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나자와 오미초 시장 구경
가나자와의 첫날 일정, 게스트하우스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오미초 시장이라는 곳이 있다는 말에 한번 가 보기로 했다. 나는 어디로 여행을 가더라도 그곳의 시장 구경 하는 것을 좋아한다. 잘 정비된 대형마트도 좋지만, 사람들로 북적이는 정돈되지 않은 옛날 시장들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시장 가는 길, 저 멀리서 여자 두 명이 걸어오는데 자세히 보니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알고 보니, 어제 가나자와 역 앞 구조물에서 사진을 찍어 줬던 사람들이다. 모른 척 하고 지나가긴 애매하고, 상대방도 나를 본 것 같아서 인사를 한다. 어제 찍은 사진 나중에 보내 줄께 하고 돌아서는데, 둘이서 손에 작은 컵을 하나씩 들고 있다. 컵 안에는 다 먹은 포도의 송이가 들어 있다. 포도알을 먹고 남은 포도 송이가 꽤 커 보였다. 무슨 포도를 저렇게 컵 안에 작게 담아서 팔까 생각했었다. 잠시 후 나도 들게 되었지만 말이다.
쭉 뻗은 길을 따라 주위를 둘러보며 걷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이 보인다. 딱 봐도 시장 같아 보이는 입구 안쪽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시장의 활기는 충분히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 걸어다닐 정도로 사람이 많다던가,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혼잡하다던가 그런 것도 아니다. 적당한 인파 속에서 오고가며 좌판에 널린 다양한 물건을 구경한다.
시장 구경을 하다 보면 다양한 식재료들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을 보면 그 나라의 문화와 지리적 특성을 아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가나자와의 오미초 시장에서는 좌판에 굴을 쭉 깔아 두고, 사고 나서 그 자리에서 까먹을 수 있게 준비해 둔 것이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그런 것을 본 적은 없었기에 꽤 신기했다. 내가 굴을 좋아하지 않아 먹어보지 못했지만, 굴을 좋아한다면 꼭 먹어보았을 것 같다.
굴 이외의 해산물들도 다양해서, 말린 생선이나 생선회용 횟감을 정리해 둔 거도 볼 수 있었다. 말린 생선 같은 경우 한국에서는 그렇게 흔한 식재료가 아닌 것 같아서, 요리로 먹는다면 기껏해야 굴비 정도이고 육수용으로 쓰는 북어나 반찬용 멸치 정도만이 떠올랐다. 그런데 오미초 시장의 좌판에서는 꽤 다양한 종류의 반건조 생선을 볼 수 있어서 그 차이점도 느낄 수 있었다.
구경을 하다 보니 과일 가게도 있었는데, 다양한 과일 중에 단연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작은 과일을 담아 둔 컵들이었다. 한 컵에 5000 원 정도의 부담없는 가격으로 과일을 맛볼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시선이 가는 것이 있었다. 엄청나게 큰 청포도였다. 내가 알고 있던 한국의 포도나 수입 청포도보다 훨씬 큰데, 알도 굵은데다가 은근히 광택이 나는 것이 잘 익은 사과의 겉에서 나는 빛 같은 것이 보였다. 사실 포도가 크면 포도지 뭐 얼마나 맛이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한번 맛이나 보자는 생각에 한번 사 먹어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처음 먹어 본 일본의 샤인머스캣이었다.
한국의 종이컵 보다 조금 더 큰 것 같은 플라스틱 컵 안에, 굵은 포도 줄기에 달린 포도 알이 8개 정도가 들어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포도길래 이렇게 비싸게 파는걸까, 하는 생각에 한번 입에 넣어서 씹어 보니 이게 웬걸, 내가 알고 있는 포도의 맛이 아니었다. 아삭하게 씹히는 껍질 밑의 과육이 내뿜는 풍미는 포도의 것이 아니었다. 마트에서 살 수 있는 녹색 청포도 사탕의 것과 같은 짙은 향이 났다. 청포도 사탕에서 강렬한 단맛은 빼고 청포도 풍미만 빼다가 뭉쳐놓은 것 같은 그 맛에 감탄하는 사이, 청포도는 입 속에서 남은 것 없이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껍질이 입 안에 전혀 남지 않았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나를 데리러 온 엄마에게 나는 차 안에서 온종일 샤인머스캣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결국 집으로 가는 길 바로 인터넷으로 주문해 집에서 사먹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리 샤인머스캣을 먹어도 그 때 일본에서 먹었던 것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던 데다가 일본에서 샤인머스캣을 먹을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는 다시 그 옛날의 맛을 느낄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고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정육점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소고기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육류가 있었는데, 이중 한 곳에서 소고기를 사다가 게스트하우스에서 구워 먹기도 했다. 마트에서도 고기를 파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시장에서의 고기 진열이 좀 더 보기 좋았던 것 같다. 다만 구경하는 입장에서 사지는 않고 사진만 찍는 것은 사실 마음에 좀 걸리는 경우가 많아서, 찍고 싶은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나서 이날 저녁, 오미초 시장에 있는 음식점에서 스시를 먹었다. 게스트하우스 직원에게 추천받기도 했고, 시장에 있는 것이 어쩐지 믿음이 갔지만, 아쉬운 것은 메뉴에 영어가 없어서 구글 번역기나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주문을 해야만 했다. 주문지에 메뉴를 적어서 제출하면 그에 맞는 음식을 가져다 주는 방식이었는데, 내가 주문한 것 같지 않은 메뉴를 몇 번 먹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해외 여행을 하면서 현지 언어가 가장 아쉬운 순간은, 음식점에서 아닐까. 나는 이날도 가게를 나오면서, 돌아가서 꼭 일본어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여태까지 수도 없이 지나왔고 어쩌면 앞으로도 지나갈 것 같은, 그런 다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