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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Aug 07. 2022

인생 : 손님, 여기서부턴 추가요금 입니다

삶의 아웃소싱

최근 들어 종종 소모임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홈베이킹을 하고 있다. 다들 같이 홈베이킹 하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준비 잘 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면 나름 뿌듯한 느낌이 든다. 사실 나는 함께 모여서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같이 모여서 음식을 먹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집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아서, 그나마 나은 환경인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요리를 하곤 한다.




생각해 보면 비단 요리 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집에서 다양한 방식의 대화를 하거나 혹은 작업을 하고 싶을 때 더이상 집 안에서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카페에 간다. 집에서 준비할 수 없는 식음료를 먹고, 배치할 수 없는 가구를 이용하며, 만들 수 없는 분위기를 즐긴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대화를 하고 작업을 한다. 여태까지는 집 안에서 하던 것들인데, 이제는 집에서 하는 것이 더 어색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고 싶을때는 또 어떠한가? 사람들은 집에서 푹 쉬지 않는다. 집 밖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 버린 상태로 쉬기 위해, 사람들은 호캉스를 떠난다. 청소도 해야 하고 정리도 해야 하고, 뭔가 할 거리가 한 시간만 있으면 튀어나올 것 같은 집을 떠나서,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곳으로 간다. 집은 원래 휴식의 공간이지만, 더이상 휴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음식을 먹는 것도 비슷하다. 옛날 어지간한 것은 집에서 만들어 먹던 것부터, 집에서는 먹기 힘든 것들만 사 먹던 것을 거쳐, 이젠 대부분의 음식을 배달시켜 먹으며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 때가 되었다. 단순히 요리를 하는 것이 귀찮아서일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요리를 할 정도로 충실한 주방을 갖춘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 아닐까. 요리를 하려면 준비가 필요하고, 그 정도 준비는 다 되어 있었던 옛날에 비하면 지금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너무나도 비좁다. 




여태까지 집 안에서 정리하던 것을 집 밖으로 떼어 놓는 것은, 사소한 것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연립주택이 모여있는 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빨래방이 성업 중이고, 사무실이 모여 있는 건물 앞에는 텀블러를 씻어서 커피와 함께 배달해 준다는 업체가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좁아지는 집에 보관할 수 없는 물건들은 집 밖의 다른 공간에 보관하고, 갖고 싶은 것은 돈 모아서 장만하는 것이 아니라 중고로 사거나 빌려 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사람들이 다지던 친목도, 더이상 집안에 있지 않다. 옛날의 가족관계는 세대차이가 벌어지고 가족단위가 파편화되면서 더이상 의미가 없어졌고, 성인이 된 가족 구성원들이 명확한 개인공간 없이 지낼 때는 감정적 결속보다는 분쟁이 더 많이 생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가족 안에서 느끼던 감정적 유대를 찾기 위해 가족 밖으로 나간다. 고민을 말하거나 즐거움을 나누고, 가까운 동네에서 살면서 부담없이 만날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플랫폼에 돈을 쓴다. 




고전적인 의미의 집 안에서 사람들은 대부분의 것들을 해결했다. 생활하고, 쉬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집은 점점 작아졌고 구성원은 집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경제성장기의 집이란 더 큰 공간으로 가기 위해 일상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발판이었다면, 현대사회의 집이란 정 반대이다. 언제 나갈 지 모르고, 작아지면 작아졌지 커질 수는 없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고전적인 집에서 찾던 의미는, 이제 집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이제 집 밖에서 비용을 치루어 얻어내야만 한다. 




문득 공유주방에서 사람들과 요리를 하고, 호캉스를 가서 쉬었다고 표현하며, 사람들을 카페에서 만나거나 하는 그런 모습들이, 옛날 집에서 하던 것들이고 더이상은 집에서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 아닐까. 그것을 추가로 돈을 들여 집 밖에서 해야만 할 때,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란 결국엔 돈으로 얻어야만 하는구나 하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란 결국 말하자면, 들어오는 것은 무료이지만 놀이기구에 타려면 돈을 내야만 하는 놀이공원 같은 것 아닐까.




인생을 알아가는 순간은, 삶의 즐거움이란 결국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서부터 아닐까. 2019/04, 서울 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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