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에서 만난 외국인
마츠모토에 있으면서,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있던 네덜란드 사람과 이야기 하게 되었다. 네덜란드에서 요리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일본 여행을 하고 있는 그는, 일본을 전체적으로 한번 구경하고 있는 듯 했다. 이 글에서는 J 라고 소개할 이 사람은, 내가 요리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에 아주 좋았다. 가령 마츠모토에 있을 때는 이런 것들을 물어 봤다.
'음식점에서 일할 때 가장 간단하고 마진도 많이 남는 요리가 뭐야?'
'아마 팬케이크겠지. 밀가루는 재료도 저렴하고 만들어 둘 수가 있으니까. 정 급하면 냉동시킨걸 전자렌지에 돌려 나가도 알기 힘들어.'
'혹시 메뉴에 스테이크 있었니? 있으면 에이징은 해?'
'고기는 외부 업체에서 제공받는걸 써서 우리가 따로 에이징은 하지 않았어.'
그 외에, 내가 요리에 쓸 마늘 까는 것을 보고 까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마늘을 볼에 넣고 마구 흔드는 방법을 보여주곤 했다. 내가 알고 있던 방법이었기에 마을이 깨지는 것이 염려되니 물을 조금씩 묻혀가며 까는 것이 어떠냐 했더니, 마늘에 물이 닿으면 마늘의 풍미가 줄어든다고 이야기 해 주기도 했다.
마츠모토를 떠나던 날, J 도 마츠모토를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가나자와로 가는 나와 똑같이 J 도 가나자와로 가는 것이었다. 다른 이야기를 더 해 본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가나자와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마츠모토에서 출발해 시라카와고 구경까지 마치고 가나자와에 도착한 날 저녁, J를 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어둔 뒤 가나자와 역으로 향했다. 역 앞에는 나무로 복잡하게 쌓아 올린 거대한 문이 있었는데, 이 구조물이 가나자와의 유명한 상징물인 듯 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사이 나도 문 사진을 찍고, 다른 사람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면서 J 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J 를 만날 수 있었다. J 의 숙소는 가나자와 역 근처였는데, 내가 있던 숙소보다 조금 더 역에 가까운 듯 했다. 만나서 어디를 갈까 했는데, 사실 둘 다 일본어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최대한 눈치껏 음식점을 골라야 했다. 그때 내가 머물던 숙소 근처에서 고기구이 가게를 봤던 것 같아서, 거기를 가자고 했던 것 같다.
가게는 좁았지만 다행히 앉을 자리가 있었다. 가스 불로 켜는 듯한 불판 위에 고기를 구워먹는 곳이었다. 둘이서 맥주를 하나씩 먹으면서 소고기 조금과 오징어를 주문해 먹어 보았다. 흡연이 가능한 가게였기 때문에 담배를 피지 않는 나에게는 그 옛날 피씨방 같은 답답한 느낌이 들었지만, 일본에는 흡연이 가능한 가게가 많으니 그런가보다 싶었다. J 는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담배를 피웠다.
생각보다 개인적이고 진지한 이야기까지 했던 것 같아서, 맨 마지막엔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가끔씩 살다 보면 너무 감정을 안 드러내서 우는 법도 잃어버린 것 같다고. 울 것 같은데 울음이 안 나오는거야.'
'내가 그 경험이 있는데, 5분안에 울 수 있는 법 알려줄까? 원한다면 바로 울 수 있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괜찮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고기를 다 먹고 나서 뭐라도 하나 더 먹어 볼까 하다가, 옆쪽의 라멘 가게로 갔었다. 문을 열었는데 사장님이 뭐라고 말씀 하시는 것이, 일본어를 하나도 못하지만 얼추 맥락만으로 뜻을 파악해 보니 재료가 없어서 라멘은 주문이 안 된다 라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아쉬워 하는 우리에게, 라멘은 없지만 위스키와 오코노미야끼는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사장님은 그날 장사를 더이상 하지 않고, 아는 사람과 함께 가게 안에서 간단한 모임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엉겁결에 앉게 된 우리에게 사장님은 위스키와 오코노미야끼를 나누어 주셨다. 돈도 받지 않고 말이다. 가게 안까지 들어와서 공짜 위스키와 음식을 먹고 그냥 나가긴 좀 죄송하니, 맥주를 사 먹었다. 맥주를 먹다 보니 사장님이 또 특이한 음식을 주셨는데, 짠 생선알 절임이었다. 그때 나는 그것을 소금물 속에서 천천히 독을 중화시켜 먹는다는 복어 알 절임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생선알 절임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하튼 나는 그게 특별한 복어알 절임이라고 생각하며 J 에게 설명해 주었지만, 말하면서도 이런 음식을 어쩌다 들어온 관광객들에게 먹어보라고 준다니 내가 아는 그 복어알 절임이 아닌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날 J 와 나눴던 이야기는 굵직한 것이 더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나중에 J 가 한국에 와서 몇번 봤을 때는 인상적인 대화들이 기억에 남지만, 이 때의 대화는 우는 법에 대한 것만이 선명히 기억난다. 비록 대화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여행 중 만난 외국인과 다른 곳에서 일정을 맞춰 다시 본다는 경험이 나에겐 아주 새로웠던 것으로 남아있다.
시간이 지나서 아직도 나는 잘 울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때 우는 법을 알게 해주겠다던 J 의 진지한 표정이 종종 희미하게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