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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는 비싸지만 못참아

소비는 결국 행복일까

by 문현준

나는 좋아하는 치즈케이크가 하나 있다. 옛날에 일본 여행을 갔다 올 때 면세점에서 뭘 살까 하다가 유명한 치즈케이크라는 홍보 문구를 보고 샀던 것이다. 나무 느낌의 원형 통에 담겨 있는 그것을 집에 와서 별 기대 없이 다른 사람들과 맛봤는데, 너무 맛있었다. 여태까지 내가 먹었던 치즈케이크의 약간 산미가 있는 느낌과 다르게, 산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유지방 맛이 강하게 올라오는 맛이 아주 내 취향이었다.




하지만 맛있는 것은 보통 칼로리도 높고 가격도 높지 않던가. 약간 부담스러울 수 있는 가격에 비슷한 케이크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사먹어 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국 특별한 날이 있을때만 사먹고 있다. 이번에도 좋은 날이 있어서, 케이크를 사러 백화점에 갔었다.




사람들로 붐비고 이전과 달리 외국인이 보이는 백화점 지하의 모습에, 확실히 무언가 이전과 달라졌다고 느낀 나는 식품매장 옆 디저트들이 몰려 있는 상점가에서 케이크 매장을 찾았다. 치즈 맛을 사고 싶었던 나였지만, 지금 있는 것은 초코맛과 망고맛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쉬웠지만, 초코맛도 맛있으니 그걸 사서 돌아갔다.




그런데 자꾸 망고맛이 떠올라 눈앞에 아른거렸다. 메론맛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망고맛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은 상황이었다. 새로운 과일맛이 나온걸까? 생각해보니 망고와 치즈는 꽤 조화가 괜찮은 것 같은데, 망고 맛이 나는 술안주 치즈도 있지 않나? 새로운 맛은 또 얼마나 맛있을까?




그래서 결국 다시 그 백화점에 갔다. 똑같은 곳에서 내려 똑같은 통로를 통과해 다시 매점에 가서 진열대를 확인하니, 망고맛 케이크가 없다. 지난번에 너무 성급하게 진열대를 본건가 해서 다시 알고보니, 망고맛 케이크는 내가 알고 있던 브랜드의 것이 아니었다. 바로 옆쪽, 치즈케이크를 팔고 있는 다른 일본 브랜드에서 만든 것이었다. 왜 그때 나에게 망고맛 케이크가 있다고 했던 것인진 모르겠지만, 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던 망고 케이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찾던 망고치즈케이크는 없었으니, 내가 그곳에 간 이유는 없었고 나는 그냥 뒤돌아서 떠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나는 갑자기 심각하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망고케이크도 맛있지 않을까? 치즈와 망고의 조화가 괜찮을 것 같은데, 어차피 여기까지 온 김에 한번 사 먹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는게 더 시간낭비 비용낭비 아닌가? 그 끝에 결국 나는 케이크를 사고 있었다.




그런데 케이크를 포장하는 것을 보니, 원래 지난번에 사려다가 못 산 치즈케이크가 눈에 들어온다. 어차피 사 두면 나중에 편하게 먹을 수 있을텐데, 지금 사는 것이 괜찮지 않을까? 지금 가져가서 바로 냉동 보관하면 나중에 중요한 날 또 먹을 수 있을테니, 차라리 지금 사는 것이 낫지 않은가?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케이크 2 개를 들고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냉동 케이크가 녹지 않게 무릎 위에 가방을 올리고 그 위에 보냉백을 올려두고,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어둠 속의 밤거리를 보며 가다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옛날의 나라면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 순간 바로 자리를 떴을 것인데, 나는 무슨 생각으로 카드를 꺼내들어서 케이크를 샀을까. 그렇게 한푼 두푼 아껴봤자 무슨 의민가, 아낀 것보다 중요한 것이 현재의 행복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걸까. 그렇다면 난 여태까지 안 찾던 행복을 왜 지금 와서 찾는가?




잠시 월급이 들렀다 간 계좌는 말라붙고, 지출은 뼈아팠으며, 내 의사결정이 바뀐 이유가 궁금해졌지만,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해동을 잘 해서 한 조각 입 안에 떠 넣은 망고치즈케이크는, 결국 참을 수 없는 즐거움이라는 것이었다.




소비욕이 이전과는 달라지는 나는, 어쩌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음을 체념한지도 모른다. 2020 02,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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