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현준 Jul 24. 2022

일본은 화산섬이다 - 2

타테야마 쿠로베 알펜루트의 하이라이트

높은 산지에 펼쳐진 초원인 미다가하라 구경을 마치고 잠시 호텔의 로비에서 쉬다가,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아직 절반도 오지 않은 타테야마 쿠로베 알펜루트의 다음 목적지까지 가기 위함이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류장에서 또다시 곰 주의 안내문을 보았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만 다니니 큰 문제가 없겠다 싶으면서도, 혹시라도 곰을 만나면 어떻게 되나 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해 본다.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던 곰 주의 안내문




미다가하라에서 출발한 버스는 또다시 굽이굽이 이어지는 고산 도로를 달려 다음 목적지로 간다. 봄에 이 도로를 가게 되면 눈이 버스 3 개 정도의 높이까지 쌓여 있는 대 절경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한여름에 간 탓에 눈은 모두 녹고 잔설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봄에 오게 되면 눈벽만 구경하고 다음 코스로는 갈 수가 없으니, 일장일단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복잡하게 이어지는 고산 도로




버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도로의 종착지 무로도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창 너머로 저 위쪽 산봉우리 아래, 고산 도로의 마지막 종착점인 무로도가 보인다. 중간중간 멀리서 보이는 폭포들도 구경하며 무로도에 내리고 나니, 사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배고픔이었다. 이때가 오후 1시 정도였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간단한 음식만 먹고 중간에 음료수만 사 먹은 뒤 제대로 된 끼니를 먹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점심을 먹을 거라면 무로도에 도착하고 난 때가 적당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건물을 돌아보니, 사람으로 바글거리는 것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사방팔방에 각국에서 몰려든 단체 여행객으로 정말 시끄러워서, 여기서 밥을 먹느니 차라리 굶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밥 먹는 것은 포기하고 다른 곳을 구경하다가 괜찮은 간식이 있으면 사먹으면서 버티기로 하고, 정류장 건물을 나섰다.




정류장 건물 밖을 나서니 가까워 보이는 산봉우리 아래, 나무 없이 낮은 풀들만 자란 초원이 펼쳐진다. 돌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편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데, 군데군데 눈 녹은 물이 고인 푸른 물웅덩이를 볼 수 있었다. 좋은 날씨에 하늘을 그대로 담아놓은 것 같은 물웅덩이는, 주위에 남아 있는 잔설과 푸른 녹초, 산봉우리와 함께 멋진 절경을 자아낸다. 




산봉우리와 어우러진 초원들




눈 녹은 물이 고인 물웅덩이는 하늘을 담아놓은 듯 파랗다




무로도에는 여러 개의 물웅덩이와 다양한 산책로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지고쿠다니 계곡 이라는 곳이다. 유황 가스가 분출되는 이곳에서는 바람의 방향이 조금만 바뀌어도 사람들에게 매우 위험한 장소가 될 수 있어, 가스의 농도를 측정하는 기계가 잔뜩 들어서 있다. 지고쿠다니 계곡이 보이는 곳에는 작은 음식점과 온천이 있는데, 이곳에서 다양한 간식을 팔고 있다. 지금 가격표를 다시 보니, 가격이 정말 놀랍다.




놀라운 가격의 메뉴판 중 블루베리맛 소프트콘이 있었는데,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결국 아이스크림 콘을 하나 사서 지고쿠다니 계곡이 보이는 의자에 앉아 먹었다. 아래쪽 계곡을 보니 뿌옇게 연기가 올라오는 것이 보이는데, 아무리 봐도 위험해 보인다. 그런데 바로 그 옆쪽에는 건물이 줄지어 서 있다. 숙소로 쓸 수 있는 건물 치고는 너무 위험한 위치에 있는 것이 창고는 아닐까 싶었다. 




