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입맛도 변한다
우리 가족은 내가 어릴 적 노원구에 살다가 성북구로 이사를 왔다. 이사 온 아파트 단지 안에는 상점들이 몰려 있는 상가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의 3층인가 2층인가에 일식집이 있었다. 이름은 일본어로 맛있다는 뜻의 우마이. 그 모습은 내가 그 뜻도 모르던 어릴 적 기억 속에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가게에 들어가면 왼쪽으로는 테이블이 있고 그 앞쪽으로는 주방이 있었다. 주방에는 두세명 정도가 있었던 것 같고, 주방과 테이블 오른쪽으로는 좌식 자리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목조 느낌이 났던 것 같은 그 음식점은, 나와 동생에게는 아주 생소했던 기억이 난다. 나와 동생은 노원구에 살 때 가까운 시장의 횟집에서 부모님 따라 회를 먹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일식집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던 동생과 내가 기억하는 첫 스시를 먹은 곳이 그곳이었다. 엄마는 어린 나와 동생을 데리고 어느날 그곳에 가서 스시를 사 주셨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나이였던 나와 동생이 그곳에서 스시를 기다리면, 낮은 나무 접시 위에 10 개 정도 되는 스시가 열을 맞춰서 나왔다. 동생은 스시를 아주 좋아했던 것 같아서 엄마에게 스시를 사 달라고 종종 졸랐다. 그때 당시 편하고 흔하게 먹을 수는 없었던 음식이었던 것인지, 혹은 동생이 먹고 싶다고 해서 바로바로 사 주면 동생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하신 것이었는지, 엄마는 꽤 난처해 하셨던 것 같다.
사실 어릴 적부터 나와 동생은 회를 먹곤 했다. 집에서 좀 떨어진, 시장이 몰려있는 곳 구석에 있는 정말 작은 횟집에 가면 부모님은 회에다가 술을 드시고 우리는 그 옆에서 같이 회를 먹곤 했었다. 더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것은 식사로 먹었던 손수제비 넣은 매운탕이었지만, 어린 아이들이 횟집에서 회 집어 먹는 것을 신기해 하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목적으로 회를 조금 먹기도 했던 것 같다.
여하튼 그렇게 회는 먹을 수 있었는데, 스시는 별로 내 취향이 아닌 것 같았다. 와사비 풍미는 너무 강렬해서 혀에 바로 닿으면 순간 휘몰아치는 와사비 풍미가 고통스러울 정도였고, 밥 위에다가 회를 올려 먹는다는 것이 그때의 나에게는 조화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초밥을 먹다 보면, 밥을 한 술 뜨고 회를 올려 먹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동생은 스시를 좋아해도, 나는 스시가 아주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서 아빠가 종종 집에 스시를 포장해 오시곤 하셨다. 아마 스시 가게에서 사람을 만나고 나서 가족들에게 줄 것을 포장해 오셨던 것 같다.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간장, 야채절임 등과 함께 별도 포장된 미소된장국이 담겨 있었다. 나는 포장 스시를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뚜껑을 열면 다양한 회 혹은 스시 재료가 뒤섞인 듯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그때도 종종 아빠가 사 오시는 포장 스시를 먹었지만 이게 정말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스시를 먹어보았다. 프랜차이즈 초밥 무한리필, 참치회 전문점, 회전초밥 가게들. 스시를 좋아하는 동생을 따라 몇 곳을 다니면서 먹어봤지만, 딱히 스시가 맛있어서 찾아 먹어야겠다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해산물을 크게 즐기지 않아서일까?
그런데 어느날, 어떤 계기였는지도 기억 나지 않게, 갑자기 스시를 먹는 느낌이 예전과 달라졌다. 약간의 산미가 있는 밥과 와사비의 풍미는 과하게 생선의 맛을 가리지 않았고, 스시 전문점에 준비된 다양한 종류의 생선은 조금씩 다른 생선을 먹으면서 생선의 차이를 느낄 수도 있었다. 물론 나는 지금도 밥보단 고기고, 생선보다는 육류지만, 이전까지는 왜 스시를 먹을까 하며 관심을 가지지 않던 음식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다큐멘터리를 봤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만든, 스시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거기서 나오는 대사가 인상깊었다. 동쪽의 어느 나라에는 사람 손으로 만들어 사람 손으로 받아 먹는 음식이 있다고 했던가. 물론 한국에서는 그렇게 먹는 경우가 거의 없고 일본에서도 그렇게 흔한 문화가 아닌 것 같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그 대사가 기억에 남았다.
물론 내가 이전과 다르게 스시를 생각한다고 해서 스시를 엄청나게 즐기는 것은 아니다. 내가 선호하는 다른 음식 종류에 쓰는 만큼 스시에 돈을 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올곧게 스시를 좋아하는 동생은, 스시 오마카세를 먹으러 가자고 온갖 비싼 스시 전문점 영상 링크를 보낸다. 나는 그럴 때마다 누구를 파산 시킬 생각이냐고 묻는다.
어릴 적 처음 스시를 먹은 이후, 많은 경험을 하는 동안에도 왜 스시를 먹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나도 모르고 지나갔던 어떤 날을 계기로 아 이런 느낌으로 스시를 먹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스시를 먹는 것을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가끔 시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무언가를 바꿔놓기도 하는 모양이다. 스시를 생각하던 내 입맛 같은 것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