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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야근좀 하면 어떠냐?

야근이 아무렇지도 않을 때 알 수 있는 것들

by 문현준

내가 회사에서 일을 시작할 때부터 몇 년 째 일을 하던 대리가 드디어 퇴사를 하게 되었다. 쥐어짜이다 못해 이직을 하는 대리가 겪었던 흥미로운 일들은 둘째 치고서라도, 마지막 대리가 퇴사하는 날의 짧은 만담이 기억에 남는다. 갑작스럽게 일이 많아져서 대리에게 마지막 날인데 야근좀 하고 가라~ 라는 말을 했던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적당히(?) 끝났지만 말이다.




사실 부장급이 겪어왔던 회사의 문화란 일이 있건 없건 당연히 집에 늦게 가는 그런 문화라고 해도, 나에게는 그 짧은 순간의 대화가 꽤 기억에 남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일을 하는 곳에서는 야근을 한다고 돈을 더 주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당신은 몰라서 다행이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일단은 그 이야기는 제쳐 두기로 하자.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야 너 야근좀 하고가라~ 라는 이야기가 장난처럼 오갈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시간에 맞춰서 오는 것은 성실의 상징이지만, 저녁에 시간에 맞춰 집에 가려 하는 것은 전혀 성실의 상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서 신기하다.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이 끝나지 않고 있다면 그 사람이 놀고 있는 것인지 일이 너무 많은 것인지, 일이 많다면 구조의 문제인지 개인의 문제인지 같은 것들을 확인하기에 너무 귀찮았던 것 아닐까. 그래서 야근 하지 말라는 강제력 없는 그리고 지킬 생각도 없는 지나가는 말로만 물흐르듯이 넘어가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연하게도 시간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사람들에게서 두고두고 거론되는 표현으로 시간은 금이라는 말이 있다. 어찌 보면 금보다 더 소중한 존재일 지 모른다. 금은 어느 정도 있으면 더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시간은 아무리 있어도 부족할 수 있고, 더 필요하다고 해서 얻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신경쓰지 않는다면, 보통은 다른 사람의 돈 또한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30분이나 1시간 더 늦게 집에 가면 어떠냐는 사람들에게 어차피 100만원 줄거 5만원이나 10만원 더 주면 어떠냐고 말하면 거품을 물 것이다. 어떤건 대단치도 않은데, 어떤건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그 차이점이 야근의 본질 아닐까. 똑같은 돈을 주고 혜자스럽게 쥐어짜고 싶은 그 마음. 야근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쥐어짜고 싶다는 것일지 모른다.




야근이 아무렇지 않다면, 많은 뜻을 담고 있을 수 있다. 2019 11, 서울 방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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