지고쿠다니 계곡이 보이는 곳에 있는 매점, 소박한 메뉴판, 놀라운 가격




블루베리와 바닐라 믹스의 아이스크림 콘




무로도 버스 정류장 근처의 산책로들은 다들 높낮이도 별로 없고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곳들이지만, 나는 조금 시간을 들여서 다른 곳에 가 보고 싶어졌다. 안내 책자에 나와 있는 전망대가 그것이었다. 사실 신발도 산을 올라가기에 좋은 편이 아니었고, 배는 좀 고픈 상태인데다가 가서 어떤 풍경을 볼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넉넉하게 쓰기로 한 데다가, 언제 또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온 김에 최대한 많은 풍경을 보고가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아주 약간 고민하다가, 안내책자의 방향을 참고하여 전망대가 있을 것 같은 곳으로 향했다. 산봉우리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돌길이었다. 안내책자에는 얼마나 더 걸어야 한다던가 하는 설명도 없고, 먼 곳의 전망대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언젠간 보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무작정 걸어가기 시작했다.




물웅덩이와 어우러진 무로도의 풍경




좁은 돌길을 따라 전망대로 걸어간다




걸어가면서 머릿속으로 계산을 조금 해 보니, 시간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다음 숙소를 예약한 도시까지 가기 위해 이용해야 하는 마지막 교통편이 저녁 일찍 끝났기에, 그 이전까지는 반드시 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전망대를 향하는 발걸음이 약간은 성급했던 것 같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무로도에서 1박을 하면서 천천히 산을 구경해도 좋겠다 싶었다.




약간 서둘러서 걸어가며 빨리 갔다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중간중간 뒤도 돌아보고 주위도 둘러보았다. 전망대로 가는 돌길에서는 가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등짐을 진 사람을 만나서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기도 했다. 중간에 돌계단도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위로 올라가는 상황에서는 하늘과 닿아 있는 산봉우리가 더욱 특별하게 보였다. 산봉우리 너머에서 나타나는 등산객 일행을 보기도 했는데, 이 사람들은 무슨 등산 코스로 오가고 있는걸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중간에 돌아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꽤 먼 길을 온 상태였다




전망대로 향하는 길 중간의 돌계단




시간이 충분했더라면 가 보고 싶었을, 코 앞의 산봉우리 꼭대기




돌계단을 끝까지 다 올라가고 나니, 작은 초원이 나온다. 앞쪽엔 노랗고 작은 꽃들이 피어 있고, 길은 앞쪽에서 끝난다. 생각보다 빨리 전망대에 도착한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속도를 내어 끝까지 걸어가 본다. 그렇게 도착한 전망대에선 아까 볼 수 없었던 경치가 눈앞에 들어온다. 끝없이 펼쳐진 산맥이 얽히고 얽혀서 이어진다. 




너무 멀리 있어서 뿌옇게 보일 때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거대한 산맥들, 그 위로는 푸른 하늘이 지나간다. 문득 봤던 곰 경고 표지판이 생각난다. 이런 산이라면 분명히 곰이 살고 있을 것 같다. 전망대에 있는 작은 의자에서 잠깐 앉아서 쉬면서, 바로 뒤쪽에 있는 손에 닿을 듯 가까운 산봉우리 정상도 구경했다. 




돌계단 위에서 등장하는 작은 풀밭과 그 너머의 산맥들




끝없이 산맥이 펼쳐져 있다




전망대 뒤쪽으로, 산봉우리 너머에서 구름이 지나간다




험준한 산맥으로 가득한 절경




적당히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니, 이전에는 미처 신경쓰지 못하던 것들이 보인다. 전망대가 생각보다 높은 곳에 있었고, 중간중간 예쁜 들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예쁜 들꽃이 있어 사진을 찍고 나서 나중에 보니, 초점이 안 맞아서 너무나도 아쉬웠다. 중요한 사진을 찍고 나서는 꼭 제대로 찍혔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초점이 맞지 않아 아쉬웠던 사진. 언제 다시 이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쭉 뻗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산책로




무로도 구경을 마치고 나면 쿠로베 댐 까지 내려간다. 가장 높은 곳인 무로도 에서는 날씨가 정말 좋았는데, 쿠로베 까지 내려가다 보니 갑자기 날씨가 조금 흐려졌다. 험준한 산맥 구경을 하면서 터널 속을 달리는 전기버스와 케이블카 등을 번갈아 가면서 이용하는데, 이때 버스 안에서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서 짐을 붙들고 조금 졸았던 기억이 난다.




