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분노를 삼키는 이유

그건 좋은걸까 나쁜걸까

by 문현준

옛날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많은 것을 배웠고 느꼈으며 즐거운 시간도 있었지만, 바쁠때는 정말 바빴다. 특히 점심 청소 시간이 가장 바빴는데, 청소가 많게 되면 짧은 시간 집중해서 청소를 마무리 해야 한다는 것이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어느날 점심 시간에 청소를 도와주러 오는 청소 인력이 오지 못하게 되었다. 이럴 때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청소를 일찍 시작해서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야 했다. 그날 또 청소가 매우 많았기에, 나는 굉장히 바빴다. 청소를 체크인 시간 전에 여유있게 끝내기 위해서는 매우 바쁘고 힘들게 움직여야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문제없이 일을 편하게 조정할 수 있었지만, 그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고 나는 굉장히 압박을 받으며 일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외국인이 말도 없이 열린 화장실에 들어가 화장실을 쓴 것을 발견했다. 청소를 다 해 둔 화장실을 마무리 하기 직전에 문을 열어 두는데, 문이 열려 있으니 그냥 들어가 쓴 것이었다. 게다가 들어가고 나서 안쪽에서 문이 잠겨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그때 근처에서 업무를 보던 사장님들이 도와주러 왔지만, 어쨌든 나는 그 일을 신경쓰느라 청소에 제대로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화를 크게 내지 않는 성격인데도 화가 났다. 문이 열려 있으니 그냥 사용했다는 말을 들은 것도,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내 근무 시간에 나 혼자서 일을 해결하지 못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렸다는 것도, 나에게는 화가 날 이유 뿐이었다. 나는 내 감정 표현이 점점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았지만 이정도까진 괜찮겠다 하는 생각으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멈춘 것은 사장님 중 한 명이었다.




좌우지간 손님은 미안하다고 한 뒤 사라졌다. 사장님은 나한테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사장님 말이 맞다고 했다. 그리고 청소는 문제 없이 끝났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화를 풀어놓고 나서, 난 굳이 그렇게 화를 표현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했다. 손님은 모르고 썼을 수도 있고, 나는 마무리를 좀 더 하면 끝나는 것이었다.




나는 굳이 그렇게 화 낼 필요가 없었고,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화를 낸 것 아닐까 하여 사과하는게 낫겠다 생각했을때, 나는 그런 내 생각을 전달할 사람이 더이상 내 앞에 있지 않았다.




살다 보면 분노를 꺼낼 때가 많았다. 하지만 누가 잘잘못을 했느냐, 화를 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와는 별개의 문제로 나는 내가 풀어 놓은 분노가 나를 설명하지도 못하고 상대에게 내 뜻을 전달하지도 못하며,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느낀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 뒤로 의도치 않게 섣부른 분노를 풀어냈을 때는 바로 그것을 설명하고 이해를 부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보니 원래 분노를 표출하지 않던 성격이, 더욱 더 분노를 표출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은 내가 분노를 표출할 상황이 있으면, 나는 그걸 보통 바로 꺼내지 않는다. 상대가 내 분노를 이해할까? 내 분노가 아니라 내 메세지를 이해할까? 아니면 나조차도 내 분노를 잘 이해하고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는 내가 분노를 꺼내면 내가 후회할 것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다. 내가 당연히 분노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보통 분노는 어떤 긍정적인 결과도 가져다 주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분노를 느끼면 일단 내가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시간을 오래 쓴다. 그리고 그 분노가 그저 다른 수많은 감정과 똑같을 뿐, 그 어떤 특별성도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마음 다잡는 것에 꽤 좋은 것 같아서, 나는 쉽게 감정에 휘둘린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생각은 내 표현 밑에서 다양하게 변하고, 그래서 나는 내가 감정기복이 심한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걸 표현하는 일이 잘 없다. 분노에 가까운 생각을 하긴 하지만, 그걸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내 생각이 밖으로 튀어나와 기분으로 변하는 일이 적어진 것 같아서 좋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분노를 꺼내지 않고 생각으로만 속으로 삭여 삼켜버린 것인지, 요즘 들어선 조금 궁금해졌다. 분노를 표현하지 않는 것이 내 모습인지, 아니면 분노하는 법을 아예 잃어 버린 것이 내 모습인지. 내가 느끼고 있는 분노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인지. 이러다가 분노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같이 일하던 사람이 장난식으로 했던 말이 떠올린다. 가면을 너무 쓰고 살아서 이제 가면인지 본모습인지 구분하게 될 수 없게 된 것 아니냐고. 요즘 들어 그 말이 자주 떠오른다.




나는 분노를 삼킨 것일까, 잃어버린 것일까, 요새 생각하곤 한다. 2020 09, 서울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야 야근좀 하면 어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