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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도착

물거품 될 뻔했지만 다행히 되지 않은 가족여행

by 문현준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일본 도쿄의 공항에 도착하고 나니,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버스를 타고 도쿄로 간 다음 그곳에서 후지산 근처로 가는 버스를 탔어야 했는데, 도쿄에서 버스를 환승하는 동안 저녁을 먹을 시간이 없었다. 결국 우리 가족은 공항에 있는 푸드코트에서 저녁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사실 공항 음식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멀리까지 왔는데 맛있는 것 먹었으면 하는 생각에 공항밥을 먹자고 하는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선택지가 다양하고 음식이 잘 나왔다. 우리 가족 중에서 입맛이 가장 까다롭고 자기 취향대로인 것만 먹는 동생이 나중에 그 공항밥이 생각보다 맛있었다고 이야기 할 정도였다.




그렇게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 또 저녁 시간 버스를 타고 도쿄의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공항에서 출발한 버스는 도쿄의 중심지로 들어갔는데, 밤이 된 도시의 풍경이 검은색과 주황색으로 반짝이는 것이 예뻤다. 아주 어릴 적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도 잘 모르던 시절 부모님과 함께 일본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맥주 거품이 올라가 있는 인상적인 건물을 보았었다. 그때 맥주 거품은 마치 그것과 모양이 비슷했는데, 아빠가 저건 그게 아니라 맥주 거품이다, 라고 설명해 주셨었다. 어릴 적 봤던 건물이 그 건물 같아서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신기한 기분이었다.




한편 버스 안에서 일본 친구 S에게 전화를 걸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할 때 만났던 재미있는 친구였는데, 한국어를 아주 잘했기에 일본어는 정말 하나도 못 하는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숙소에 늦게 들어갈 것 같은데 아직 이메일 답장을 받지 못했기에 숙소에 연락해 확인해 줄 수 있냐고 부탁하니, 흔쾌히 부탁을 들어 주었다. 다행히 늦은 시간이라도 미리 말해주면 문제 없이 체크인 할 수 있다고 전해와서, 신경쓰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버스 안에서 또 한 건을 처리하고 도쿄의 야경을 구경한 끝에 도착한 곳이 아마 신주쿠 버스 터미널이었다. 또다시 후지산 근처의 가와구치코 라는 곳까지 가려면 버스를 기다려야 했기에, 약간 시간이 있었다. 뭔가를 먹긴 애매해서 근처를 조금 돌아보려 했는데 비가 오고 있어서 멀리는 돌아볼 수 없었다. 가족에게 근처를 돌아보자고 하니 아빠는 터미널에 앉아 있겠다 하시고, 나와 동생과 엄마만 터미널 근처를 돌아보았다.




시간이 얼마 없는데다가 비도 와서 멀리까지 갈 순 없었다. 하지만 건물에 있는 유명한 일본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를 사 먹고, 빵집의 빵도 구경하고, 밖으로 나가서 조금 근처를 구경했다. 다양한 색으로 빛나는 네온사인과 간판이 비 속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적당히 가족 사진도 찍다가 다시 돌아와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편의점을 구경했다. 찹쌀떡마냥 물렁물렁한 크림빵이 있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몇 개 사 가려고 잘 봐 뒀지만 그 편의점 외에 다른 곳에서 다시 보진 못했다. 일본어는 하나도 못하지만, 버스 터미널에 앉아서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을 열심히 들어보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신주쿠 버스 터미널 근처의 비오던 밤거리




짧은 시간 구경했던 빵가게의 제품들




이름만 들었을 뿐 먹지 못했다가 처음 먹어본, 유명한 카페의 커피




그렇게 다시 버스를 타고 가와구치코에 도착했다. 4월인데도 그곳에는 남은 눈이 있었다. 다행히 캐리어를 끌고 가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밤 12시의 도심은 고요했다. 사람 네 명이서 캐리어를 드륵드륵 끄는 소리만 밤거리에 울려 퍼지고, 조금 걸어간 끝에 문제없이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불 꺼진 로비의 리셉션에 다가가니 나이 지긋한 아저씨인 듯한 직원이 나왔다. 방에 안내받아 올라가니 방 안에 잠자리가 깔려 있었다. 아침 식사나 다른 이야기를 듣는데, 창문에 있는 하얀 그림이 눈에 보였다. 저건 왜 뜬금없이 유리에 붙어 있는걸까 하고 생각했었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부모님과 동생은 숙소에 딸린 온천을 가 보고 싶다고 했다. 밤 12시가 넘었는데 무슨 온천이냐 그냥 자는게 어떻겠냐 생각했지만 어차피 다들 편하게 시간 쓰는 것인데 상관없겠다 싶었다. 나는 사진을 정리하고 일정을 확인하는 사이 다른 가족들은 온천에 다녀왔다. 아마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랬는지, 너무 좋다고 만족스럽다고 하면서 다들 하루에 한번씩 가야겠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첫날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잠들었었던 것 같다. 예약해 둔 저녁도 먹지 못했고 마땅히 새로운 것을 구경하지 못했지만, 사실 어쩌면 못 올 수도 있는 여행 아니었을까. 다행히 다들 지금 목적지에 도착해서 잠을 자려고 하고 있으니 다행인 것 아닐까. 어쨌든 도착했으니 말이다.






예정보다 훨씬 늦은 첫날의 취침 시간. 하지만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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