쿠로베 댐 까지 가는 길에 케이블카를 타면서 중간 정거장에 들렀는데, 이곳에서도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검은 초콜릿과 바닐라가 반반 섞인 아이스크림을 먹고, 몇가지 재미있어 보이는 음료를 샀다. 그 중에 달달한 복숭아 음료가 있었는데, 먹고 나서 쓰레기를 버릴 곳을 찾지 못해 계속해서 들고 있다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버릴 수 있었다. 쿠로베 댐까지 내려가는 길은 여름보다는 가을에 오면 훨씬 멋질 것 같았다. 




중간에 사먹었던 소프트 아이스크림




쿠로베 댐과 그 주위의 계곡




쿠로베 댐에 도착하니 날씨는 약간 흐렸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푸른 하늘이 보여 나쁘진 않았다. 쿠로베 댐의 한쪽 끝에서는 물이 엄청난 기세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댐 바로 위에서 아래쪽을 볼 수도 있고, 댐의 반대편으로 걸어가 조금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아래쪽을 내려다 볼 수도 있었다. 전망대에는 바람을 조심하라는 안내문이 있었는데, 바람 때문에 날아간 모자가 아래쪽에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나도 모자를 쓰고 있었기에 모자를 꼭 붙잡고 있었다.




사실 쿠로베 댐의 매점에서는 유명한 음식을 판다. 밥을 댐 모양으로 높게 쌓고 거기에 카레를 부은 것인데, 아침부터 시작해서 점심 시간을 한참 넘기도록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나는 반드시 그걸 먹고 말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도착하고 나서 보니 카레를 파는 매점이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먹을 수 있는 것은 편의점에서 나오는 야끼소바나 타코야키 같은 정말 간단한 음식들 뿐이었던 것 같아서, 저걸 먹을바엔 그냥 숙박하기로 한 도시에 도착해서 뭘 사먹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댐에서 쏟아지는 물은 정말 절경이었지만, 나는 매우 배가 고파졌다.




열린 수문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는 쿠로베 댐




반대편 전망대에서 본 쿠로베 댐




주인 잃은 모자들이 댐 아래쪽에 떨어져 있다




쿠로베 댐 구경을 마치면 마지막 정류장까지 오고,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인 시나노오마치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하루 종일 가보고 싶은 곳을 최대한 가다 보니, 시나노오마치 역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게 되었는데, 이때 마음이 좀 더 급해졌다. 타테야마 쿠로베 알펜루트 구경을 하기 전 도야마에서 배송시켰던 짐을 받는 곳이 시나노오마치 역이었고, 버스를 타고 간다면 정해진 시간을 넘기기 일보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버스 안에서 시간이 갈 때마다 시계를 보고 구글 지도를 보며 언제쯤 역에 도착할지 전전긍긍했었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마지막 버스를 타고 오는 관광객들이 있을 것이니 당연히 마지막 버스까지 기다리겠지만, 그런 일이 처음이었던 나는 만약 짐을 못 받고 가게 되면 어쩌나 하고 고민했었다. 다행히 버스에서 내리니 짐을 받는 곳인 관광안내소 앞에서 직원들이 짐을 꺼내놓고 기다리고 있었고, 무리 없이 짐을 받을 수 있었다. 




시나노오마치 역에서 나는 다음 행선지인 마츠모토를 가기 위해 열차를 기다렸다. 한적한 시골 마을처럼 보이는 시나노오마치 역 안에는, 지역 고등학생들이 만들어 둔 듯한 방명록이 있었다. 시나노오마치의 관광을 활성화 하기 위한 조언을 해 달라는 책자에,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적어 둔 것을 보았다. 열차가 올 때까지 남은 시간을 기다리는 사이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보라색으로 빛나는 멋진 노을이었다.




시나노오마치 역에서 봤던 저녁 노을




그렇게 그곳에서, 마츠모토로 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작가의 이전글 일본은 화산섬이다 -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