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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l 03. 2022

도야마와 아이스커피

더운 여름날 도야마 여행의 기억

도야마에 도착한 두번째 날 아침, 체크인이 늦는 바람에 2층 침대에서 자게 되었지만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공용공간에 사람이 없어 조용했다. 전날 편의점에서 다음날 아침에 먹을 것들을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 뒀었다. 떡과 빵, 커피 같은 간단한 것들을 꺼내 공용공간 구경을 하면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어디서 뭘 할까 검색을 하다가 밖 창문을 내다보니, 전날의 걱정이 무색하게 맑은 날씨가 있었다.




커피, 빵, 떡으로 먹은 간단한 아침




공용공간에서 보이던 밖의 모습




밖에서 찍은 게스트하우스




첫날은 트램 타는 법을 잘 몰라서 정거장을 놓치는 등 당황했지만, 몇 번 트램을 타고 나니 적응하여 마음 편하게 타고 다녔다. 트램이 지나다니지 않을 때 철길 사진을 찍기도 하며 트램을 기다렸다. 트램을 타니 곧 도야마 역으로 갈 수 있었다. 도야마 역에서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은 없었지만, 역에는 내가 꼭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도야마 역 관광 안내소였다. 




도야마 역 가는 길에 찍은, 트램이 다니는 철길




이런저런 궁금한 것이 있었기에 도야마 역에 있는 관광 안내소에서 이것저것을 물어보려 했다. 도야마 역에 들어가면 있는 큰 공간의 왼쪽 끝에 도야마 역 관광 안내소가 있었다. 수월하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기에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과 명소에 대한 것들을 물어봤다. 다음날의 일정인 타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의 표를 미리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야마 시내에서 갈 만한 곳은 어디가 있는지 같은 것들. 표를 사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과정에서, 여러번 왔다갔다 하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물어봤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도야마 시내가 잘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을 찾는다 했더니, 추천해준 곳이 있었다. 쿠레하산 공원 이라는 곳이다. 시내를 오가는 작은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다고 해서, 표를 사고 잠시 기다리니 아주 작은 봉고버스가 와서 사람들을 태웠다. 누구는 중간에 내리고, 마지막까지 타고 있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버스에 내리고 나니 앞쪽에 볏짚 지붕을 한 건물이 있고 그 뒤쪽으로 공원 가는 길이 나 있었다. 날씨는 매우 더웠지만, 시간표를 잘 보고 나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찍은 사진만 봐도 그 때의 더위가 생각난다




사실 주차장에서 시작해 공원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근데 시간은 한 여름이었고, 볕은 내리쬐고 있었다. 햇볕을 가리는데 아주 좋은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그래도 뜨거운 공기는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간에 다시 돌아가는 것은 올라가는 것이 힘든 것 이상으로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열심히 길을 따라서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조금만 더 올라가니, 주차장이 있는 공원이 나왔다. 공원에는 새와 함께 있는 사람의 동상이 하나 있고, 그 앞쪽으로 도야마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그 너머로는 타테야마 산맥이 보인다. 멀리서 보기에도 높아 보이는 산맥이, 도야마 도시 뒤로 커튼처럼 펼쳐져 있다. 봄에 오면 산에는 눈이 녹지 않아 하얗게 보이고, 도시에는 벚꽃이 핀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여름의 도야마를 보며 그 모습을 상상해 보니, 나중에 꼭 보고 싶어졌다.




작은 쿠레하산 공원에 앞쪽을 바라보고 있는 동상이 있다




도야마 시내 너머로 자리잡은 타테야마 산맥과 그 위의 구름




전망은 좋지만 펄펄 끓는 날씨에 그늘로 기어들어갔다




전망대에서 구경도 했고 이제 내려가려고 하니, 뭔가 시원하고 달달한 것이 먹고 싶어졌다. 어딘가 카페 같은 것이 있다면 들어가서 커피라도 한잔 마시면 좋을 것 같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앞쪽에 작고 예쁜 건물이 하나 있다. 카페인지 음식점인지, 진짜 영업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었지만, 정문 쪽에 열기를 식히도록 물을 틀어놓은 것을 보니 영업을 하는 것 같았다. 창문이 열린 2층이 있는 것이 보여, 그곳에서 커피를 마신다면 좋을 듯 해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입구로 들어가니 에어컨도 틀지 않은 실내에 더운 아저씨 한 분이 있었다. 2층에 올라가 창가 자리에 가서 메뉴판을 보지만 영어가 적혀 있지 않다. 아이스 커피 라고 말하면 크게 문제가 없겠다 싶어, 알고 있는 일본어를 총동원하여 아이스 커피 한 잔을 달라고 말한다. 잠시 후 얼음이 한가득 들어간 신원한 아이스 커피 한 잔이 나온다. 




