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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l 17. 2022

일본은 화산섬이다 - 1

북알프스 여행 - 도야마에서 미다가하라까지

짧은 이틀간의 도야마 일정을 마치고,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한다. 일본에 갈 때마다 챙기는 김을 몇 장 자리에 올려두고 숙소를 나오니, 맑은 날씨와 불어오는 바람에 후링이 흔들린다. 내가 유리 풍경으로 알고 있던 그것은, 속이 빈 유리 구조물 안 바람에 흔들리는 막대기가 달려 있다. 바람이 불면 소리가 나는데, 바람을 더 잘 느끼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나는 바람은 잘 모르겠지만 청량한 생김새와 소리를 좋아했다.




이날의 일정인 타테야마 쿠로베 알펜루트를 위해서는 일단 도야마 역으로 가야 한다. 가방을 챙겨 나오니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만족스러운 날씨가 보인다.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숙소를 떠나기 전 사진을 찍었다.




숙소에 걸려 있던 후링




짧은 도야마에서의 일정을 마치며




타테야마 쿠로베 알펜루트는 일본의 북알프스를 관통하는 주 관광루트이자 이번 내 여행의 주 목적이었다. 이것저것 알아보며 최대한 저렴하게 표를 구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결국 다 포기하고 인터넷으로 표를 샀었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간단히 먹을 거리들을 사고, 캐리어 배송 서비스를 신청했다.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이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짐을 도착지로 미리 옮겨 주는 것인데, 큰 가방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으니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본격적인 여행의 도입부가 되는 열차




저 멀리 보이는 산맥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인터넷으로 미리 검색을 하니 조금만 늦게 열차를 타도 사람이 한가득이라 불편할 수 있다는 말에, 거의 가장 빠른 열차를 탔던 것 같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여유있게 밖을 구경하며 한가로이 열차 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도야마 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천천히 다테야마 역으로 가는데, 펼쳐진 논밭과 한산한 교외를 배경으로 높은 산악지대를 향해 간다. 




다테야마 역에 가까워져 갈수록 거대한 산맥의 위용이 더욱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다테야마는 최고 높이가 3000m 정도 되는 엄청 높은 산인데, 얼마나 높은지는 감이 잘 오지 않아도 저 멀리 산맥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산맥에 가까워 가면 논들이 사라지고 계곡과 숲이 나타난다. 열차는 그 사이의 철길을 달려 마지막 역에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열차 안에서 보이는 산맥




교외를 달리는 열차 밖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풍경




종점에 도착해 갈 무렵 보이기 시작하는 계곡과 숲




원래 타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려면 바삐 움직여야 하지만, 나는 시간을 좀 넉넉하게 쓰는 대신 이것저것 느긋히 구경하면서 돌아다니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나는 급하게 어디를 가야 한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니,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좀 더 보면서 시간을 써도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타테야마 역에서 내려 케이블카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비조다이라로 올라가기 전, 타테야마 역 근처를 좀 돌아봤었다. 인터넷으로 구매한 표를 이곳에서 실물 표로 바꾸고 나서 근처를 산책했다. 산맥 사이의 계곡에 있는 타테야마 역 바로 앞쪽에는 꽤 긴 다리가 있었다. 길게 뻗은 다리와 주위의 숲도 멋있고,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주위의 계곡도 절경이었다. 숲 한복판에 있어서 그런 것인지 구름이 거의 없는 날씨인데도 그다지 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이 없을 때 찍은, 타테야마 역 앞의 모습




차가 없을 때, 쭉 뻗어 있는 다리의 모습을 찍었다




다리 주위로 물이 흐르는 계곡과 숲을 볼 수 있다




근처 구경을 하고 나서, 비조다이라로 올라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기다렸다. 기다리며 역 안에 있는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는데 동전지갑이 보였다. 지난번 일본여행에서 샀던 동전지갑을 잃어버려서 동전지갑을 하나 샀었다. 동전은 안 잃어버리고 동전지갑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둘째 치고서라도, 낙엽 그림에 버튼식으로 열리는 고전적인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었는데 잃어버려서 너무 아쉬웠다. 




새로 산 동전 지갑은 새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타테야마 산에서 운이 좋으면 볼 수 있다는 새를 캐릭터로 만들어 그렸다고 한다. 나름 새로 산 동전 지갑도 마음에 들어서, 똑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말아야겠다 했다. 마스코트인 듯한 귀여운 만화 캐릭터들도 볼 수 있었는데, 내가 생각한 일본과 딱 맞는구나 싶었다. 




내가 익히 알던 일본스러웠던, 캐릭터들




이번엔 안 잃어버리기를 기원하며 샀던 동전 지갑




비탈길에 올라가 있는 케이블카를 타고 비조다이라로 올라간다




시간이 되어 케이블카에 올라 비조다이라로 올라간다. 짧은 시간 천천히 비탈을 올라간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다음 목적지로 갈 수 있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정류장의 위층으로 올라가면 열린 옥상으로 갈 수 있는데, 옥상에 가면 복잡하게 얽힌 산맥과 저 아래의 도심지를 볼 수 있다. 그걸 보는 나는 풍경이 약간 가려지는 듯해 아쉽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다음 목적지들은 더 높은 곳에 있기에 그곳에 가면 더 멋진 풍경을 원없이 볼 수 있었다. 




