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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비행기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참는 것뿐이다

by 문현준

일본 북알프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던 날. 가나자와에서 계속 날씨가 안 좋았지만 돌아가는 날이 되어서야 날씨가 확 개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나 싶긴 하지만, 가나자와에서의 아쉬웠던 날씨들과 함께 다른 여행지들에서의 좋은 날씨도 떠오르니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하며 돌아가기로 한다.




가나자와에서 도야마 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도야마 역에서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버스에 타고 도야마 역으로 가다 보니, 쨍하게 밝아온 날에 솟아오르는 하얀 구름들이 보인다.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했던 날씨 끝에, 드디어 볕과 함께 구름이 떠 있다.




가나자와에서의 며칠 날씨가 무색하게, 돌아가는 날 맑아진 날씨




도야마 공항으로 가기 위해 도착한 도야마 역




도야마 역 근처에는 쇼핑몰과 음식점들이 많았다. 이 근처에서 밥을 먹기로 하고 뭘 먹을까 하며 둘러보다 보니, 도야마에 짧게 있으면서 봤던 것이 떠올랐다. 이런저런 물건들을 구경하다 발견한 음식점에서 사람들이 길게 서 있는 것을 보았었는데, 그곳에서 팔던 것이었다.




음식점에서는 시로에비라고 불리는 듯한 작고 하얀 새우들을 이용한 요리를 팔고 있었다. 이걸 튀겨서 튀김덮밥을 만들기도 하고, 생새우로 밥 위에 올리기도 하는 듯 했다. 도야마의 명물로 꽤 유명한지, 처음에 보았을 때는 사람이 몰려 줄을 길게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운 좋게도 내가 다시 가니, 줄이 거의 없어서 들어갈 수 있었다.




자판기처럼 생긴 기계 앞에서 메뉴를 주문했다. 영어 메뉴가 있어서 메뉴를 고르기에 아주 편했다. 기본적으로 새우를 튀겨서 올린 튀김덮밥과 생새우를 올린 해물덮밥류가 있는데, 나는 이때 생새우를 먹는 것에 큰 흥미가 있는 편이 아니었기에 튀김덮밥을 먹어 보기로 했다. 이것저것 다양한 해물 튀김이 올라간 덮밥보다는 기본에 가깝게 새우만 올라간 것이 먹어 보고 싶어, 메뉴를 결정하고 안에 들어갔다.




안에 서 있던 직원이 구석에 캐리어를 옮겨 주고, 잠시 시간이 지나니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밥 위에 작은 새우를 따로따로 튀겨낸 튀김이 가득 올라가고, 맑은 국과 야채절임 반찬이 나온다. 사실 튀김을 밥 위에 올리고 양념을 뿌리니 어떤 음식이라도 맛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음식과 함께 나왔던 작은 새우 과자가 기억에 남았다. 입가심으로 나오는 새우 과자는 마치 얇은 새우깡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는 내가 생새우 먹는 맛을 잘 몰랐지만, 만약 다시 가서 먹어본다면 두말하지 않고 생새우가 올라간 덮밥을 먹어보고 싶다.




영어로 설명이 잘 되어 있는 메뉴판




작고 하얀 새우를 튀겨 올린 튀김덮밥 정식




밥도 먹고 구경도 마치고 나니, 이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도야마로 출발하는 버스가 멈추는 정류장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도야마와 한국을 오가는 항공편이 제한적이다 보니,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려는 한국인들이 하나둘씩 버스정류장에 모이기 시작한다.




시간이 되어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한 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줄을 서고 있으니 꼬맹이가 뛰어다니는 것이 보인다. 공항에 사람은 별로 없지만 공항 안 대합실의 여기에서 끝까지 전력질주를 하며 분주히 돌아다닌다. 무언가를 쓰러뜨리거나 사람을 위험하게 하진 않은 것 같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아마 보호자로 생각되는 사람이 말했다. 너 그러다가 망태기 아저씨가 잡아간다! 부모인지 아니면 사촌인지 알 수 없는 그 보호자는, 연거푸 존재하지 않는 망태기 아저씨를 불러가며 아이를 통제하려 한다. 통제가 될 리가 없다.




여하튼 망태기 아저씨를 찾는 보호자와 망태기 아저씨 무서운 줄 모르는 아이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해가 질 때쯤 비행기를 탔었는데, 구름 위에서 천천히 노을이 내려가는 일본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특히 이번엔 구름 사이로 햇빛이 일직선으로 떨어져 내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이 광경이 정말 예뻤었다.




비행기를 탈 때 꼭 창가 자리를 먼저 선점하는 이유는 이 멋진 광경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닐까. 나는 비행기 자리를 예약할 때 미리 지도를 보고 어느 쪽으로 어떤 장면이 보일까 생각할 정도로 자리 선점에 공을 들였다. 그렇게 고른 자리에서는 항상 좋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높은 곳에서 빛이 아래로 내리는 모습이라던가, 다양하게 부풀어 오른 구름과 노을이 어울리는 모습 같은 것들.




해 지는 하늘에서, 구름 사이로 빛의 방향이 선명히 드러났다. 땅 위에서는 어떻게 보였을까




주황색 노을빛과 구름의 멋진 모습




그런데 한국으로 오면서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났는지 흔들리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흔들리는 것은 조금 걱정이 되지만 별다른 방송도 없어 괜찮으려나 싶은 생각이었다. 이제 밖이 어두워져 별다른 풍경도 보이지 않았기에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있으니, 어디선가 귀가 찢어지는 듯한 칭얼대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혹시 했더니 역시나, 망태기 아저씨 무서운 줄 모르는 그 아이다.




약간의 피곤함을 느껴서 눈을 감고 잠을 좀 자려 하지만 아이의 높은 울음소리는 계속되고, 아이를 데리고 있는 보호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얕게 잠 들었다가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에 잠이 확 깨고 나니,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은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는 생각으로 바뀌며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그 옆에 앉은 보호자에게 따지고 들 수도 있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보호자는 아이가 시끄럽게 함에도 어떻게 할 줄 몰라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쳐도 결국 아무도 자신에게 뭐라고 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서, 안절부절 못 하는 척만 적당히 하면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은 순간에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를 태운 비행기 안에서 뛰쳐나갈 수는 없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아이는 기계가 아니고, 조용히 시킨다고 해서 조용히 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를 탓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이어폰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비행기를 타 한 시간 동안 고통받는 나 자신을 느끼면서, 결국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무기력한 것이었다.




짧았지만 매우 스트레스 받는 순간이 지나고 나서, 비행기는 비가 내리는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주위에 피해를 끼쳤다는 생각은 있는건지,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 없는건지, 사실 내가 알 수 없고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해 그 둘을 쳐다보려 했다. 망태기 찾던 보호자와 망태기 무서운 줄 모르는 아이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비행기 밖으로 뛰쳐나가고, 나는 한 가지만을 생각했다. 다음 번 비행기에 탈 때는, 꼭 꼭 이어폰을 챙기자는 것이었다.




시끄러운 비행기가 겨우 한국에 내려앉고 나서, 나는 다음부터 반드시 이어폰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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