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현준 Jul 10. 2022

대표님 식사하러 가시죠

다같이 밥먹으러 갈 때 일어나는 일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아침에 일을 하러 가고, 저녁에 집에 돌아온다. 물론 저녁 아주 늦게 돌아올 때도 있지만, 그런 운 없는 일이 많지 않다면 보통은 점심을 회사에서 보낸다. 그래서 회사에서 점심을 사먹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아는 어느 곳도 그렇다.




회사에서 직급이란 말을 할 수 있는 권리이다. 물론 어느 회사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좋아하지만, 그 말은 현대사회에서 모두가 평등한 이상향이라는 것과 비슷한 망상에 가까운 바람이다. 직급이 낮은 사람은 직급이 높은 사람이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직급 높은 사람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만약 일반적인 점심시간인 12시 이후에 밥을 먹게 되면, 보통 언제쯤 밥을 먹는지 잘 지켜보자. 정해진 시간이 되면 밥을 먹으러 가는지, 아니면 정해진 일을 끝내놓고 불규칙하게 밥을 먹으러 가는지 보자. 만약 불규칙하게 밥을 먹으러 간다면 원래는 훨씬 밥을 늦게 먹는데 억지로 그 시간으로 정해놓은 경우일 확률이 높다. 일이 있으면 밥을 늦게 먹을 수 있는것 아닐까? 물론 그렇다. 하지만 명확하게 정해진 식사 시간이 없는 경우, 업무에 있어서 시간과 순서를 무시하고 노동력을 갈아넣어서 해결하는 문화가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시간 외 근무 같은 것이 일반적인 문화일 수 있음이다. 




여하튼 식사 시간이 되어 정리하고 일어나면, 전체 인원 다섯 명인 사무실에서 네 명이 대표의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따로따로 식사를 하는 일은 없다. 식사는 꼭 같이 해야 한다. 고전적인 조직 문화에 존재하는 가족의 일환이다. 옛날 저녁 시간이 되면 다 같이 모여서 밥을 먹던 것처럼, 점심에 밥을 다함께 먹는 것 아닐까. 




남의 돈으로 밥 먹으면서 어떤 메뉴를 고를 것인가에 대한 것은 모두의 흥미있는 고민이지만, 고민은 모두의 것이라 해도 결정은 한 사람의 것이다. 오늘은 뭘 먹으러 갈 것인가 물어보는 것은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선택에 심리적 지지력을 얻을 다른 사람의 의견을 확인하는 것에 가깝다. 음식점 선택권은 일종의 전형적인 고전적 가족 티비 시청 시간의 리모컨 권한과 똑같은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후자는 현대사회에서 이미 흩어진 유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함께 밥을 먹으러 갈 때 직급 낮은 사람들은 직급 높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수저를 깔아 주고 물을 따라 준다. 수저 아래 휴지를 놓는 것을 까먹지 말아야 한다. 반찬을 많이 먹는 사람들이라면 반찬이 다 떨어져 갈 때 반찬을 달라고 하거나 반찬 가져오는 일도 챙긴다. 물론 이젠 이런거 하지 말자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그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반찬을 가져오느냐 수저를 까느냐가 아니다. 이 사람에게 어떤 일을 시켰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를 관찰하는 것이다. 




일 하는 사람들끼리 밥을 먹다 보니 밥 먹으면서도 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당연해진다. 밥 먹을 때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밥 먹을 때 걸려오는 전화를 어떻게 하는지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조직의 문화는 조직의 개인에게 흡수되어 조직 구성원이 조직 문화대로 행동하도록 만든다. 밥 먹으면서 일 이야기를 하고, 밥 먹으면서 거래처 전화를 받고, 그 전화를 받느라 자리를 비우기도 한다. 조직 구성원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그런 행동을 하도록 만든 조직문화가 있고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왜 회사에서 밥을 다 함께 먹을까? 혼자서는 밥을 못 먹는 부끄럼쟁이들이라 그럴까? 다 같이 똑같은 음식점에 가서 다양한 메뉴를 먹기 위해서일까? 조직 관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어느 조직에나 존재하는 특수한 조직문화를 조직 구성원에게 흡수시키기에는 식사 시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자신의 뜻과 상관 없는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 




개인에게 다른 가치관을 주입하는 것은 이상이나 미래, 꿈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한다. 회사에서의 식사 시간은, 그 회사의 룰을 따라가도록 압박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인 셈이다. 




조직문화를 조직 구성원에게 주입하기에 최적의 시간은, 다 같이 밥을 먹는 점심시간이다. 2017 12, 서울 상봉 



작가의 이전글 왜 장마를 검색하면 셀카가 나올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