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덕도 밀떡도 떡이다
내가 살면서 처음 먹어 본 떡볶이의 기억은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의 것일 것이다. 그때 살던 아파트 대단지에는 작은 상가 건물이 부속으로 딸려 있었고 그곳에 분식집이 있었다. 혼자서 어딜 가서 뭘 사먹을 수 없었던 나이 나는 엄마와 함께 그 상가 안의 작은 떡볶이 가게에 가서 떡볶이를 몇 번 먹었다. 좁은 공간의 주방 옆에 벽을 보고 앉게 되어 있는 작은 가게. 어둑하게 잊혀진 떡볶이 가게의 기억 중에서, 유일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보드라운 떡과 면이었다. 매콤달콤한 양념이 듬뿍 묻은 부들부들한 떡.
시간이 지나서 나는 고등학생이 되고 동네의 분식집에 자주 갔다. 동네 사랑방 느낌이었던 그 분식집에는 우리 부모님도 자주 들러 다른 이웃들과 음식을 먹기도 했고 나도 그 분식집에 자주 갔다. 사장님과 친해진 나머지 나는 내가 떡볶이를 직접 떠 먹기도 했는데, 그때 분식집 사장님은 길쭉한 밀떡과 짧고 굵은 쌀떡 두 가지를 섞어서 사용했다. 처음엔 별 생각 없이 아무 떡이나 담아 먹었지만, 밀떡은 나에게 별로 부드러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쌀떡은 이가 매끄럽게 들어가는 부드러운 느낌과 적당히 이빨을 밀어내는 탄성이 느껴졌다. 밀떡은 내가 아는 떡의 느낌이 아니었지만, 쌀떡은 정확한 떡의 그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 뒤로 나는 떡볶이 하면 쌀떡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양념에 적당히 익은 보드라운 쌀떡은 쫀득하게 씹히면서 떡볶이 양념과 잘 어울렸다. 쌀떡을 기름에 튀겨 떡꼬치 소스를 뿌려낸 떡튀김도 쌀떡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메뉴였다. 꽤 오랫동안 나는 밀떡은 짖굳게 말하자면 떡이 아니며, 쌀떡이 최고라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집에서 종종 떡볶이를 해 먹다가 든 생각이 있었다. 떡볶이 양념이 결국 떡의 겉면에만 묻으니 최대한 떡 안쪽까지 소스 맛이 들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떡을 계속 끓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것 같아 한번은 떡볶이 양념에 쌀떡을 넣고 계속해서 끓여 보았다. 나는 떡이 더 맛있어 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쌀떡에서 나오는 전분기가 양념에 계속 녹으면서 양념은 걸쭉해지고, 전분기가 빠져나가는 떡은 점점 흐물흐물해졌다. 결국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떡볶이가 아니라 떡볶이 죽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떡을 계속 끓이면 퍼질 수밖에 없구나, 하는 간단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된 나는 결국 쌀떡은 빨리 먹을 수밖에 없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불현듯 내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내가 여태껏 떡으로 인정하지 않고 무시해 왔던 그것, 밀떡이었다. 밀떡을 계속 끓여도 쌀떡처럼 될까 하는 생각에 다음 번에 밀떡을 사다가 떡볶이를 해보니, 쌀떡보다 훨씬 오래 가열해도 떡이 풀어지지 않고 양념도 깨끗했다. 맛은 어떨까 싶어 한개를 먹어보니, 쌀떡과는 다른 느낌이 있긴 해도, 아주 맛있는 떡볶이 떡의 맛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밀떡 떡볶이를 사서 떡볶이를 해 먹으며 느낀 것은, 요리를 하며 부가재료로 떡볶이 떡을 넣는 입장이라면 쌀떡보다 밀떡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쌀떡은 쉽게 불고 전분물을 내보내지만, 밀떡은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요리에 파스타나 밥을 넣는 것처럼 밀떡을 넣어서 먹어도 잘 어울리고 떡볶이 느낌을 내며 마무리를 할 수도 있었다.
떡볶이 떡 하면 쌀떡만을 생각하던 나는 이제 떡볶이 떡 하면 당연히 밀떡이지 하는 생각이다. 불어 오르거나 전분을 내뿜지 않는 상태로 여기저기 편하게 넣기 좋으면서도, 떡의 부들부들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떡볶이 떡을 살 때 쌀떡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밀떡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마음 편하게 쌀떡을 쉽게 구했는데, 요리에 쓸 밀떡 찾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하지만 쌀떡이 더 쉽게 부풀어 오르고 양념을 끈적하게 한다 해도, 밀떡이 내가 하는 요리 성향에 좀 더 맞고 나름의 맛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둘 다 떡이다. 앞에 놓여지는 작은 접시 안에서 떡볶이 양념과 어우러져,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푸근한 느낌을 주는 기억 속 그 음식.
오래 전 내가 떡볶이를 먹을 때와는 달리 나는 이제 밀떡을 더 많이 즐기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쌀떡이나 밀떡이나, 둘다 떡이라는 것이고, 둘 다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