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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l 10. 2022

약간 기대한 것과 달라도 괜찮았던

일본 도야마 여행 - 오와라 카제노본

도야마 역에 있는 관광안내소를 하도 들락날락 거렸더니, 거기서 일하는 직원이 스타벅스에 앉아있던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장소 추천을 받았는데, 도야마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하는 지역 축제였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지역' '축제' 라는 말에 한번 가볼만 하겠다 싶어 바로 열차를 타고 출발했다.




도야마에서 열차를 타고 조금 가서 도착한 엣추 야스오 역에는, 해 지기 시작한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노을인가보다, 했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노을이 더 예뻐졌다. 구글 지도를 보니 축제를 한다고 하는 곳까지는 거리가 좀 있었는데, 대중교통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데다가 한번 걸어갈 만한 거리인 것 같아서 걸어가기로 했었다.




역 주위는 한적하고 교통도 적은데다 사람도 별로 없었다. 점점 짙어지는 노을을 보고 사진을 찍으며 길을 걸었다. 걸어가는 길에 일렬로 가로등이 켜져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엣추 야스오 역 주위의 한적한 모습




점점 붉어지는 노을이 조용한 마을 위로 내렸다




축제 행사장으로 이어지는 가로등




걷다 보니 작은 개천이 나오고 그 개천을 건너는 다리가 있었다. 다리에는 축제의 상징인 듯한 춤이 그려진 조형물이 한가득이었다. 다리를 건널 때 쯤이 되니 밤이 다 되어서 하늘이 점점 어두워졌는데, 좀 있으면 어두워질 짙푸른 하늘과 가로등이 잘 어울렸다. 밤거리는 원래 네온사인과 간판으로 가득하지만, 가로등을 따라서 축제가 열린다는 행사장으로 가는 거리에서는 묘하게 간판을 보기가 힘들었다. 기껏해야 볼 수 있는 것은 안쪽의 불이 밝혀진 유리창들이었다.




다리를 건너고 나니 앞쪽에 있는 마을의 위쪽으로 가는 비탈길이 나왔다. 높지 않은 비탈길을 천천히 따라 올라서 돌아보니 하늘은 더 짙게 어두워져 있었다. 그 아래로 개천이 흐르고, 주위로 소박한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반짝이는 큰 도시도 보였는데, 아마 도야마 쪽 도시였던 것 같다. 완전히 밤이 찾아오기 직전의 풍경이 멋져서, 잠시 그 모습을 바라봤었다.




개천을 건너는 다리




축제의 상징물이 다리를 장식하고 있다




다리를 건너면 낮은 오르막길을 따라 마을 위쪽으로 올라간다




오르막길 끝에서 봤던 풍경




계속해서 길을 따라 가며 지도에 있는 행사장을 찾는다. 그런데 행사장이 있는 곳으로 가니, 큰 차가 하나 지나갈 정도의 골목길을 두고 양 옆에 건물이 줄지어 있는 곳이다. 내가 생각한 축제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러면서도 어딘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몰려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는 축제란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노점상은 음식을 팔고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정 반대의 것이었다. 가끔 아이스크림을 파는 의미로 밖에 둔 아이스크림 모형이나, 자판기, 간단한 간식을 팔고 있는 천막은 있었지만 사람들로 바글거리지도 않았고 시끄럽지도 않았다. 어디에선가 모여든 나 같은 관광객들이, 무언가를 기다리며 골목길을 배회할 뿐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그런 시끌벅적한 축제는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졌기에 아쉬웠지만,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행사를 보기 위해 기다리기로 했다.




포스터를 통해 행사가 어떤 것인지 예측해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어디에서 오는지 모를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며 길 양 옆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함께 곧 시작될 행사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이 길 한가운데에 나타났다. 젊은 사람들도 있었고, 어린아이들도 있었는데 행사를 보여주기 위해 줄 지어 있던 아이 한 명이 울음을 터뜨리자 다른 어른이 열심히 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남녀노소 모두 길 한가운데에 줄지어 선 사람들은,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조금씩 거리를 행진하기 시작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오와라 라는 것은 자연재해 없이 풍작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연중 정해진 시간에 하는 행사라 한다. 사람들은 같은 복장을 하고 머리에는 갓을 반으로 접어놓은 듯한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이게 얼굴을 제대로 가려 줘서 얼굴 표정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어색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신비함을 더해주었다.




춤은 화려한 것도 아니었고 단순한 율동에 가깝게 느껴졌다. 음악이 있었지만 거창하지 않았다. 소박한 춤과 음악. 사람들은 그것을 반복하며 거리를 걸었고, 주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 전부터 이 행사를 유지하며 춤을 춰 왔을까. 매 해 반복하며 어떻게 준비해 왔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오는 걸까.




눈 앞에서 반복되는 춤의 행렬과 귓가에서 울리는 단순한 음악이 머릿속에서 엉킬 때, 사진을 찍으며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했었다.




시간이 되면 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다




거창하지 않은 곡조의 음악에 맞추어 단순한 춤을 춘다




모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 얼굴이 신비함을 더해준다




오래 전부터 이어왔을 춤을 보기 위해, 멀리서 찾아왔을 사람들




구경을 다 마치고 돌아갔던지, 아니면 슬슬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돌아갔던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여하튼 이제 돌아가야겠다 싶어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 역으로 가려 했다. 비탈길을 올라오던 곳에 다시 왔는데, 완전히 밤이 된 마을의 가로등이 주황빛으로 빛났다. 도야마 쪽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은 더욱 선명해져 있었다.




비탈길을 내려가 다리 근처로 가 다시 보니, 앞쪽에 큰 주차장이 있었다. 관광버스들도 있고 크고 작은 차들이 있었는데, 축제 구경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주차장으로 운영되는 듯 했다. 보통은 차를 타고 주차장에 와서 걸어 오는 것 같았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역에서 출발해 걸어오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 같았다.




밤이 되자 가로등의 불빛이 더욱 선명해 보였다




깊은 밤이 된 마을의 모습. 왼쪽에 주차장이 보인다




그런데 이때 나는 구글 지도를 보다가 역으로 가는 다른 길을 발견했다. 사실 간 길을 그대로 돌아가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구글 지도에 나와 있는 다른 길로 가 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지도에 있는 길을 가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핸드폰을 보며 길을 찾았다. 주차장 옆쪽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그런데 길을 따라 가다 보니 가로등 하나 없는 논으로 길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정말 길에 가로등 하나 없어서, 앞을 보기 위해서는 핸드폰으로 손전등을 켜야 했다. 손전등을 켰다가는 벌레들에게 움직이는 등대가 되어줄 것 같아서, 손전등을 켜서 길을 살짝 보고 다시 손전등을 끄고 앞으로 가야 했다. 인기척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곳에서 야생동물이라도 만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다.




다행히 조금 더 걸어가니 가로등과 건물이 있는 일반적인 길이 나와서 그 길로 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로등 하나 없는 밤길을 걷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겠지만, 그땐 최대한 빨리 빛이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정신 없는 와중에 찍어뒀던, 가로등 없는 길에서 벗어나고 보았던 논 너머의 집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던 가로등




아주 우연히, 어쩌면 절대 갈 일이 없었을 축제를 보고 나서 나는 다시 도야마로 돌아왔다. 그런데 지금 와서 다시 사진을 보다 보니 알게 된 것이지만, 나는 이날 저녁 음식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다. 나는 여행 가서 음식을 먹을 때 어지간하면 사진을 찍어 두는데, 이날 저녁 때 음식을 사진 찍어두지 않았던 것이다.




도대체 나는 이날 저녁으로 뭘 먹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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