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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n 26. 2022

야근, 회식, 가족

한국 회사의 기둥들

나는 욕심이 있는 분야가 하나 있다. 잘 꾸민 주방이다. 볕이 잘 드는 공간에 내가 원하는 주방 기구를 갖춰 두고 싶다. 조리 공간도 넓게 가지고 같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충분히 가지고 싶다. 그런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같이 요리를 하거나 베이킹을 하고,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욕심이란 결국 다 돈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는 욕심이 있고, 욕심이 있어서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내가 사람들을 초대하여 같이 음식을 하고 빵을 구우며 돈을 벌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비정한 법이고 녹록치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이 필요한 것 혹은 원하는 것을 살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은 버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하지 않을 일을 하면서 말이다. 결국 현대사회의 인간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만 한다.




회사란, 이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물론 통상적인 의미의 회사를 다니는데 돈 버는 일이 아주 즐거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두 가지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전생에 나라를 구해서 억세게 복 받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일 하는 과정이 즐겁다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뇌인 나머지 자신을 완전히 설득하는데 성공한 사람이다. 나는 둘 중에 어느 쪽도 아니기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열심히 한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다닌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회사란 결국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해야만 하는 일을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다. 그 말인 즉슨 그 조직에 있는 사람들이 호시탐탐 어떻게든 그 일을 하지 않을 궁리만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어떻게 하면 자발적으로 생산성 있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결국 회사가 어떻게 사람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갈 것인가에 대한 것이고, 조직문화의 핵심이다. 사람은 원숭이와는 달라서, 저녁에 도토리를 한개 더 주겠다는 방식으로 설득을 할 수는 없으니까. 비록 본질이 같다 해도. 




다양한 문화는 각각 다른 조직을 가지고 있고, 조직은 구성원을 조직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각각 다른 조직문화를 발전시킨다. 그리고 한국에서 흔히 있는 곳의 조직문화란 약간 특이하다. 물론 티비 틀면 나오는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그런 회사들의 이야기는 다를 수 있어도, 누구도 알고 싶지 않아할 대부분의 회사는 어떨까. 고도의 경제성장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조직문화란 어떤 것일까? 한국 회사들을 떠받치고 있는 그 조직문화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세 가지 기둥이라고 생각한다. 야근, 회식, 가족이 그것이다. 




야근, 회식, 가족. 이 세 가지는 한국 조직문화를 대표하는 기둥들이다. 2018, 04, 춘천





사람은 아침이 되면 일어나고 밤이 되면 집에 간다. 하지만 일이 끝나고 집에 갈 시간이 되도 집에 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개인차가 있을 수는 있어도 우리는 보통 이것을 야근이라고 부른다. 근무 시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지 않는 것이다. 




야근은 조직원들을 다 같이 고생시키는 역할을 한다. 군대로 치자면 다 같이 유격훈련을 가거나, 친구들끼리 개고생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다 같이 힘든 일을 겪다 보면 다른 사람의 고생을 무시할 수 없게 되고 같은 고통을 겪는다는 것에서 감정적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흔히 지옥에서 굴러도 괜찮은 사람들만 있다면 그것이 천국이다 라고 이야기 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지금 있는 곳이 지옥이라면 옆에 있는 사람이 천사가 아니어도 약간 천사같이 보여진다. 집에 가고 싶어도 못 가고, 일이 많아서 남고, 가도 되는지 가면 안되는지 눈치보는 상황을 다 같이 겪다 보면 같은 개고생을 하고 있다는 동질감이 생기는 것이다. 




야근을 통해 조직원들이 동질감을 느낀다면, 회식은 조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성향적 차이를 교정한다. 교정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설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따르던가 말던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회식 테이블에서 술병 마크를 가려 술을 따르고, 윗사람보다 술을 덜 먹으면 눈치를 주고, 결정권자들이 듣기에 좋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조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차이들을 대패질로 평평하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 


조직문화를 만들고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개개인의 성향은 일괄적으로 수정되어야만 하는 부분이고 조직문화는 모두가 따라야만 하는 것들이다. 흔히 말하는 아랫사람들에게 회식이 괴롭고 윗사람들에게 회식이 즐거운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따지자면 윗사람은 훈시를 하고 아랫사람은 예스맨이 되는 자리인데 누가 즐겁고 누가 싫을지는 뻔한 것 아닌가?




야근을 통해 동질감을 형성하고 회식을 통해 조직문화를 주입했다면, 가족문화는 조직원들의 이탈을 방지한다. 피가 이어진 가족보다 더 오래 보는 우리들이 가족보다 더 친밀한 사이라며 가족문화를 강조하는 환경은, 일견 보기에는 조직원들의 유대관계를 강조하는 표현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조직 안에서 가족관을 형성하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가족이라는 것은 피로 엮인 유대관계로, 떨쳐내고 싶다고 해서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성원이 좋아도 가족, 싫어도 가족이다. 가족 안에 머무르고 싶어도 가족, 가족에서 나가고 싶어도 가족이다. 조직은 어떨까? 조직은 조직 구성원과 조직 간에 상호 합의적인 계약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조직은 구성원이 그 조직에 머물러야만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만들어 줘야 하는 상황에 있다. 그 이유가 더이상 만족스럽지 않을 때 조직원은 떠날 것이다. 


하지만 그 만족을 줄 수 없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주지 않을 경우, 조직은 구성원을 붙잡아 둘 마땅한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 이유로 등장하는 것이 가족이다. 조직이 싫어도, 좋아도, 가족으로 생각하고 참고 함께하자는 것이다.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가족같은 문화를 강조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인공적인 가치가 없다면 조직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각각 다양한 성향과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모인다. 돈을 벌 수 없다면 굳이 그 일을 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특정 방향으로 인도하는 한국식 스타일이란, 야근과 회식과 가족인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성향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 차이점은 한국식 전통인 야근, 회식, 가족을 통해 제련된다. 2022, 02, 서울 성북구





물론 조직과 조직 관리자 입장에서, 일개 구성원의 입장을 봐줘야 할 필요는 없다. 조직은 기계와 같이 돌아간다. 톱니바퀴가 맞지 않으면 일단 한번 넣어보고 키워보거나 줄여본다. 그래도 맞지 않으면 톱니바퀴를 교체하면 그만이다. 기계의 일원으로 톱니바퀴가 돌아갈 때 그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뿐이다. 




하지만 관리자가 구성원의 입장을 봐 줘야 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구성원 또한 조직의 입장을 봐 줄 필요가 없다. 톱니바퀴는 약속한 시간 동안 충실히 기계 안에서 돌아갈 뿐이며, 상호간에 행복한 장밋빛 미래를 약속할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은 더이상 충실한 조직생활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요즈음의 결론 아니던가. 




결국 기계에는, 톱니바퀴들을 한데 묶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 최대한 구성원을 쥐어짜야만 하는 조직과, 마지막의 마지막 쥐어짜임을 예견하는 사람들을 같은 곳에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야근을 시키고 하며, 회식을 열고 불려가며, 가족같은 으쌰으쌰 추임새를 넣는다. 




구성원이 원하지 않아도 상관 없는 사람들과,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의 조직 문화란 그런 것이다. 




의도된 방향과 방향을 거부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조직문화가 생겨난다. 2022, 04, 영등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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