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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l 17. 2022

모래알을 모으면 모래성이 되나요

모아봤자 티끌인 티끌을 모으는 삶

꽤 오래 전부터 써 온 노트북이 있다. 자석 탈착이 되는 키보드가 노트북에 달려 있는 제품인데, 키보드를 덮으면 커버가 되고 키보드를 떼면 태블릿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그 노트북이 나올 때는 아직 그런 제품에 대한 개념이 흔하지 않던 시기라 그게 아주 괜찮아 보였고, 사고 나서 꽤 오랫동안 잘 썼다. 교환학생도 갔다 오고, 졸업도 했고, 일 하면서도 종종 쓰며, 개인 작업을 할 때 유용하게 썼다. 




그런데 기계는 시간이 지나면 망가지는 것이기에, 그 오랜 시간동안 딱히 잔고장이랄 것 없이 잘 쓰던 노트북이 이제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다. 내장 전지가 소진되어 껐다 킬 때마다 시간이 초기화되고, 어떤 구조인진 알 수 없지만 커버가 더이상 노트북 본체에 붙지 않는다. 충전 케이블이 연결된 상황에 따라서 충전이 되다 말다 하기 때문에, 바로 써야 하는 상황에서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다면 매우 불편하다. 




8년 가까이 썼으니 이정도면 충분히 오래 썼으니 새 것을 사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금액을 알아보고, 매장에 가서 제품 컨셉을 보고 하다 보니, 문득 다른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굳이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노트북이 쓰다가 바로 꺼질 수도 있고 작업물을 잃어버릴 수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틈틈이 백업을 해 둔다면 지금 당장 쓰는데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노트북을 안 사고 더 버티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노트북을 더 오래 쓴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돈을 쓰지 않는다 였던 것 같다. 노트북을 사는데 돈을 쓰는 것 보다는, 그 돈을 이용해 뭔가 다른 것을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당장에 내가 사고 싶은 노트북을 사는 것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다른 차선책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다른 자산에 투자를 한다거나 해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음에도, 나는 돈을 아끼려 했다. 나는 노트북을 사고 싶다고 몇 년 전부터 생각했던 내 욕망을 그렇게 덮어 두었다.




그리고 문득 돌아보니 그렇게 덮어둔 욕망이 많았다. 내 욕망은 말도 안되게 큰 것들은 아니었기에, 원하는 것들을 당장 이루기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 것들이었다. 새로 나온 노트북과 핸드폰, 이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오븐과 주방기구, 사보고 싶었던 고기와 요리 재료들. 하지만 나는 이런 욕망들을 고민하다가 그냥 덮어 두곤 했다. 표면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내가 그런 것들을 산다고 해서 욕망이 완전히 이뤄진다는 보장이 없으니 어차피 밑빠진 독에 물 붓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사실 마음 속으로는 그런데에 쓸 돈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넓게 본다면 어차피 의미 없는 욕망과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돈을 아낀다고 해서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참아둔 욕망과 포기한 행복을 대가로 얻은 돈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게 그렇게 큰 돈도 아닌데, 그렇게 모은 돈으로 내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까? 내 욕망을 억누르고 원하는 행복을 포기하며 얻은 돈으로 나는 내가 꿈꾸던 혹은 이정도는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미래를 얻을 수 있을까?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고, 나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는 나아지고 개선된 미래가 있다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뇌이고 위로하며 강박적으로 중얼거리지만, 보이지 않아도 존재함을 알 수 있는 냉혹한 현실은 아무리 부정해도 다가온다. 티끌은 결국 모아봤자 티끌이라는 것을. 모래알을 모은다고 해서 모래성을 쌓을 수는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모래성은 커녕 모래더미도 모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해도 모래알을 모으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다. 인생이란 결국 그런 것 아닐까. 최근 가동을 시작한 우주 망원경 안에, 130억 년 전의 빛이 담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30 억 년, 억겁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길고 긴 시간. 그 시간을 넘어 온 빛이 망원경에 담기는 사이, 나는 모래알을 모아서 모래성을 쌓겠다면서 부질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 회사 사람과 상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개고생을 하고 이것밖에 못 받았다는 것에 분통을 터뜨리며 내 생각을 묻는 회사 사람에게, 나는 잠시 생각 후에 말했다. 어차피 돈이 얼마가 있어도 욕망을 충분히 채울 수는 없지 않겠냐고. 상여가 얼마가 나오던 간에 별로 돈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지난번 했던 그 대화가, 요새 갑자기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아무리 모아봤자 모래성을 지을 순 없다는 것을 알아도, 결국엔 모래알을 모아야만 한다. 2018 01, 서울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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