용인(8.6%)로 서울-성남-광주-용인 동남축이 80%의 교통량을 차지하고 있다. 하남(5.7%)과 이천·여주(2.8%)로 북서축에 비해 동남축의 도로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 광주시 도로의 역사 4 : 1970년대 이후 하남의 성장, 광주-하남 도로는 정체
하남(43·45번국도)과 성남(경충대로)을 연결하는 도로는 다른 길을 간다. ‘신작로’가 43번국도로 전환되고 45번국도(퇴촌·남종 구간)이 추가되었지만, 광주와 하남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의 역할은 부족했다.
1960년대 초반 하남 동부면은 광주 광주읍의 인구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1970년대 서울의 인구가 500만명을 넘어서자 주거지의 교외화가 확장되고, 서울 강동구과 지리적으로 연접된 하남의 인구는 크게 증가한다. 하남 동부면의 인구는 1965년 1만명에서 1979년 3만명을 넘어서며 동부읍으로 승격되고, 1989년 하남은 10만명의 인구로 광주에서 분리된다.
하남시의 인구는 크게 증가했지만 생활권은 광주가 아니라 서울이었다. 검단산과 청량산을 경계로 엄미리고개(43번국도)로 단절되고, 팔당댐과 상수원보호구역으로 퇴촌·남종(45번국도)은 막혔다. 광주와 하남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성장의 길을 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성남의 성장은 값비싼 터널을 가능하게 했지만, 하남의 성장은 도로를 개선하지 못했다. 상수원보호구역과 개발제한구역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하고 광주-하남은 단절된다. 45번국도의 퇴촌·남종 구간은 여전히 왕복 2차로이며, 43번국도의 남한산성면 구간은 왕복 4차로이다. 하남시로의 통행량은 5.7%에 불과하다.
팔당상수원과 중첩규제로 도시개발은 제한되어도 도로망 개선은 필요하다. 사방이 산지로 막힌 광주에서 유일하게 열린 곳은 경안천을 따라 용인과 하남(남한강)인 남북축이다. 향후 도로망 뿐만 아니라 철도교통에서도 남북축 노선을 검토해야 하는 이유이다. 경사가 완만한 경안천을 따라 남북축으로 교통개선이 된다면 터널과 교량을 최소화(공사비 절감)하면서 확장할 수 있다.
□ 광주시 도로의 역사 5 : 급격한 통행량의 증가와 3번국도(성남이천로)·중부고속도로
간선교통망으로 1979년에 포장이 완료된 경충산업도로는 광주의 동서축으로 도시성장의 발전축이 된다. 인구(주거)가 증가하고, 산업·물류(냉장·가구·자동차부품·택배·건설 등) 소규모 기업체가 집중된다. 또한 수도권의 인구 증가와 산업의 발전, 자동차 보급률 증가는 도로의 용량을 초과하게 되었다. 정체로 악명이 높은 상황에서 우회도로의 필요성이 커졌고, 2017년 말에 3번국도(성남이천로)가 개통된다.
3번국도의 개통으로 경충대로와 광주시 내 지방도의 교통체증이 감소를 기대했지만, 광주시 외부에서의 통과교통(전체 통행량의 약 65%) 증가로 인한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교통개선은 달성하지 못했다. 또한 용인(남측)과 동측(여주·이천)에서 3번국도를 통해 성남·서울로 이동하는 차량의 증가는 태전IC·장지IC·직동IC 등 접속구간의 정체가 확대되었다.
광역교통망(고속도로)으로 남북축을 연결하는 중부(1987년)·제2중부(2001년)이 개설되고 서울세종고속도로가 개통 예정이다. 동서축은 3번국도에서 연결되는 광주원주고속도로(2016년) 개통 이후 제2순환고속도로인 이천오산고속도로가 공사 중이며 서울양평고속도로가 추진 중이다. 광역교통망의 확충은 사통팔달 광주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통과교통 증가만으로는 광주시의 편익은 적다. 중부고속도로 주변 공장·물류시설의 난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세종고속도로 주변으로 산업·물류에 대한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도시계획(시티인 51호 도시진단: ‘난개발 도시문제를 넘어 수도권 동부의 중심도시로 가야’ 중 ‘고속도로와 연계한 대규모 공공 첨단물류시설 조성’)이 필요하다.