케이블카 정거장 밖으로 나가면 다음 목적지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데, 안쪽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글자를 읽어보기도 전에 곰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곰이 있다고? 내가 기억하는 곰의 모습은 영화에서나 보던, 손짓 한번으로 사람의 신체를 분리시키던 그것이다. 나는 숲 깊숙히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설마 곰을 만날 일이 있겠나 싶지만, 곰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묘하게 긴장되었다. 




비조다이라 정거장 옥상에서 볼 수 있는 전경




저 멀리 보이는 산맥과 도시들




나를 긴장하게 했던 곰 주의 안내문




잠시 기다리다 보면 비조다이라에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는 중간중간 몇 개의 정거장을 거치는데, 내리고 싶은 곳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보통 버스를 타고 끝까지 안 내리고 가지만, 나는 중간에 내려서 하이킹 비스무레한 것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중간 미다가하라 라는 곳에 내려 보기로 했다. 




버스를 타면 앞쪽에 있는 모니터에서 타테야마 구로베 알펜 루트의 명소들을 소개하는 영상이 나온다. 버스에 타면 왼쪽 편에서 폭포들을 볼 수 있다기에, 재빨리 왼쪽 자리를 선점했지만 사람이 많지 않아 남은 자리가 많았다.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폭포를 지나갈 때는 버스가 속도를 낮췄다. 그런데 사실 폭포는 오른쪽이나 왼쪽 자리나 상관없이 잘 보였다.




버스는 고원지대에 뚫린 아스팔트 도로를 달린다




창 너머로 보이는 높은 낙차의 폭포




고산지대의 도로 너머에는 가끔 하늘이 바로 이어진다




굽이굽이 달리는 도로 너머로도 저 멀리 도시가 보인다




미다가하라에 내리고 나서, 원래는 미다가하라 습지 산책로를 구경하려 했다. 그런데 앞쪽 정거장에서 가져왔던 안내 지도를 보니, 미다가하라 습지 반대편에 전망대로 가는 길이 있었다. 얼마나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길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는 길이 등산에 가까울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지도에 단순히 전망대라고 표시해 놓은 것이 길이 험하지 않을 것 같았고, 나는 시간이 좀 있는데다가 언제 또 다시 와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한번 전망대로 가 보기로 했다. 오솔길 산책로처럼 되어 있는 길은 중간중간 돌계단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가는 것은 힘들지 않았고, 비탈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니 금새 전망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망대의 이름은 타테야마 칼데라 전망대이다. 전망대는 넓지 않고 안락하지도 않아서, 길 끝에 있는 작은 공간에 가깝다. 하지만 전망대 앞쪽으로는 높은 산과 그 산 사이로 깊이 갈라지는 계곡을 볼 수 있다. 칼데라는 화산이 폭발하고 나서 지형이 수축하면서 생긴다고 하는데, 내가 일전에 많이 봤던 산에서 볼 수 없었던 갈라진 모습이 어쩌면 그 흔적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전망대로 가는 돌계단




타테야마 칼데라 전망대에서 보이는 절경




전망대를 둘러본 뒤 다시 돌아와 이번엔 예정대로 미다가하라 습지를 구경하러 갔다. 미다가하라 습지는 일본에서 가장 큰 고원 습지라 한다. 내가 생각한 습지는 물 반 흙 반의 악어가 튀어나올 듯한 그런 것이었지만, 미다가하라 습지는 그것과는 다르게 너른 평원 같은 느낌이었다. 습지에는 보행로가 놓여져 있어 편하게 걸어다니면서 돌아볼 수 있다. 풀과 꽃이 있는 초원에 종종 물웅덩이가 있고, 바로 뒤쪽으로는 높은 산봉우리가 있다. 




습지의 보행로를 걷다 보면 저 멀리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산맥과 그 아래의 도시, 바다까지 볼 수 있다. 근처에 높은 것들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전망이 아주 좋은데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크게 덥지도 않아서, 쾌적한 환경에서 대자연을 구경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로 잠시 북적이는 미다가하라 정류장 앞




미다가하라에는 꽃이 많이 피어 있다




보행로를 따라 편하게 습지를 돌아볼 수 있다




습지 뒤쪽에 자리한 높은 산봉우리들




보행로는 습지 곳곳으로 이어진다




습지의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




저 멀리 산맥 아래쪽, 도시와 바다가 보인다




미다가하라 습지 구경을 마치고, 습지가 내려다보이는 미다가하라 호텔에 들어갔다. 사실 들어가면 돈 쓴다는 생각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지만, 계속해서 걸었던 탓에 버스 시간 전에 잠깐 음료를 마시며 쉬면 좋겠다 생각했다. 호텔은 사람으로 붐비지 않아 한적했고, 로비에는 미다가하라 초원과 산맥 아래쪽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좌석들이 있었다. 




이곳에서 시원한 녹차 음료를 하나 마시면서 짧은 휴식을 취했다. 이때 여행을 가면서 일본 유심을 빌려서 갔던 것 같은데, 와이파이 기계는 써 봤으니 유심을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산 것이었다. 그런데 너무 신호가 안 통하는 바람에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간절히 찾아 다녀야 했다. 호텔의 와이파이를 이용해 가족들에게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가족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다. 




미다가하라 호텔의 로비에서 먹었던 음료




다음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의 짧은 시간, 푹신한 의자에 앉아 전망을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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