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현준 Jul 03. 2022

왜 장마를 검색하면 셀카가 나올까

인스타그램의 목적

몇년 전 일하면서 알게 된 프랑스 친구가 있었다. 그때 나는 영어 블로그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니 나에게 인스타그램을 하라고 추천해 줬었다. 여태까지 인스타그램의 이름만 들어 보고 본격적으로 하지는 않았던 나는, 사진을 꾸준히 찍고 그걸 기록하는데 좋을 거라는 생각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  




맨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이런저런 곳들을 가고 맛있는 것들을 먹을 때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살면서 가장 기분좋은 순간들만을 기록하곤 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서는 내가 직접 만든 음식 사진만 올리고 있다. 사실 인스타그램에는 더 예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기에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에 비하면 내 것은 초라하다. 하지만 내가 나중에 사진을 볼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보여줄 수도 있어서, 꾸준히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것 같다.




그런데 옛날에 어쩌다 인스타그램으로 코로나를 검색한 적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것은 대부분 여행이나 음식 등 사람들의 취미 등 즐길거리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인스타그램의 성향과 정반대의 것인, 정보전달 목적의 태그를 검색하면 무엇이 나올까 궁금했던 나는 코로나를 검색해 보고 꽤 놀랐다. 한 화면에 보이는 사진 중 대부분이 코로나와 전혀 상관없는 셀카 사진 혹은 광고였던 것이다.




그때 신기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던 나는, 시간이 꽤 오래 지나서 장마를 겪게 되었다. 물이 불어나서 잠기기 직전의 돌다리 위를 자전거 타고 건너는 사람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문득 인스타그램에 장마를 검색하면 뭐가 나올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아침에 출근을 하며 인스타그램에 장마를 검색해 보았다.




시간이 지나도 결과는 똑같았지만,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보였다. 인스타그램에서 장마 라는 태그로 사진을 검색하니 내 아이폰으로는 한번에 열 다섯 장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비 사진이 한 장 있었고, 열 장 정도는 셀카 사진이었다. 네 장 정도는 눈썹 사진이었는데, 눌러볼 것도 없이 광고임이 명백했다. 혹시나 해서 스크롤을 내리니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마를 검색해서 볼 수 있는 사진 중 장마와 연관 있는 것은 열 다섯 장 중 세 장이 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인터넷에서 특정 정보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최대한 그 요청에 일치하는 정보를 찾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다르다. 장마를 검색해도 장마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진들을 한가득 띄운다. 어찌 보면 일반적인 SNS 와 다른 모습일 수도 있고, 사람들을 피로하게 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있어서 이것은 의도하지 않은 오남용이 아니라 어쩌면 인스타그램이 의도한 설계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일지 모른다. 요컨데 인스타그램이 하고 싶은 것은, 정확한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최대한 많은 사진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장마를 검색하면 장마와 상관없는 사진을 한가득 볼 수 있다. 왜 인스타그램은 이런 현상을 유도할까? 2014, 08, 춘천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올리는 사진에 자유롭게 태그를 달 수 있다. 이때 태그는 전혀 상관없는 태그도 달 수 있다. 내가 미국의 유명한 절벽을 가서 사진을 올리면서 그 사진에 한국이라는 태그를 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을 검색해서 미국의 절벽 사진이 나오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어떤 태그를 선택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제한이 없어서 정확하지 않은 태그라고 수정 받거나 하는 일도 없다.




얼핏 보기에는 왜 미국의 절벽 사진을 올리면서 한국 태그를 올려도 되는지, 그런 것을 저지하지 않는지 혼란스러울 수 있다. 만약 정확한 정보를 찾고자 한다면 매우 번거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의 목적을 정확한 정보 공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최대한 많은 사진을 편하게 공유하기 위해서라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한국 태그를 달고 있는 미국의 절벽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동시에 여러 태그를 이용해 자신의 사진을 노출시킬 수 있고, 태그를 검색하는 사람에게는 수없이 많은 사진 중 하나로 지나갈 뿐이다. 글보다는 사진과 영상 위주의 인스타그램 환경 안에서, 사람들은 정확한 정보를 찾기보다는 심심해서 켠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듯이 중간에 자신이 흥미를 가질만한 것이 나타날 때까지 사진을 넘긴다.




인스타그램 안의 사진들은 접근성도 낮아서 자신의 사진을 공개하기로 결정만 한다면 태그를 검색하는  만으로 자유롭게 열람할  있다. 게다가 인스타그램의 사진은 깊은 정보를 담기 위한 것이 아니며 그런 사진들을 위한 공간도 아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서는 전혀 연관이 없는 태그가 사진에 달리고 연관 없는 사진이 태그로 검색되어도 문제가 없다. 인스타그램에서 태그는, 반드시 이것과 연관 있는 사진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에 가까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은 깊은 정보를 담은 사진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최대한 다양한 사진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2014 08, 부산





물론 태그와 사진이 깊은 연관관계를 가지지 않고, 다들 가볍게 사진을 보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본다 해도 몇몇 구조는 필요 이상의 피로감을 유발한다. 가장 큰 문제는 사진들이 더이상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진이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지정된 태그와 무관하게 파도처럼 밀려드는 사진들은, 이제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자극한다. 얼굴, 체형, 집, 여행장소, 등등. 누군가가 기분 좋은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남긴 성과의 사진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닿을 수 없는 것으로 각인된다. 사진을 보면 볼 수록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만 뼈저리게 느낄 뿐이다. 나는 집에서 혼자 궁상맞게 사는데, 티비에서는 나 혼자서도 잘 사는 부유한 연예인들의 예능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장마를 검색해서 셀카가 나오는 인스타그램의 구조는, 사람들에게 별 생각 없이 사진을 보여주고 또한 사진을 올릴 수 있게 하려는 구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더이상 '별 생각 없는' 행위가 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더이상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보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의 만족감이란, 타인과의 비교 없이는 얻을 수 없으므로.




장마를 검색하면 셀카가 나오는 인스타그램이, 문득 채널이 수백개나 있어도 볼 것이 하나도 없는 믿을 수도 없는 텔레비전과 같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점점 인스타그램의 사진에서 피로함을 느끼고 있다. 2014 10, 춘천


작가의 이전글 도야마와 아이스커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