광주시 도로문제 개선을 위한 5가지 제안
광주시 도로의 교통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① 3번·43번·45번 등 국도 및 고속도로 접속구간의 원활한 진·출입을 위한 연결램프의 차로 확장 및 추가 개설이 필요하다. 2019년 태전JCT에 회안대로에서 3번국도로의 진입램프 차로를 2차로로 확장하면서 교통체증이 완화되었다.
② 광주시 내부교통망인 천변도로·순환도로를 조속히 개통하고, 43번·45번 국도가 만나는 경안-오포 구간에 우회도로를 신설해야 한다. 경안천과 곤지암천을 따라 연결되는 천변도로와 순환도로의 일부 구간은 경제성(B/C)이 낮다. 예산 확보를 통한 개설이라는 일반적인 해결방안도 있지만, 도로 등 교통시설 만이 아닌 계획적인 도시개발과 연계하여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③ 통과교통은 광역교통망(고속도로)의 비중을 높이고, 간선도로망은 내부교통을 위한 전환이 필요하다. 광주시내에서 간선도로망으로 진·출입하는 차량의 개선을 위한 제한속도 및 꼬리물기 단속, 신호체계 개편해야 한다. 간선도로의 통과교통으로 인한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신호등으로 멈추지 않고 직진하게 만드는 지하차로의 개설이다. 하지만 매우 비싼 방법이기도 하다. 확실한 해결방안과 함께 통과교통 운전자가 간선도로망이 아닌 광역교통망을 선택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즉 간선도로를 광주시내에서 진출입하는 차량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④ 북측(하남 방향)으로의 간선도로망을 직선화와 확장이 필요하다. 북측(하남 방향) 간선도로의 개선은 광주 남부의 교통개선에도 긍정적이지만, 관광 목적 교통수요에도 영향을 미친다. 광주 북부(남종·남한산성·퇴촌)는 평일보다는 주말에 차량이 많다. 서울·하남 등 도시에서 수도권 동부로 휴식·여가를 위한 떠나는 차량들이다. 이 노선의 교통수요로 인한 ‘서울양평고속도로’도 추진 중이다. 특히 교산신도시 개발 등으로 하남시 인구가 증가하면 광주 북부의 관광은 새로운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광주에서 북측으로 통행을 유도하는 방안과 관광활성화로 인한 증가하는 통행량에 대비한 대책이 필요하다.
⑤ 광주시 철도교통의 확대와 북측(하남 방향) 연장이 필요하다. 2016년 경강선(동서축) 개통되며, 광주시 교통량의 4.1%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성남시 18.6%, 서울시 28.0%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며, 현재에도 혼잡도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만약 경강선이 개통되지 않았다면 광주시의 교통수요 증가(인구증가로 인한 요인)로 교통체증은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2040년 광주시 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광주시의 인구는 현재 40만명에서 2040년 52.5만명으로 증가한다. 광주의 도시성장에 따른 교통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철도교통의 확대가 필수이다. 위례-삼동선(서측), 수서광주선(서측), GTX-D(동서축), 경강선 연장(동측 확장)과 함께 하남까지 연장된 5호선 등 북측으로 철도교통 연장도 검토해야 한다.
도로는 도시라는 몸속의 혈관과 같다. 도로를 통해 사람과 물류가 흐르고, 도로를 따라 도시가 만들어지고, 운용되며 성장한다. 하지만 그 반대로 혈관과 같은 도로의 흐름이 막혀 정체된다면, 도시는 교통비용(사회적비용, 교통정체로 인한 시간비용 포함)을 지불해야 하고, 비효율성의 증가는 도시성장에 장애물이 된다.
도시의 성장(인구증가)가 키가 크고 몸무게가 증가하는 성장과 비슷하다면, 도로(교통)는 뼈대와 같다. 뼈대가 작고 부실하다면 건강한 성장은 어려울 것이다. 성장하는 광주는 이미 많은 교통비용을 지불하고 있고, 도로(교통)의 발전과 성장이 필요하다. 조선시대 봉화로에서 현재까지의 간선도로들의 모습은 광주시 뼈대의 성장과정이며 광주시 도로의 특성을 담고 있다. 오늘의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의 새로운 가치들을 담아 수도권 동부의 중심도시 광주를 만드는 틀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