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자와의 달다구리를 찾아서
도야마부터 시작해 마츠모토까지 구경하고, 마지막 여행지인 가나자와에 도착한 이후, 가나자와에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끌리는 장소가 있다면 열심히 돌아다녔겠지만, 생각보다 날씨가 좋아지고 안 좋아지고를 반복한 탓에 의욕적으로 구경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게스트하우스 직원에게 물어봐서, 갈 만한 디저트 카페를 추천받아 가 보기로 했다. 추천 받은 곳은 세 곳 정도였는데, 동선을 고려할 때 가 볼 수 있는 곳은 두 곳 정도였다. 어차피 급한 것이 없으니 천천히 가 봐도 되겠다 싶은 생각으로 늦잠을 자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잠시 잠을 깼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할 정도로 응급한 상황에 울리는 사이렌 같은 것은 아니었는데, 직원에게 물어보니 갑자기 폭우가 올 수 있어서 울리는 사이렌이라고 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심각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나니,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여기저기 열심히 돌아다니는 여행지의 일정에 비교하면 매우 게으른 수준의 일정이었지만, 바쁘게 다닐 때도 있으면 또 아무 생각 없이 쉴 때도 있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준비해 밖으로 나섰다. 디저트 카페를 향해 갈 때는 비가 오고 있어서 우산을 쓰고 걸어가니, 빗방울이 우산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게스트하우스 직원은 그 디저트 카페가 꽤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일본 안에 분점이 여러 개 있는데다가 아주 유명해서, 각각 다른 지역의 지점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유명한가 하는 생각에 기대를 하고 찾아간 디저트 카페는, 큰 미술관 건물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미술관 건물 안은 일견 보기에는 미술관 같지 않고 조금 어둑했지만, 앞쪽에 카페의 이름이 보여 바로 찾아갈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의 매장 안에는 선물로 사기에 좋은 세트가 다양하게 놓여 있고, 좀더 안 쪽에는 제품이 진열된 공간이 있었다. 보통 디저트 카페에 가면 계산을 한번에 하고 자리에 가져가서 먹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은 먼저 주문을 모두 하고 자리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주문한 것을 가져다 주는 방식이었다.
다행히 사람이 붐비지 않아 안쪽에 내가 앉고 싶은 자리를 골라 잡을 수 있었다. 안쪽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은, 비스듬한 유리창 아래에 있다. 나무가 많은 위쪽에서 떨어져 내린 나뭇잎과 빗방울이 기울어진 유리창 아래에 떨어져 내렸다. 자리에 앉아 위를 올려다보니, 세차할 때의 유리창 같은 물결무늬가 보였다.
자리에 앉아서 조금 기다리니 진열대에서 주문한 것을 가져다 주었다. 복숭아가 들어간 쇼트케이크, 커피 크림이 들어간 티라미수 느낌의 크레이프 케이크, 진하고 단단한 가나 쇼콜라. 시원한 아메리카노에, 크림과 시럽. 아메리카노에 크림과 시럽을 넣어 조금 저어 본다. 물에 들어간 물감처럼 커피 속으로 하얀 크림이 녹아드는 것이, 어릴 적 수채화 시간 마다 보던 모습 같다.
케이크를 조금씩 먹어 보며 천천히 시간을 보낸다. 너무나도 오래 전 일이었기에 케이크의 맛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쇼트케이크는 내가 알고 있는 그 맛이었지만 복숭아와 조합을 한 것이 한국에서는 흔치 않았던 느낌이었고, 커피 크림이 궁금해서 골랐지만 사실 나는 크레이크 케이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그냥 새로운 맛을 먹어본다는 생각으로 먹었다. 가나 쇼콜라도, 나는 부드러운 식감의 쉬폰 케이크를 좀 더 선호하는데 어찌 보면 딱딱한 식감의 브라우니 느낌이 나는 가나 쇼콜라는 내 취향과 조금 달랐다.
하지만 시끄럽게 북적이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창 밖을 쳐다보며 별 생각 없이 케이크를 먹었고 그 시간이 좋았던 것 같다. 흘러내린 빗물과 나뭇잎이 유리창을 덮고 있었지만 창 밖의 나무들을 보기엔 무리가 없었다. 작은 음악소리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가 들려오는 미술관 안 디저트 카페는, 마치 미술관 안인 것처럼 정적이었다. 달달한 음식들을 조용히 즐기기에는 참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기본적인 메뉴들만 고르지 않았나 싶다. 좀 더 신기한 메뉴들을 골라봤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지금 옛날에 찍은 사진을 보면서 아쉬움으로 남았다. 어디를 가더라도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메뉴를 먹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메뉴가 어떠한들 미술관 안 카페에서의 시간은 평화로웠다. 천천히 분위기를 즐기고 밖으로 나오니, 저 멀리 파란 하늘이 보였다. 조금 옅어진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비록 내 앞에서는 아직도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쉽게도 직원이 알려줬던 다른 디저트 카페는 문을 닫아 들어갈 수 없었지만, 미술관 같았던 카페의 분위기는 여운이 길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