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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 게하의 여행객들

짧았지만 같이 있었던 사람들

by 문현준

일본 북알프스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가나자와에서, 4일 정도 게스트하우스에 있었던 것 같다. 6인실 도미토리 방을 쓰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때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내 기억을 정리해 두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한번, 그때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기억나는 것을 모두 적어 보기로 했다. 이름이 기억 나는 사람도 있고, 기억 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 알파벳 이름으로 정렬해 보았다.




가나자와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밤이 되면 켜지던 게스트하우스 안의 전등




1. A


A는 40대 정도로 보이는 백인 아저씨였다. 키가 꽤 크고, 주름이 졌지만 활력이 넘쳐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을 받으면, 글쎄 내 아빠는 어디 나라 사람이고, 엄마는 어디 나라 사람인데, 나는 어디에서 자랐고, 지금은 일본에 있지. 그러니까 난 정말 내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라면서 농담조로 말을 하곤 했다.


큰 목소리와 강한 억양이 독보적이었는데, 그래서인지 A 가 던지는 아찔한 유머들은 격이 다른 목소리로 내 귀에 박혔다. 다른 일본 여행객이 커플 이야기를 하자 음~ 한창 사이 좋을 때네~ 우리 나이가 되면 부인을 잠에서 깨우는 것이 조금 다른 방식이 된다고, 한다던가.


한국에 가 봤다고 하기도 했는데, 그때 한국은 한창 정권교체 이후 시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때였다. 자기가 한국에 갔을때 시위 현장에 가서 군복 비스무레한 것을 입고 서 있으니 노인들이 가면서 악수를 청하고 같이 사진을 찍고 가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큰 키와 싸나워 보이는 인상이 마치 진정한 군인처럼 보인 것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나중에 그 시위 하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해 주니 갑자기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더니 안색이 바뀌면서 아 진짜 몰랐다고 하는 것이 꽤 신기했다.




2. B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일본 아저씨였는데, 취미인지 본업인지 알 수는 없지만 플롯을 부는 것 같았다. 내가 SNS 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라 SNS 아이디를 공유했는데, 그 때 이후로 꾸준히 음악 연주회 사진을 올리거나 연습하는 영상을 올리곤 한다. 볼 때마다 좋아요를 열심히 눌러준다.




3. C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던 일본 남자애. 아주 짧은 시간 만나서 별다르게 이야기를 하진 못했지만, 어쩌다 보니 SNS 를 교환하게 되었었다. SNS 를 추가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그 나이대 애들이 그렇듯이 정말 알차게 놀러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구경하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SNS 에 업로드는 거의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밖에서 사다가 저녁에 게스트하우스에서 구워 먹었던 고기




4. D


C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일본 여자애. 후에 설명할 E 의 관점에 의하면 동년배 일본 여자애들 같지 않다고 한다. 영어를 잘 못 했지만 E와 함께 대화에 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A와 함께 가나자와 시내 구경 겸 안내를 해 준다고 하며 나갔는데, E 가 그것을 보고 자기 말이 맞다고 신기한 어쩌면 이상한 친구라고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게 뭐가 신기한데? 하고 물어보자 E 가 한마디 남겼다. 저 나이대 일본 여자애들 안 저래.




5. E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일본 남자. 영어로 무리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고, 저녁이 되면 보통 숙소에 있었기에 이 친구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가나자와에 있으면서 밖에서 고기를 조금 사다가 구워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 E 와 나눠 먹곤 했다. 나는 고기의 맛이 궁금한 사람이었고, 내 음식을 먹어주는 사람이 한 명 늘어나면 좋으니까. 고기를 굽고 고기 구운 기름에 숙주를 볶아서 먹곤 했는데, 한번 먹어보더니 맛있다! 하고 말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조금 친해지고 나서 내가 궁금해 하던 일본의 것들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는데, 나는 그때 야쿠자가 나오는 일본 만화를 인상깊게 본 상태였고 정말 야쿠자가 일본에 흔한지 물어봤었다. 이때는 D 와 E 가 같이 있었는데, 둘 다 야쿠자는 야쿠자끼리만 싸워서 일반 시민들은 별로 볼 일이 없다, 라고 이야기 해 주었었다. 근데 E 가 자기 동네에도 은퇴한 야쿠자가 있다면서 둘이서 나란히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데, 아마 그것이 내가 살면서 처음 본 진짜 야쿠자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무서운 사람 아니고 그냥 동네 아저씨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상반신을 뒤덮은 선명한 문신이 나에겐 여전히 큰 의미로 다가왔다.


E와 E의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한번은 E의 여자친구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연락이 끊겨서 헤어지자고 할 뻔 했다고 한다. 그때 E의 여자친구가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해서 계속 만나고 있고 그 뒤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나.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꽤 진지한 철학이나 사회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E 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었다. 자기 주위에 동년배 친구들은 그런거에 별로 관심 없고 노는 것과 재미보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라나 뭐라나. 그때 이야기를 하다가 나중에 나에게 사카구치 안고의 타락론 이라는 책을 추천해 줬었다.


그렇게 밤에 같이 숙소에서 술도 먹고 하다가 SNS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서 아마 1 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때 운 좋게 시간이 맞아 온 가족이 일본 여행을 갔고 나는 여행 도중 사진을 SNS 에 올렸다. 도쿄 사진을 올린 것을 보고 메세지가 왔는데, 그때 그 사진 찍은 곳 근처에 자기가 살고 있다며, 시간 되면 만나자고 이야기 했었다. 나는 가족 여행 중이라 만나지 못해 아쉽다고, 기억해 줘서 고맙다고 답장을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문득 그 친구가 소개했던 책이 종종 기억났다. 어떻게 어떻게 찾아서 구매하여 드디어 책을 읽어 봤는데, 그 친구가 왜 나에게 추천했는지는 알 것 같았지만, 책은 좀 나에게 어려운 편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 친구에게 또 메세지를 보냈다. 비록 친구가 기억할지는, 아직 SNS 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6. F


손님인지, 아니면 근처에 사는 심심한 아저씨인지 알 수 없었던 일본인. 영어는 하나도 못하지만 학교에서 일본어 선생님을 한다고 했었다. 그래서인지, 이런저런 어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신기한 것을 이야기 해 주면 E 가 그것을 영어로 이야기 해 주는데, 나와 E 는 그 이야기를 듣고 오 신기하네 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E 와 함께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들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옛날의 일들이, 이제는 잊혀질 법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종종 기억할 때마다 조금씩 되살아나서, 몇몇 순간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나곤 한다. 살고 기억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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