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북알프스 여행을 마치며
옛날 독일 교환학생을 할 때, 최대한 많이 여행을 다니곤 했다. 기숙사가 있던 도시 근처의 소도시를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의 박물관을 갔던 기억이 난다. 유물과 그림이 가득한 박물관 입장료와 내부 사진촬영에 비용을 지출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박물관에서 정말 멋진 것을 보았던 인상은 남지 않았다.
오히려 박물관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작은 도시 변두리의 공원이었다. 작지만 울창한 숲이 있는 그 변두리 공원으로 가면 도시 근처의 숲들이 한번에 보이는 좋은 장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보이던 앞쪽의 언덕 능선과 군데군데 있던 건물들이, 박물관보다 다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그 여행 이전까지는, 박물관에 가면 뭔가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빼놓지 않고 가곤 했다. 하지만 그때의 여행을 곰곰히 생각하고 나서 나는 내 취향을 발견한 것 같다. 나는 인간이 만들어 낸 대단한 것 보다는, 인간이 절대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대단한 것에 좀 더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아름다운 미술이나 역사적 가치가 큰 유물보다는 큰 호수나 거대한 산맥 같은 자연에 더 흥미를 느꼈던 것이다. 그것이 내가 발견한 나의 색채였다.
물론 나는 인간의 색채에 좋고 그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붉은 색과 푸른 색에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처럼, 모두의 취향과 성향에 우열을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사람들은 명확히 다른 각자의 색채를 가지고 있고 가끔은 서로의 다른 색채를 버거워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색채가 뭔지 잘 몰라서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여행이 자신의 색을 발견하기에 가장 좋다고 믿는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때, 우리가 가진 색채는 마치 분광기를 거쳐 나온 빛처럼 펼쳐진다. 그 화려한 색채 속에 젖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신의 색을 천천히 알게 된다.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무엇이 받아들이기 힘든지 알게 되는 것이다.
꽤 오랫동안 나는 여행을 갈 때 내 색채에 맞추어 여행을 준비한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문화, 좋아하는 장소, 좋아하는 음식 같은 것들로 맞추어진 여행을 준비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좋아하던 나라를 갔고, 좋아하는 자연이 있는 곳을 갔으며,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으려 했다.
하지만 색채에 맞추어 여행을 준비한다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드는 것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내 마음에 드는 것들도 있었고, 내 취향이 아닌 것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취향이 어떤 것인지, 내 색채는 어떤 것인지 좀 더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결국 여행은 자신의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가고 나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이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오히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성향을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아닐까. 취향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취향을 발견하는 것. 자신의 색채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색채를 알아가는 것.
언젠가 다시,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