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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안 먹는 사람

하지만 김장은 해보고 싶은

by 문현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치를 먹는다. 배추부터 무까지,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김치를 식탁에 올려 즐기는 것은 한국 사람의 자존심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김치를 먹는 외국인을 꽤 신기하게 보기도 하고, 한국에 적응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 반대의 경우도 있어서, 김치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만약 그것이 한국 사람이라면 어떻게 한국 사람이면서 김치를 안 먹을 수 있지? 하는 놀라움의 시선을 받기도 한다. 나 같은 사람이 받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나는 어릴 적에 분명히 김치를 먹었다는 것이다. 아마 어릴 때부터 곧잘 먹지는 않았어도, 나는 학교 급식으로 혹은 집에서 나오는 김치를 먹었던 기억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김치를 먹지 않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먹던 것을 어느날부터 먹지 않게 된 것은 아마 계기가 있을 것인데,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그 계기가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날 먹기 싫었는데 억지로 먹어야 하는 상황이 있었을까? 아니면 김치를 먹다가 크게 탈이 났을까? 그것도 아니면 김치를 먹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기라도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자 김치 안 먹는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하셨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셨지만 나는 그래도 김치를 먹지 않았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제안을 하나 하셨는데, 앞으로 김치를 꾸준히 먹으면 컴퓨터를 사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게임에 관심이 많던 나는 그 말을 듣고 김치를 조금씩 먹어보기 시작했다. 그때 부모님이 나에게 먹으라고 했던 것은 아마 특별한 의미가 있는 갓김치 였던 것 같다.




물론 그 말을 듣고 열심히 김치를 줏어먹어서 내가 습관을 고쳤다면 아마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치를 억지로 먹는 것과 자연스럽게 먹는 것은 다른 것이고, 나는 그때 먹지 않는 김치를 어거지로 먹어가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게임을 좋아하고 컴퓨터에 관심이 있어도, 먹지 않던 김치를 기꺼이 먹을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나는 다시 김치를 안 먹게 되었고, 그걸 본 부모님은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먹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사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면서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자식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부모님이 꽤 신경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부모님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셨던 것은, 아마 내가 생김치만 안 먹어서 그랬던 것 아닐까 싶었다. 나는 밥과 함께 먹는 생김치를 좋아하지 않을 뿐 김치를 이용한 요리는 잘만 먹었다. 김치찌개도 잘 먹고, 부대찌개도 잘 먹고, 김치고기볶음도 잘 먹었고, 김치찜도 잘 먹었다. 그래서 생김치 안 먹는 나를 위해 엄마는 매 해 김장을 했다. 엄마 친구가 해 주신 말이 있었다. 주위에 너희 엄마처럼 김장 많이 하는 사람 없다고.




나는 또 보쌈이나 족발을 먹을 때 나오는, 숙성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 겉절이 느낌의 김치는 거리낌 없이 잘 먹는다. 그걸 생각해 보면 김치가 익어갈 때 나는 냄새를 별로 안 좋아하나 싶기도 하다. 일반적인 한국 사람들이라면 입맛을 당길 그 냄새가 나에게는 묘하게 취향이 아니다. 냉장고 안에 두면 냉장고 안 모든 것에서 같은 냄새가 나고, 한 번이라도 김치를 담았던 플라스틱 용기는 다른 것을 담을 수 없다. 김치를 이용한 요리들은 그 냄새가 대부분 사라지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김치를 안 먹게 된 것은 그 특유의 냄새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비록 내가 그 냄새를 안 좋아한다 해도, 나는 김치를 이용한 요리를 좋아한다. 최근에는 들기름에 김치를 구워 다 익힌 고기 그리고 두부와 함께 접시에 내는 두부김치가 맛있어서 몇 번 해 먹었고, 옛날에는 삼겹살과 김치를 볶은 요리를 좋아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 대부분의 집들이 김장을 안 하고 김치를 사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한 10년 쯤 지나면, 그 누구도 김치 만드는 법을 모르게 되지 않을까? 재료는 어디서 어떻게 사야 하고 같은 것들을.




우리 엄마는 친척들과 함께 지금도 일 년에 몇 번 김장을 하러 간다. 고향에 가서 미리 준비한 재료를 이용해 김치를 담그고 가족끼리 나눠 가진다. 그 김치가 집에 와서 김치냉장고에 들어가면 시간이 지나 내가 알던 그 냄새를 만들겠지만, 또 그와 동시에 맛있는 요리의 재료가 될 것이다.




나중에, 엄마가 김장을 하러 가는 것을 따라 가보고 싶어졌다. 언젠가 내가 떠올리고 싶을 때 더이상 알 수 없게 될 지 모르는, 김치 만드는 법을 배워보기 위해서.




비록 나는 생김치를 안 먹지만, 나중에 김장을 배워보고 싶다. 2020 09,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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