사장인 듯한 아저씨는 꽤 수다스러운 성격이었다. 간단한 영어로 이것저것을 말하는데, 아들이 수의사 공부를 하면서 서울에 있는 수의과 대학과 교류를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사장님도 몇 번 서울을 오갔다고 했다. 대학 이야기를 하는데 꽤 정확해서 조금 놀랐다. 친절한 환대도 좋지만 밖에서 땀을 흘리며 말라비틀어져가던 나는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다행히, 곧 사장님은 1층의 입구로 다시 내려가셨다. 사장님이 내려가고 나서 가게 안에서 한국 음악이 흘러나왔다. 




비록 가게 안에 에어컨은 여전히 안 틀어져 있었지만, 창문이 열린 서늘한 그늘 아래에서 돌아가는 선풍기들이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조금씩 생기가 돌아왔다. 창 너머로는 앞쪽의 쿠레하산 공원과 함께 그 너머의 풍경이 그대로 잘 보였다.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 발코니도 있었는데, 천장에 발라둔 페인트가 신발 밑창에 달라붙으며 쩍쩍 소리가 났다. 끓는 야외에서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도야마 만 쪽 의 풍경도 볼 수 있었다.




쿠레하산 공원 바로 뒤쪽에 있던 2층짜리 가게




레트로 느낌이 물씬 풍기는 2층 전경




말라 비틀어지기 직전, 생기를 충전할 수 있었던 아이스 커피




다테야마 산맥 반대편, 도야마 만 쪽의 바다와 지형이 보인다




가게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있는 카운터




덩굴이 얽힌 가게 입구




사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버스가 오는 시간에 맞춰 다시 언덕길을 걸어 내려온다. 다시 작은 버스를 타고 돌아와 이번엔 시내를 이것저것 구경했다. 내가 느꼈던 도야마는 일본의 큰 대도시 느낌은 아니었다. 신기한 것들이 있었는데, 어디 가나 도심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돈키호테를 구경도 하지 못했다. 데일리 야마자키라는,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편의점 브랜드를 볼 수 있었다. 




물론 이것저것 구경하기에는 충분해서, 에어컨 들어오는 빌딩들을 오가며 아무 생각 없이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다가 약간 늦은 점심으로 블랙 라멘이라는 것을 먹었다. 도야마의 상징적인 라멘이라는데, 간장을 이용해 만든 국물이 검은 색이라서 블랙 라멘이라고 부른다나. 찾아가기 전 인터넷으로 검색한 블랙 라멘은 물이나 맥주가 없으면 짜서 먹을 수 없다 라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내 기준에는 전혀 짜지 않았었다. 어쩌면 내가 국물을 다 먹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저 멀리 다테야마 산맥이 보이는 도야마의 시내




걱정했던 것만큼 짜지는 않았던 도야마의 블랙 라멘




라멘을 다 먹고 나서 또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가 도야마 역 근처의 쇼핑몰 스타벅스를 갔었다. 일본에는 한국 스타벅스에 없는 메뉴가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아이스크림을 녹인 것 같은 부드러운 질감의 커피 음료였다. 커피 앤 크림 라떼 라는 것인데, 딱 내 취향일 것 같아서 한잔 사서 마셔 보았다. 한국에는 출시되지 않은 메뉴이고 어찌 보면 더블 에스프레소 크림 라떼와 비슷하지만, 크림을 조금 더 단단하게 올려준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누가 옆에 와서 말을 걸었다. 어떤 여자였는데, 얼굴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옷을 보고 기억했던 것 같다. 알고 보니, 도야마 역 관광안내소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어쩌다 보니 짧게 이야기를 나눴는데, 수많은 사람이 관광안내소를 오가면서 질문을 하는데 나를 어떻게 기억하냐고 물어보았었다. 그러자 직원의 대답이 재미있었는데, 너처럼 자주 찾아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은 없어서 기억에 남았다는 것이었다.




직원과 수월하게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어서, 이런저런 인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다. 직원은 일본인이 아니라 필리핀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일본 사람과 결혼해서 일본에 정착하게 된 경우였다. 외국인으로 일본에서 사는건 어떤지 물어보니 주위 사람들이 다 잘 해줘서 크게 불편한 것 없이 잘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일 도야마를 떠나는데 가 볼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하고 추천해 달라고 했었다. 그러자 그 직원은 도야마에서 열차를 타고 조금만 가면 있는 곳에서 열리는 작은 축제를 추천해 줬다. 축제라고 하니,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양 쪽에 늘어선 좌판에서 음식을 한가득 팔고 있는 그런 장면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건 내 상상이고, 사실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아는 것이 전혀 없었기에, 그저 그곳에서 축제가 열린다 라는 이야기만 들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좌우지간 좋은 구경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년 중 짧은 기간에만 하는 축제라는 말에 흔치 않은 기회도 들어 결국 짧게 고민한 뒤 바로 가 보기로 했다. 다행히 늦은 점심을 먹고 조금 쉬고 있던 시간이라, 저녁 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좋은 장소를 추천해 줘서 고맙다고 말한 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승강장으로 향했다.




생각해 보면 재미있다. 만약 그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혹은 내가 관광 안내소를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날 저녁의 축제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가지도 않았을 테니까.




일본 스타벅스의  커피 앤 크림 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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