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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n 26. 2022

여행 가서 하루에 한 끼 먹기

일본 도야마의 밤거리

오전 비행기로 도야마에 도착하고 나서, 우여곡절 끝에 게스트하우스 체크인까지 마치고 나니 저녁이 넘은 시간이었다. 아침에 밥을 챙겨 먹고 공항으로 출발한 이후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한 상황이었다. 배가 엄청나게 고팠지만,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어떻게든 밤거리를 구경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이야 구경 나가서 괜찮은 곳에서 먹으면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짐 정리를 대충 해 두고 내 침대에 자리 표시를 확실히 한 다음, 밖으로 구경을 나갔다. 일전에 트램을 탔을 때는 사람도 많고 내릴 때 돈을 내는 것도 정확히 몰랐기에, 이번엔 깔끔하게 타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트램에 올랐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출발해 트램을 타고 도야마 역 앞까지 가니 시간이 늦어서 완전한 밤이 되어 있었다.




도야마 밤거리를 구경하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나서던 때




트램 정류장에 도착하니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사실 여행 가면 어떻게든 간에 시간을 알차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공유하는 마음가짐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때 더 간절히 밖을 구경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마 날이 매우 더웠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한여름에 일본을 갔으니 날이 매우 더웠고, 낮에 구경하는 것은 쉽지 않으니 밤에 충분히 도시 구경을 해 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좀 더 서늘한 날씨에서의 밤거리 구경은 내 성향에 딱 맞았다. 




밤의 트램은 사람도 별로 없어 쾌적했다




도야마 역 근처의 시내




초저녁을 조금 넘긴 시간, 트램 안은 사람으로 붐비지 않아 훨씬 쾌적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묘한 기분이라 사진도 찍고 밖도 구경하고 하다 보니 곧 도야마 역 근처에 도착했다. 몇 군데 가보고 싶다고 생각해 알아 둔 곳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생각해 두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좋아하는 대로, 근처를 편하게 돌아보며 도야마의 밤거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음식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음식점 구경이 가장 재미있다. 괜찮은 곳에서 저녁을 먹어 볼까 했지만, 일본어를 잘 못하니 겁먹은 것도 있고, 조금만 기다리면 더 괜찮은 가게가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저녁은 숙소 근처에서 먹는게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구경만 열심히 한 것 같다. 밖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메뉴판을 걸고 홍보 입간판을 걸어 둔 가게를 보는 것들이 좋다. 



거리의 가로등, 네온사인, 간판이 어우러진 음식점과 가게들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조금 걷다 보니 도야마 성이 나온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도야마 역으로 갈 때 보았던 작은 성은, 내 기억에 있는 다른 일본의 성들에 비하면 크기가 꽤 작아서 앙증맞은 정도이다. 그래도 성 주위에 물웅덩이도 있고 그 너머로는 높은 빌딩들까지 있다. 한밤의 서늘한 공기와 함께 반짝이는 도시의 빛이 꽤 잘 어울린다. 




공원에는 크게 관심은 없지만, 도야마에 유명한 공원이 있고 그 옆에 예쁜 스타벅스가 있다는 말에 칸수이 공원으로 걸어갔었다. 칸수이 공원은 물을 얕게 채운 호수가 있는 공원인데, 내가 생각하던 전통적인 형태의 일본 공원이 아닌 현대적인 형태의 일본 공원이었다. 공원 변두리에는 언덕 위에 스타벅스가 있는데 일본에서 제일 예쁘다더라! 라는 말을 몇 번 들었었다. 공원과 조화가 잘 될 수는 있지만 그정도로 예쁜가 하는 의문이 약간 들었다. 




칸수이 공원에 있는 두 개의 탑 사이에는 다리가 있고 그곳에서 주위 전망을 둘러볼 수 있는데, 다리 사이에는 종이컵 실전화기 같은 것을 설치해 두어서 양 옆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할 수 있다. 올라가서 주위를 한바퀴 둘러보고 내려와 스타벅스에서 뭔가 하나 마실까 하다가 포기하고 돌아갔었다. 




그런데 주위에서 한국어가 들려 돌아보니, 낮에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던 패키지 여행 관광객들이 구경을 나온 모양이었다. 숙소에서 공원으로 와서 돌아가는 길을 찾다가 택시를 부르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아마 그 비행기에서 혼자 여행을 왔던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얕은 물웅덩이와 그 주위로 펼쳐진 칸수이 공원




공원 안 언덕 위에 스타벅스가 있다




칸수이 공원 구경까지 마치고 나니 슬슬 돌아가야 할 것 같아서, 트램을 타기 위해 역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월요일 저녁이라 그런 것인지 도시가 전반적으로 조용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둑한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도시 불빛을 구경하며 트램을 다시 타고 숙소로 돌아오니,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이날 밤 10시가 될 때까지 제대로 뭘 먹은 기억이 없었다.




사실 맨 처음에 숙소에 도착했을 때 피자를 만드는 일본인이 피자 디너에 참가하지 않겠냐는 말을 했었다. 나가서 구경을 해야 했던 나는 몇 가지 피자에 대한 대화를 나눈 뒤 밖으로 나왔는데, 나중에 돌아와서 게스트하우스 근처에서 밥을 먹을까 했더니 마땅한 음식점이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편의점뿐이었다. 




결국 편의점에서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간단한 과일맛 술과 함께 옥수수 과자를 사다가 첫날의 마지막 끼니로 마무리했다. 술과 과자를 먹으면서 게스트하우스의 천천히 둘러봤다. 낮은 주택을 게스트하우스로 쓰고 있었는데, 옛날 느낌이 나는 공간들이 많아 마음에 들었다. 다른 일본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여행 일정을 말해 줬더니 완전 일본 사람처럼 여행을 다닌다면서 신기해 하기도 했다.




게스트하우스 안, 작은 정원에 높인 슬리퍼




복도 끝에서 피자를 만들던 사람들




일본 여행 첫날의 마지막 끼니, 술과 과자




따뜻한 불빛의 옛날식 전구




이런저런 소품이 있는 공용공간은, 대중문화의 한 장면 같았다.




강냉이 크기의 옥수수 알로 되어 있는 과자는 생각보다 맛이 괜찮아서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었다. 비록 풍족하게 먹은 저녁식사는 아니었지만, 깊어가는 도야마의 밤을 마무리하기에 적당한 간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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